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병사 수기20] 나 자신에게, 제자들에게 그리고 조국 앞에 당당하기 위하여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가 가르치던 제자들에게, 더 나아가 내 조국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노라’고
9.11테러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던 2001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여느 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다름없이 코 앞으로 다가온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부모님께서는 느닷없이 해외이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통보하시듯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해 10월,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언어부터 문화까지 모든 것이 낯선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국제공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후 2년이 지난 2003년,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했고 나에게 있어 대한민국은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의 일부를 보낸 곳, 그리고 방학을 맞으면 가끔 방문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모든 한국 남자들의 관심사이자 고민거리인 군 복무 문제로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주변의 유학생 친구들이 군 입대를 위해 하나둘씩 한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은 나와 다르고, 군대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 있어 뉴질랜드는 이미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군 입대는 10여년의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의 재적응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군 입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대한민국 국적의 포기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도 고민하고 있던 내게 우연히 1년간 한국에서 지낼 기회가 생겼다. 뉴질랜드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교육과학기술부 주관으로 2010년 2월부터 1년간 한국의 지방 소재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지도하는 ‘TaLK (Teach and Learn in Korea) 원어민 영어 교사 초청 프로그램’에 선발된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맑고 순수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나의 정체성과 가치관 등에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겉모습은 분명한 한국인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비행기를 12시간이나 타야 갈 수 있는 멀고 먼 나라에서 자신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기 위해 한국에 온 ‘한국인을 닮은 외국인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한국에 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고민 해왔던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뿌리와 내 마음 속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짐과 같던 국방의 의무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가 가르치던 제자들에게, 더 나아가 내 조국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노라’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1년간의 보람있는 ‘원어민 영어 교사 초청 프로그램’을 마치고 드디어 2011년 2월 28일, 공군 교육사령부의 정문을 지나 “공군 병 700기 신병 제2훈련대대 4중대 1소대 29번 조시현 훈련병”으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2년여 간의 군 생활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각오를 다졌던 그 날로부터 어느새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지금은 나의 특기인 영어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통역병으로 선발되어 미 7공군이 함께 주둔하고 있는, 한쪾미 연합작전의 심장부인 이곳 공군작전사령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시간이 나는 결코 아깝지 않다. 아니, 오히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감사하다.
비록 26세 늦깎이 병사로 입대해 자유로운 뉴질랜드에서의 생활과 전혀 다른 영내 생활에 염증을 느낀 적도 있었고 또 처음 겪어보는 엄격한 계급 사회를 피부로 느끼며 힘들어했던 때도 있었지만, 항상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간부들과 멋진 선임들, 그리고 든든한 후임들이 함께 하기에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2년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으리라 확신한다.
성장해 온 환경이나 받아온 교육, 자신의 신념이 어떻든 간에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자신 앞에, 내 제자들 앞에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조국 앞에 당당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이자 한국인이다. 필승!(konas)
조시현(일병) 공군작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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