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병사 수기23]스스로 선택한 인고의 길
한국 시민권을 얻어 계속 이 땅에서 원하던 연구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것
나는 어머니 품에 안긴 채 소파에 앉아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무셨다. 싱그러운 풀빛이 가득한 파란 풋사과였다. 양친께서는 계속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계셨다. 이것이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미국에서의 유년기 시절 사건이었다.
그렇게 민망할 정도로 기억나는 것이 적은 때였지만, 나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유학하시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고, 속지주의에 의거하여 한 명의 어엿한 미국 시민으로 인정되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낸 후 줄곧 한국에서 아무 걱정없이, 잘, 건강한 한국인으로 지냈다.
초등학교 3학년때 미국 북동부 매사츄세츠주에서 산 적이 있다. 보통 군 입대를 고민하는 해외 거주 경험자들의 경우, 당장 나와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는 병사들만 보더라도, 중학교,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까지 구미권에서 다니다가 적령기에 한국으로 와 입대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당연히 한국과 한국군의 문화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군 복무의 특수성 및 필수성에 어느 정도 의문감, 어쩌면 더 나아가서 크나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중고교를 재학하면서 한국군이 현재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치 및 징집제 유지의 배경, 북한과의 대립 상황에 대해서 정식 역사 교육시간이든, 아니면 훈화 시간이든 간에 꾸준히 교육받은 경험이 있던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물론 많은 청년들의 토로와 불만에도 불구하고 징집제가 유지되는 배경에 익숙하다는 점만이 내가 큰 고뇌없이 군 입대를 택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 두 번째 이유는 나의 향후 진로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에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중학교 시절의 고민을 거치면서 고교생 시절에야 비로소 자리잡은 나의 꿈은 역사학자, 정확히는 조선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장서각, 규장각처럼 조선시대의 희귀한 고서를 수십만 권이나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연구소/ 문헌보관소의 고서더미에 쌓여 아직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하나하나 파헤치고 싶은 그런 야망이 나에게는 있었다.
사실 조선사, 넓게는 한국학을 연구하겠다는 나의 꿈은 입대하지 않고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이었다. 만약 나 자신이 미국 시민권이 있다는 사실(속지주의에 따라 나에게는 미국 시민권이 있었다)을 이용해 한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해외 대학 혹은 교환학생 및 연구원의 신분으로 한국 대학에서 충분히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전공하고자 했던 조선사에서 특히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군사분야의 경우, 비록 근래 해외 한국학의 연구수준이 높아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학계와 해외학계의 수준이 연구 실적 및 자료의 질과 양의 수준에서 현저히 차이가 나는 분야였다.
더군다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직 학계에서 인지조차 못한 고서를 직접 찾아내 연구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으므로 한국 시민권을 얻어 계속 이 땅에서 원하던 연구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입대를 결심하였고, 다행스럽게도 21세기 초 한국에서의 군생활은 내가 우려했던 것 만큼이나 고되고 끔찍한 일은 아니었다. 최전방에서 밤을 새가며 소초 근무를 서는 강인한 전우들에 비하면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였다.
입대 1년이 지나고 이제 군에 남아있어야할 날이 군에서 남아있던 날보다 적어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군 입대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볼 수 있다.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로 마주칠 수 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으나 더 큰 성취를 위해서 거쳐야 하는 그런 의례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의례를 성공적으로 성숙해진 채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후회는 훈련소 문턱에 들어섰을 때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전역하고 부대를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인고는 인고가 아니기에...(konas)
이재정(상병) 9933부대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