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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臣)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병역기피를 능사로 여기는 일부의 몰지각한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통해 국가 안보 문제 앞에서 고개 들기를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2-02-19 오전 9: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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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을 앞두고, 도저히 중과부적이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장군은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며 선조에게 이렇게 장계를 올렸다. "신(臣)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이순신 장군의 무너져 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충성심, 의지와 결단, 그리고 두려움 없이 적진을 꿰뚫고자 하는 신념과 용기가 함축적으로 표현된 문구라 하겠다.

 원균의 대패로 인해 당시 조선은 200척의 함선 중 12척을 남기고 모조리 파선되고 말았다. 나라의 운명이 이른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때는 원균이 죽고 1주일 뒤인 1597년 7월22일의 일이다.

 선조는 간신들의 모함과 자신의 미움으로 인해 백의종군(白衣從軍) 중인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케 한다. 그리고 1597년 9월7일 마지막 결전은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전개되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국은 한참 후인 11월7일에 전해졌지만 이미 8월18일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병사해 비밀리에 철군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리 없는 조선이었다. 마지막 결전에 임하기에 앞서 이순신 장군은 목숨을 건 대전(對戰)을 앞두고 판옥선으로 수군을 모아 비장한 결의에 찬 말을 남긴다.

 "살고자 하면 죽고(生則必死) 죽고자 하면 산다(必死則生)." 그리고 결전에 돌입한다.

 958년 음력 11월19일(선조 31년) '진시'(아침 7시경) 수군의 공격을 독전하던 장군은 적함(敵艦)에서 날아든 적탄(敵彈)에 맞고 선상에서 순국한다. 장렬한 최후를 마치고 운명(殞命)하면서도 장군의 마지막 말은 오직 나라 걱정, 국가의 안위뿐이었다.

 그의 곁에서 보좌하던 장남 회(薈)와 조카 완(莞)을 향해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단 말을 하지 마라(戰方急 愼勿言我死)."의 말을 남긴다. 아들과 조카는 갑옷으로 장군의 몸을 가리고 계속 북을 치며 독려했다. 하지만 어이할까나, 이 해전에서 장남과 조카도 장군의 뒤를 이어 선상에서 전사한다. 그리고 처절했던 임란의 해전은 막을 내렸다.

  해전에서 왜적선 55척 중 31척이 침몰되고, 왜군은 혼비백산 후퇴에 급급했다. 마지막 승첩인 노량해전이 막을 내리고, 이순신 장군의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23전23승의 신화가 영원히 역사 속에 아로새겨 진다.

 임진왜란은 이순신 장군의 가문에도 혹독했다. 1592년 4월15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 장군의 가문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포함해 아들과 조카 생질 등 11명이 참전했고, 이 중 5명이 전사했다.

 ▲ 국제외교안보포럼 '제왕학 담론'에서 강연하고 있는 김유혁 박사. @konas.net

 17일 아침 서울 송파구 가락관광호텔에서 열린 제550차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서 항산 김유혁(전 새마을중앙협의회 회장, 단국대 부총장)박사는 484호 '제왕학 담론'에서 이순신 장군의 인물상을 임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을 함께 논하면서 우리사회 일각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터무니없는 괴담으로 몰아가는 일부 식자층을 꼬집었다.

 퇴계학과 율곡학 및 실학 분야에서 우리나라 전통문화연구에 큰 몫을 점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김유혁 박사는 이 날도 예의 해학과 촌철살인을 곁들여 이 장군과 서애 선생의 관계를 주지시켰다.

 김 박사는 "서애 선생은 1542년생으로 이율곡(1536년)보다 6살 아래고, 이순신 장군(1545년)보다는 3살이 더 많고, 이율곡과 이순신은 동성동본인 덕수 이씨지만 서로 만났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말하고는 "서애는 16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17세 때 전주 이씨 부인과 결혼해 이순신 가문과의 인척관계라는 일부의 설은 사실과 다르다"며 "(이순신이) 유성룡 가문과 인척관계이기 때문에 이순신을 천거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양 가계의 혼인관계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일축했다.

 그는 또 이순신 장군과 유성룡이 '동반자살'했다는 설에 대해서도 "말 그대로 허무맹랑한 조악한 얘기"라며 어이없어 했다.

 "유성룡은 59세 때 북인들의 무고에 의해 삭탈관직 당한 일은 있어도 자살과는 무관하다"며 "(삭탈관직) 3년 뒤인 1604년에 복직되고 다시 3년 후인 1607년5월6일 6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그런데도 동반자살이란 말로 욕된 발언을 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을 폄하하기 위해 유치한 잡설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그런 이들이야말로 '역사'라는 거울 앞에 떳떳이 설 수 없는 '원죄범인'들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고 부정했다.

 김 박사는 유성룡에 대해서도, 진정한 애국심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서애에 대한 깊은 마음의 일단을 표했다.

 "유성룡도 이 퇴계의 '주리론'을 신봉하는 동인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운신하기에 곤란함을 느낄 때도 많았을 것이지만 그는 국난정국을 이끌어 가는 행정의 수장으로서 불철주야 이어지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이 같은 국난을 다시 겪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집념을 가지고 징비록을 엮어 냈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고 며 쓸데없는 말로 민심을 이간질하는 이들이 우선적으로 봐야할 책이 '징비록'이라며 일독을 권유했다.

 이어 이순신 장군을 '성웅'으로 추앙하며 국민이 잊을 수 없는 이유와 장군의 용장으로서의 자질과 인격, 긴 칼 사용, 그리고 거북선에 72개의 화포구멍(胞穴)이 어떻게 있게 되었는가를 '72방위의 작전이 가능한 등방형 원리' 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육지전과 다른 해전 상에서의 차이점을 견주어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72수의 논리가 몽골의 주택인 몽고파오(GER)의 연목수와도 일치한다고 했다. 또 이는 공자의 제자 3000명 중 학문에 성공한 제자 수 72와도 맞추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72수는 전방위(全方位)를 커버하는 의미를 지니고, 거북선의 72개 포혈도 전방위 작전의 기능을 지닌 전투함임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몽골인의 전통주택인 게르(GER)를 역학원리로 풀이해 몽골 국민마저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그 원리를 몽골 지역사회개발의 모델로 제시한 그의 저서“새마을운동과 GER Model Town”으로 몽골 조야(朝野)와 사회 각계에서 높이 평가를 받게 하기도 한 김 박사는, 이와 더불어 우리사회 병역의무 이행 등 공직자들의 행태와 관련해서도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어머니 시묘살이도 선상에서 하고 가장 귀엽게 여기던 셋째 아들 '면( )'이 먼저 전사하는 등 영양실조로 혼절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일언반구 나라에 무엇하나 요구한 게 없었고, 도리어 진충보국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느끼며 순직했다"며 "병력기피를 능사로 여기는 일부의 몰지각한 사람들은 국가 안보 문제 앞에서 고개 들기를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일말의 양식이라도 찾아주었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신(臣)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그 혼탁하고 혼란의 와중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온갖 모함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누란의 위기에 빠진 국가를 구하고자 온몸을 바친 장군의 위국충정 앞에서 목전의 이익과 자신들의 세불리, 권력향유에만 혈안이 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위정자들, 관리와 지식인들, 교육자, 종교인들, 비대 권력화된 노조세력들에게 장군의 이 말이 귓가에나 다가 올것인지.(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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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장군은 그냥 장수가 아니다 국가를 구한 성웅이다 국가를위해 목숨을걸고 싸우고있는데 원균이 모함을하여 강등을하여도 백의종군하면서 나라를위하고 백성을 위한 장수가 이세상에 몇명이 있겠는가 우리후세가 정신을 기리고 받들어야 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12-02-20 오전 9: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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