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최시중에게
잘 알던 사람이 영향력 있는 공직에 앉았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물러나는 광경을 지켜보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거북한 일일 것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정부의 직제상 차관급인지 장관급인지 나는 모르지만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리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여론조사기관인‘갤럽’의 한국책임자로 일하면서 노무현이 대통령이던 시절에 최시중이 해마다 보내주는 연하장에 실린 숫자만 보면 노 정권에 대한 신뢰도를 훤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이명박의 측근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거센 반대를 이겨내고 방통위원장이 되었을 때 나도 진심으로 축하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까이 아는 사람 하나가 어떤 방송사를 인수하고 나선 최 방통위원장을 한 번 면담하고 싶다기에 그를 소개하는 글을 써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만나고 돌아와서 내게 하는 말이, 최시중은 이미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말이 통하지 않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도 최 위원장을 몇 번 만났지만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시중은 이명박의 측근으로 방통위원장 같은 자리에는 앉지 말고 다만 언론과 여론에 관하여 대통령에게 직언 할 수 있는 신분만 유지했으면 좋을 뻔하였습니다. 최시중이 훌륭한 인재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보스’를 잘못 만난 죄 밖에 없을 지도 모릅니다. 최 위원장은 큰‘펀치’하나를 맞고 쓰러진 것이 아니라 거느리던 조무래기들의 별것도 아닌 ‘잽’을 견디지 못해‘링’에 타올을 던지고 물러나는 권투 선수와 같습니다.
이 나라의 방송과 통신을 비롯하여 모든 언론을 이 꼴로 만들고, 1천 백여만의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이 만들어 입혀준 이명박의 멋진 새 옷 한 벌을 국민의 눈에 저렇게 누더기가 되게 하고 이제 물러나는 최시중의 마음도 괴로울 것 같습니다.
‘갤럽’으로 전 국민의 여론을 바로잡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konas)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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