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병사 수기30]“무엇이든 해봐라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이제야 이 노래를 큰 소리로 당당하게 부를 수 있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나는 한국에서 살 생각 없어”,
“그러면 넌 왜 군에 입대했어? 입대 안 해도 됐잖아?”
그렇다. 사실, 해외영주권을 획득한 자들은 병역의무가 연기돼 사실상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수의 해외영주권자들이 병역을 ‘회피’하는 길을 택한다.
특히 한국에서 거주할 계획이 없는 해외영주권 취득자들은 더더욱 그렇다. ‘회피’가 부정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갑지 않은 현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태까지의 연예인 소식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나는 ‘회피’로의 길이 선택되는 이유에 ‘시간이 아깝다’는 편견과 ‘두렵다’는 이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고 생각한다.�이런 오해와 편견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일본에서 19년 동안 거주해 온 영주권 병사로서 일본의 유명 사업가 도리이 신지로가 남긴 “무엇이든 해봐라.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명언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계속 일본에서 생활해 온 이른바 일본파다. 식생활을 비롯한 모든 사고방식이 일본인과 거의 같다고 해도 부정할 이유가 없다. 내 주변 친구들도 거의 일본인이며, 한국인 친구라고 해도 일본에서 사귄 다섯 명이 전부이다. 그리고 도중에 한국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4년 동안 보내 봤을뿐 쑥스럽게도 한국어가 서툴고 내 조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자부심만큼은 어렸을 적부터 어느 누구보다 가슴에 깊숙히 새겨 가며 살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철부지한 행동이지만 중학교 1학년 때인 2002년에 한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4강 진출을 “심판매수”라며 놀려대던 일본 애와 싸움을 벌여 선생님께 꾸중을 받았을 정도다. 그 만큼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강했고 지금도 당연히 변함없다.
내가 군 입대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한국을 너무나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내 꿈은 일본 상사에 취직해 아버지와 같은 국제적인 비즈니스맨이 되는 것이다.
그 꿈에 다가서기 위해 일본 교토에 있는 사립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구사해가며 “한국인 인재”로서 활약한다는 비전과 함께 학생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조국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본인이 과연 ‘한국인 인재’로서 활약한다는 비전을 현실화 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 주변의 일본인 친구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일본인과 같은 인생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허전함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애국가를 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음 속에 공허함이 존재했다. 대한민국 육군 소속의 헬기수리지원병 출신인 아버지는 항상 “남자는 군 생활을 겪어봐야 진정한 남자가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러나 한국에 익숙지 못한 내가 막상 육군에 입대를 희망한다고 말하자 입대 전날까지 “정말로 입대할 거니”라며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보시던 아버지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011년 3월 7일 나는 논산에서 신병훈련 기간을 함께 보낸 30명 영주권병사 동기들과 전우로서의 첫 만남을 가졌다.
서로의 거주 국가는 물론 성격과 개성들이 가지각색이었지만 당당하게 조국을 지키러 왔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언어의 장벽, 훈련의 고통 등을 같이 이겨냈고 그것이 나에게는 큰 힘, 이른바 ‘전우애’를 느끼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훈련이 끝나고 내무실에서 영주권자 동기들과 한글 받침을 서로 봐주며 해외에 계시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던 그 시절은 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좋은 추억이다.
나는 군 생활을 통해 자유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군법으로 인해 자유가 통제되는 군 생활은 동작 하나하나가 명령과 지시를 통해 규정된다. 사회에 있을 때는 자유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도입해 모두가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입대하기 전에 군 생활은 인내심, 리더십 등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요소들을 비롯해 24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자유에 대한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조국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입대한지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정보사령부 공개정보처의 일본어학병으로서 군복무에 임하고 있다. 영주권자 병사로서의 프라이드를 바탕으로 늘 느껴왔던 “비(非)한국인”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 이외에도 날마다 쌓여지는 군대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강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 모습이 아니다.
나의 애국심이 뿌리내릴 정체성을 되찾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이 노래를 큰 소리로 당당하게 부를 수 있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konas)
이종호(일병) 정보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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