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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병사 수기28] 비상

군생활이 나에게 있어 진정한 남자 그리고 사회에 나가기 위한 도약의 발판

Written by. 이근호   입력 : 2012-02-02 오전 11: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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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이란 높게 그리고 힘차게 도약하다라는 뜻이며, 또한 요즈음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임재범씨의 노래로 익숙한 단어이기도 하다.

 내가 '비상'이라는 단어를 수기의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군생활이 나에게 있어 진정한 남자 그리고 사회에 나가기 위한 도약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나는 2005년 1월 22일에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족과 여행을 목적으로 비행기는 타봤지만 여행이 아닌 공부를 하러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욱이 혼자 짐을 들고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두려웠고 한편은 자유를 얻은 느낌에 설레기도 하였다.

 그렇게 1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정말 처음에는 아무도 모르고 영어도 못해서 막막하기만 했다. 1년반 동안 힘겹게 혼자 서양인 하숙집에서 생활하면서 캐나다 문화와 언어에 적응을 해나갔다.

 그 후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 밴쿠버로 이주해 오면서 나는 점점 밴쿠버에 젖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든 사람들은 시민권을 따라고 권유를 하였지만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하면 자연스럽게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 되기 때문이다. 나는 캐나다 영주권자이지만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번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린 적도 없고 한국사람이면 당연히 군대를 가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2010년 5월 2일 인천공항 행 비행기를 탔다. 오랜만에 오는 한국이라 낯설게 느껴졌지만 여행다니고 친구들도 만나 이야기하고 놀다보니 금방 한국에 적응을 했다. 노는 것도 재미는 있었지만 막상 입대한다고 생각을 하니 마냥 즐겁게 놀 수 만은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늦게 입대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너무 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0년 8월 9일 나는 24살에 늦은 나이로 육군 논산훈련서로 입대를 했다. 논산훈련소에 다다를 때쯤 나는 수많은 카메라들과 취재진들을 보았다. 나는 연예인이 입대를 하는가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영주권자 입대자들을 촬영하러 왔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내심 TV에 나올까 기대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상파 방송기자들이 나에게 다가와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당황해서 무슨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한 15분을 그렇게 인터뷰를 했다. 그날밤 내가 지상파 TV 뉴스에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나 신기했다. 평생 나올까말까 하는 TV에 대문짝만하게 화면에 나오다니.. 나에겐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기회를 통하여 나는 영주권자 입대가 값지고 의미있는 경험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입소대대로 갔다. 나는 영주권자 입영희망 제도를 통하여 입대를 했기 때문에 각국 영주권자 입대자들과 같이 훈련을 받았다. 이왕하는거 열심히 해보고 싶어서 소대장 훈련병도 지원했다. 소대장 훈련병으로서 이전의 소극적인 성격을 버리고 리더십 강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다른 영주권자 전우들 중에서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이도 있었고 군대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 못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5주간 함께 훈련받으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소중한 경험과 우정을 얻을 수 있었다.

 5주간의 훈련소 생활은 짧았지만 그 기간동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3분이 채 안 되는 부모님과의 짧은 통화의 소중함, 내 곁에서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는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함 등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들이었다.

 게다가 체계적이고 능률적인 영주권자 입영제도와 조교, 소대장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이 우리 영주권자 훈련병들이 무사히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배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드디어 짧다하면 짧고 길다하면 긴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이등병으로서 부산행 기차를 탔다.

 영주권자들은 본인이 희망하는 지역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군에서 혜택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 가기 전에 살았던 부산을 나의 군생활 출발점으로 뽑았다. 나는 보급병이라는 주특기를 가지고 방공대대에 배치를 받았다. 자대는 훈련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곳이었다.

 훈련소에서와는 달리 직책, 계급별로 되어 있어서 정말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었다. 훈련소에서는 동기들과 장난도 치며 영어도 편히 쓰고 했지만 캐나다 생활에 너무 적응되었던 나는 자대에 와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했다.

 압존법부터 시작해서 말투나 행동 모든 것이 서툴렀다. 실수도 많이 하고 행동도 빠르지 못했지만 간부님들과 선임분들께서 이해해주시고 잘못된 부분들은 하나하나 고쳐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처음 자대에 왔을 때 내가 해외영주권자 자원입대한 사실에 간부님들과 선임분들은 의아해 하셨다.

 왜 안와도 되는 해외 영주권자가 굳이 고생하려고 군대를 오냐고.. 그럴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더 해서 사회에 빨리 적응하라고... 하지만 나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나는 정말 게을렀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생활이 나에게 익숙하게 되면서 몸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폐해졌다. 그래서 나에게는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내가 군대에 입대함으로써 부지런해지고 정신적으로 한결 성숙해져갔다.

 항상 22시에 취침을 하고 06시에는 기상을 하여 아침, 점심, 저녁을 규칙적으로 먹고 생활하니 몸도 건강해졌다. 자대에 보급병이라는 보직을 받아 생활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모든 보급품들의 품명들이나 행정업무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보급일에 익숙해져갔다.

 나중에는 보지 않아도 창고에는 뭐가 들어있고 몇 개가 배치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왜 군대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할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 왔다는 생활이 든다. 대대장님과 본부중대장님 그리고 나의 분대원들로 인하여 정말 알차고 보람찬 군생활을 하고 있다.

 혹시나 입대를 망설이고 있는 영주권자가 있으면 나는 과감히 군대에 입대하기를 추천한다. 사람들이 군대갔다오면 사람된다라고 말하는게 결코 틀린말이 아니다. 부모님의 소중함, 윗사람에 대한 예의와 공경 그리고 동료들간의 전우애 등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보이며 날고 싶어”라는 임재범씨의 노래 비상의 구절이다. 군대! 나에게는 사회로 나가기 위한 인생의 도약점이다. 앞으로도 군생활 열심히 해서 값진 경험을 새겨야겠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대대장님, 분부중대장님 그리고 동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강한 친구 대한육군 화이팅!(konas)

이근호(일병) 제53사단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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