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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병사 수기19] 두 개의 여권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자랐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뿌리도 줄기도 모두 한국인인 내가 있었다

Written by. 조성준   입력 : 2012-01-28 오후 4: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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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에는 두 개의 여권이 들려 있다.

 하나는 자타공인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의 것, 다른 하나는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독재정권하에 있어 악의 축으로 불리는 북한과 대치중인 우리 대한민국의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두 개의 여권을, 두 가지의 운명을 부여받았지만 나는 선택의 권리마저 부여받지는 않았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

 나의 부모님은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을 가게 되었고, 나는 그 곳에서 태어났다. 이중 국적을 허용하는 미국이었기 때문에 나의 국적은 미국과 한국 모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4살을 넘길 무렵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한국에서 자라게 되었다.

 미국은 어려서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다. 긴 유학생활을 겪은 부모님은 식생활도 여가생활도 서구식으로 즐기셨고, 나의 생활양식 역시 부모님을 따라가게 되었다.

 나는 뉴스에서 북한에 관한 좋지 못한 소식이 들릴 때면 입대와 전쟁, 죽음에 관한 막연한 공포로 내가 자라온 이곳을 원망하고 언젠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3학년 무렵, 나는 한 창의력대회에 참가하였다. 나의 팀은 전국 1위를 하여 국가 대표로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대회 본선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세계대회 참여 그 자체로도 큰 영광이었지만, 나에게는 내가 미국에 간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큰 기쁨이었다.

 단지 내가 미국으로 가는 것이 아닌, 미국이 나를 불러 내가 가는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만해졌고,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저 어린 날의 꿈이 아닌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대회장에서 온 열정을 불태웠다.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올리지 못하였지만, 자발적으로 미국을 방문함에 의의를 두었고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기약을 하며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년 뒤,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갈 기회가 생겼다. 한번 미국에서의 독립적인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큰 감동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미국행은 단기적이 아닌, 최소 1년 이상 머물 계획이어서 나는 내가 그곳에 잘 녹아들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품고 나의 미국인 여권을 펼쳤다.

 나는 다른 영주권자, 시민권자 친구들과 달리 평범한 유학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영어실력을 갖고 있어 필사적으로 영어를 공부했다. 그곳의 정서를 이해하려 미국역사도 공부했다.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서 미식축구를 보러 다니고 홈 파티와 졸업파티에도 참석했다.

 그곳의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밤새워 공부도 하고, 아마추어 음악 팀을 결성해 창작활동을 벌여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해도 그들 사이에서 비추어지는 나의 모습은 그저 영어 잘하는 외국인 친구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버지니아 공업대학교에서 한 한국계 미국인이 총기를 난사하여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일어났다. 나도 그 사건에 분개한 사람 중 하나였지만, 그 날 이후,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그토록 차가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사건 이틀 후, 나는 골목길에서 미국인 청소년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인종적인 모욕을 듣기까지 해야 했다. 나는 그 일을 경찰에 의뢰하는 한편, 나의 신분이 공식적으로 미국인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다시 한국인 여권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미국에서 1년여간 유학을 한 것은 학점으로 인정되지 않아 나는 서둘러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입대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었지만, 재학 중에는 입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한국에서의 캠퍼스생활 자체는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친구들을 만나 좋아하는 일을 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대할 때 동료애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우리가 한 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은 조국애라는 우리만의 감정이었다. 정을 나누며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서 태어난 조국애라는 감정을 한국에서 자란지 십 수 년이 되도록 알지 못한 나였지만, 한국을 정신적으로 한번 떠나고 다시 돌아온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쯤, 2년 전 입대하였던 나의 친구들이 하나 둘 전역모를 쓰고 나를 반겼고, 나는 그들에게서 단순한 부러움이 아닌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뒤, 나는 한국에서 미국국적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미국에 거주하는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입대의사를 밝혔다.

 그들은 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이 곳 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반드시 입대하여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 하기로 다짐하였다.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나의 미국 국적은 국가관을 심어주는 계기였을 뿐, 선택지로서 존재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의 천안함은 북한 어뢰에 공격당해 침몰하고 만다. 혹자는 침몰의 배후가 북한이 아님을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그때까지 북한의 수많은 도발, 연평해전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을 잊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북한군을 우리 동포로 여기며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나는 천안함 사태를 지켜보며 북한군에 대한 적개심으로 내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조국이 나에게 준 사랑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함으로 빚을 갚기로 하였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자랐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뿌리도 줄기도 모두 한국인인 내가 있었다. 내 손에는 더 이상 두 개의 여권은 들려있지 않다. 다만 목덜미로 가슴까지 빛나는 군번줄이 심장의 열기에 달구어진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이다.(konas)

조성준(상병) 수도포병여단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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