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닢처럼 떨어진 그대여!
어제는 4·19 52주년이었습니다. 수유리에 있는 4·19 묘소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곳에 적혀있던 노산 이은상의 <4월이 오면>을 다시 되새겨 보았습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185명의 젊은 생명
꽃닢처럼 떨어지고
내가 가르치던 학생 둘이 거기 누워있습니다. 진명에서 가르친 고순자는 서울 미대에 다니는 학생이었고, 최정규는 연세대 의예과 학생이었습니다. 그 날 경무대 가까이서 만일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고순자는 작품 전시회도 여러 번 열었을 훌륭한 미술가가 되어있을 것이고, 최정규는 그의 동기동창들처럼 미국에 가서 전문의가 되어 개업하고 잘 살고 있었을 텐데.“꽃닢처럼 떨어져”버렸습니다. 그의 동기생들을 만나면 언제나 정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일 그 날의 젊은 학생들이 3·15 부정선거를 알고도 모르는 척 했더라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선거는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국의 민주주의를 살렸습니다. 이승만도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국민이 원한다면…”하는 한 마디를 남기고 초연히 경무대를 떠났습니다. 사담 후세인이나 무바락이나 가다피처럼 기득권을 붙잡고 늘어지지 않고 노(老) 대통령은 그 자리를 떠나서 대한민국은 민주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반미·친북·종북파’가 국회에 엉성한 교두보라도 하나 마련했다하여 춤을 추고 있지만 앞으로 있을 대통령 선거를 통하여 그들의 춤은‘살풀이’춤으로 어쩔 수 없이 바뀔 것이고, 민주주의의 승리로 말미암아 남북의 통일은 실현되고야 말 것입니다.
4·19에 이 겨레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의 눈에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나라로 낙인이 찍힌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아, 4·19가 이 나라를 살렸습니다.(konas)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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