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병사 수기29]중사 위에는 상사, 중령 위에는 상령?
찬우는 정말 소나기처럼 찾아왔다.
보통 신병이 올 경우 누가 온다 언제 온다 하는 정도는 며칠 전부터 대충이나마 알게 되는데,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미처 예상치 못한 소나기처럼 그렇게 별안간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도 화제였지만 찬우의 등장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찬우가 해외 영주권자라는 사실이었다. 우리 중대의 최고참 선임은 물론이거니와 그 보다도 더 오래 중대를 지키고 있는 행정보급관 등의 간부들도 해외 영주권 병사는 처음 본다고 했다.
그 흔한 미국, 캐나다 같은 곳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의 고향으로나 알려져 있는 ‘아르헨티나’였다. 중대원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 보아도 아르헨티나에 대해 아는 거라곤 축구선수 이름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르헨티나가 어떤 언어를 쓰는 나라인 줄도 잘 몰랐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찬우에게 궁금한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일단 아르헨티나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영주권 병사에 대해서도 접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메시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았던 것 같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언제부터 얼마나 왜 아르헨티나에서 살게 됐는지, 안와도 되는 군대를 왜 오게 된 건지, 아르헨티나랑 한국이랑 축구하면 어디를 응원하는지 등등 질문거리는 무궁무진했다.
찬우는 자신을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고 우리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스페인 말을 쓰며, 쌀은 잘 먹지 않고, 한국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아주 어릴 적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살았고, 한국말은 입대를 위해 미리 입국해서 지낸 일 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습득한 것들이 전부라 아직은 어색하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신은 아르헨티나와 한국과의 축구 경기에서 한국을 응원한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었다.
한국말이 어색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 산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찬우와의 생활은 문화적 차이를 느끼는 부분이 무척 많았고 그야말로 요란했다. 첫 난관은 관등성명이었다. 찬우는 한국어가 서툴러 한국어로 된 이름자체를 어려워했다.
그나마 받침이 없는 이름은 발음이 편해 빨리 외웠다는데 받침이 많은 이름은 발음 자체가 어려워서 외우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특히 우리 중대 행정보급관인 권진철 상사님의 성함을 가장 어려워했다. 혼자 ‘권쥔?’, ‘권잰촬’하고 옹알대면서 정확한 발음을 내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보급관님’이라는 호칭으로 타협하고 말았다.
또 계급의 종류는 어찌나 많고 다양한지 왜 중사 다음은 상사인데 중령 다음은 상령이 아니냐며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맞선임인 나는 그가 중대 사람들의 관등성명에 익숙해지도록 함께 다닐 때 누군가를 만나면 그의 관등성명이 무엇이냐고 계속해서 묻곤 했는데, 그렇게 며칠을 지나자 결국 중대원들의 관등성명은 다 알게 되었다. 관등성명을 어렵게 넘자마자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산의 이름은 ‘위계질서’였다.
간단히 말해서 찬우에게는 위계질서의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찬우는 스물 세 살의 성인이며 아르헨티나에서 학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여러 번 해 보는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가 군대에 와서 겪고 있는 위계질서 같은 것들은 아르헨티나에서 겪어본 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선배 같은 사람들이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직장에는 상관, 상사 같은 사람들이 있긴 있었지만 아르헨티나에서의 모든 관계는 기초적으로 친구의 느낌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의 위계질서의 느낌과는 거리가 매우 멀단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경력이나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군대의 위계질서는 ‘쎈’편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줄곧 나가지도 않고 살아온 이들에게도 군대의 위계질서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익숙해지는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 보통이다.
군대 오기 전의 짧은 한국 생활만으로 아예 위계질서의 문화자체에 대한 개념이 없는 찬우가 군 생활에 무리 없이 적응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 당연하다.
군대에서 속담처럼 하는 말 중에 ‘이등병은 모르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등병이 똑똑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등병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인 자세로 알아보는 것이 미덕이라는 의미다. 병영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전 방위적으로 많이 이루어지면서 선후임병 사이의 내무 부조리들이 많이 사라졌다.
특히 우리 중대의 경우 타 부대들과 비교해봤을 때 더 많이 변화되고 개선된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대에서 위계질서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군대라는 조직 특성상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운영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수준의 위계질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말년 병장보다는 이제 갓 전입한 이등병이 군 생활에 대해 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활력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계질서에 익숙지 않은 찬우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왜 이상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야흐로 한참 열심히 할 때라는 찬우의 이등병 삼호봉 시절이었다. 과거에는 후임병이 선임병에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아주 몹쓸 짓으로까지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가령 후임병이 선임병에게 “○○○상병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따위의 질문을 하는 상황 말이다. 그것이 몹쓸 짓으로 여겨졌던 이유인 즉, 직접 뛰어다니면서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것을 직접 찾지 않고 쉽게 하려고 하는 것이 후임병으로서 올바르지 못한 태도라는 것이다.
이제는 그런 부조리는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이런 상황은 좀 난감하다. 어떤 동료의 소재를 물어본 선임병에게 행정업무를 보고 있던 찬우가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라고 반문한 것이다.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의 파장은 정말 엄청났다. 그냥 재밌는 일이라고 같이 깔깔거리며 유행어마냥 서로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 라며 서로 주고받으며 농으로 회자되는 경우도 있었고,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똑바로 교육을 시켜야겠다. 이 놈은 안 될 놈이다 식의 진지한 부정 여론도 있었다.
이런 식의 사고(?)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위계질서의 법칙이 어려운 물리 법칙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찬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일로 바빠 죽겠다는 와중에서 말이라도 “한 번 찾아 보겠습니다.”보다는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가 매사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찬우에게 영원이 안 맞는 옷으로만 남을 줄 알았던 위계질서와 같은 군대 문화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찬우의 몸에 맞는 옷이 되어갔다. 다들 찬우가 살짝 얄미워 보일 때는 있더라도 싫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품이 크면 품이 크다고 알려주거나, 팔이 길면 팔 길이를 잘라주기고 하고, 다리 밑단이 안 맞으면 밑단을 잡고 잘라주는 식의 이찬우 개조 프로젝트에 모두가 동참했다.
단순히 모르는 것은 알려주고, 납득을 못하면 납득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설명해주고, 가끔 너무 못 알아들어 답답하고 짜증이 나더라도 참고 알려주며 우리는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찬우는 머지않아 사고뭉치의 왕좌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중대원들의 애정 어린 노력도 노력이었지만 찬우 자신도 자신과 군대 문화가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싫게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이 사회에 적응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큰 불협화음 없이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찬우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남들은 다 오기 싫다고 징징거리며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너는 왜 안 와도 되는 군대를, 그것도 모든 것이 낯선 이 곳에 왜 왔느냐고 말이다. 찬우의 대답은 별로 멋대가리도 없이 간결하다. “그냥 가긴 가야할 것 같아서”왔단다.
고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르헨티나의 풍경을 먼저 떠올릴 만큼 우리나라가 낯설지만 자신의 조국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누구에게나 소중한 청춘의 2년을 내던지고 혈혈단신 귀국하여 입대한 막내 이찬우, 그런 이찬우에게 사람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을 할 때가 있다. “야, 아르헨티나, 너희 나라로 돌아가!”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찬우는 그냥 헤헤 웃으며 속없이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얼마나 기분이 나쁘고 속이 상하고 억울할까 싶다. 누군가 저런 말을 할 때면 나는 옆에서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찬우가 돌아갈 너희나라가 바로 여기 대한민국이라고. 군대 오기 싫어서 징징 거리다가 억지로 입대했을 너보다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여기 있는 이찬우가 훨씬 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말이다.
찬우의 이름은 아직도 아르헨티나다. 다들 나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찬우의 이력이 독특하기 때문에 모두가 신기해서 그를 아르헨티나라고 부르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찬우를 아르헨티나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찬우가 “그냥 가긴 가야할 것 같아서”라는 말로 표현했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과 그의 용기를 훼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찬우는 전역 후에 아르헨티나로 다시 돌아가서 살지, 우리나라에서 살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곳에 있던지 찬우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 함께한 우리의 추억들은 빛바랠 일이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는 사실 찬우가 아르헨티나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
짓궂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의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 오면 함께 치킨 집에서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한국과 아르헨티나 중에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내기를 걸어보고 싶기 때문이다.(konas)
이대호(일병) 17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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