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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병사 수기34] 대한민국 군인으로서의 긍지

오늘도 내 마음에는 애국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고 태극기가 아름답게 펄럭이고 있다

Written by. 김대식   입력 : 2012-02-06 오전 10: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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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이다.

 아버지께서 미국에서 유학 가 계실 때 나를 낳으셨다고 한다.그리고 22년이 지난 현재 나는 이 군대라는 곳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다들 이해를 못하겠다는 목소리로 나를 말렸다.

 “군대를 안가도 되는 애가 왜 굳이 가려해?” “다시 한 번만 잘 생각해보길 바래.”

 나는 여러 번, 아니 수도 없이 내 결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물론 입대를 하면서 내가 잃게 될 것들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 결정을 번복하기에는 그 당시 내가 군대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호기심이 너무나도 컸다.

 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 또한 한 몫 했다. 이로써 나의 자원입대는 2010년 8월 30일에 실천되었고, 나는 학업과 추억들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담담하게 논산 육군훈련소로 들어갔다. 당당하게, 또 남자답게 입대했다고는 하지만, 난생처음 짧게 자른 머리와 함께 앞으로 2년에 가까운 시간을 군대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당시 미국 워싱턴대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공부에 한창 자신감이 있던 때였다. 또한 2년 가까이 교제하고 있던 여자친구도 있었다. 입대 전 그렇게 괜찮다고 했으면서 막상 입대하려고 하니 그때 당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잠시 포기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순간적으로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후회 없을 정도로 열심히 지내보자.”라는 생각과 함께 결의를 다졌다. 나의 군 생활은 그렇게 비로소 시작되었다.

 “146번 훈련병 김대식!” 나는 그 날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훈련소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입어보는 군복을 입고 총도 쏘아보며 땀을 쏟아 내었다. 밖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라 적응하는데 무진장 애를 먹었다. 체력도 한계에 다다른 듯 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다.

 그러나 훈련소에서 나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의지와 끈기였다.

 체력이 바닥나도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다른 전우들도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이기심을 버리고, 전우들과 힘을 합쳐 무사히 훈련을 다 마쳤다. 그리고나서 느꼈던 그 뿌듯함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고 가치 있었다.

 고작 6주밖에 안되는 훈련소 생활에서 나는 두 가지를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게 없다’라는 자신감과 나만 생각하지 말고 주변사람들도 생각하여 같이 마음을 모아야겠다는 공동체 의식이 그것 들이다.

 점점 더 성장해가고 있던 나는 훈련소와는 또 다른 세계인 자대로 가게 되었다. “이병 김대식!” 나는 그날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논산 항공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부대의 관제병으로 자대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나는 ‘관제’라는 단어의 뜻조차 몰랐다. 하지만 관제라는 것이 헬기 조종사들과 교신을 하여 헬기들을 통제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관제사로서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내 전공인 경제학이랑은 전혀 관련 없는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자대는 계급체계가 명확하여 선후임 관계가 확실한 곳이다. 입대 전 군인 친구들한테 대충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런 조직생활은 처음이라 어색하기도 했고 어리둥절했다. 다행히도 이등병이었던 내가 부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최고의 선임들이 있었기에 나는 빠르게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몹시 추웠던 1월의 혹한기 훈련과 정말 몸이 고생했던 5월의 유격훈련은 훈련받을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다 나의 부족했던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려 가끔 반성을 하곤 한다.

 지금부터라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대견한 아들이 되어야겠다. 전역하기 전까지의 나의 목표는 아프지 않고 꾸준한 애국심을 기르며 현재처럼 좋은 선후임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역하는 것이다.

 오늘도 내 마음에는 애국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고 태극기가 아름답게 펄럭이고 있다.(konas)

김대식(상병) 제1항공여단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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