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의 영웅은 돌아왔건만!
북한에 생존한 국군포로는 정부 추산 500여명, 그분들을 위해, 그 가족들을 위해 지금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6·25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 12구가 지난 25일 휴전 이후 62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조국의 품으로 귀환했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김관진 국방장관과 군 수뇌진이 비행장으로 달려가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한줌 흙으로 변해 돌아온 호국의 수호신을 최고의 예우로 극진히 봉영했다.
지난 2002년 6월29일 한·일 월드컵 열기로 전 세계의 시선이 대한민국으로 향하던 때 북한군은 서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경비정으로 NLL을 3마일(5.5㎞) 넘어와, 이를 저지하던 우리 고속정을 지근거리에서 함포로 기습, 이 교전으로 당시 참수리 375호가 침몰하면서 함장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조문은 고사하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해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도덕적 의무와 책무마저 저버려 국제적인 웃음거리를 자초했다. 군 수뇌부 또한 다를 바 없었다.
군인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국가의 안전을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업을 사명으로 하며, 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러기에 국가 또한 자신을 바쳐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희생한 위훈을 기려 최고의 예로서 대우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 함은 국가가 취해야 할 당연한 몫이자 귀결이다.
그런데 당시 대한민국정부는 그렇지 못했다. 국가를 위해 피 흘려 싸우다 전사한 고귀한 우리 아들들을 내팽기치다 시피 했다. 북한눈치보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5월25일 서울공항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국가 최고 지도자와 유가족들이 일치감치 나와 지구를 돌고 돌아 62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기는 12명의 영웅들을 맞이했다.
1950년 12월 그 유명한 장진호 전투에서 용전분투(勇戰奮鬪)하다 유명(幽冥)을 달리한 신원이 확인된 17세 故 김용수 일병과 32세 故 이갑수 일병 등 12인의 영웅들은, 그 해 지구상에서 가장 못살고, 찢어지게 가난하던 62년 전 당시의 조국이 아닌 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된 140여개 국가 중 누구도 감히 예측하지 못했던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조국 대한민국으로 자랑스럽게 귀환한 것이다.
그 놀라운 저력은 바로 자신들과 같이 피로서 조국을 지켜낸 동시대의 젊은이 호국용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들이 계셨음을 또한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 24일 발표를 통해 "(우리측) 인수단이 미국 하와이 소재 미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로부터 국군의 유해를 인수해 공군 특별수송기 편으로 귀환중"이라며 "휴전협정 체결직후 일부 전사자 유해를 교환한 사례는 있으나 북한 지역에서 발굴한 6·25전쟁 당시 국군전사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해 11월 필자는 이메일을 통해 한 통의 편지를 접수했다. 내용인즉 '한국전쟁당시 북한내 미군유해발굴'과 관련한 문의였다. 아버지 친구 분의 부탁으로 메일을 보냈다는 그는 "미국이 북한에서 미군유해발굴을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아버지 친구분께서 전쟁 당시 북한 땅에 미군 유해 30, 40기를 묻으셨다"면서 "죽기 전에 그 장소를 알려주어야 겠다. 그 장소는 나만 안다"는 내용의 북한에서의 미군 유해 발굴관련 단체를 문의하는 글이었다.
'코나스'를 통해 관련 사실을 공지했기 때문이었다. 하여 JPAC를 연계할 수 있도록 즉시 답신을 띄었다. 그리고 해가 지난 5월12일 다시 그분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안내해 준대로 연락을 취해 금년 2월 UN측 한국 위탁 담당관과 1차 인터뷰를 하고, 4월2일에는 하와이 미 국방부 JPAC에서 5명의 한국담당관들이 와서 2차 인터뷰를 마쳤다"며 "연세 많으신 어른을 배려해 부산까지 오셨다. 선생님 덕분으로 일이 잘 해결되어 감사드린다"는 답신이었다.
잊고 있었던 사실이 순간적으로 떠오름은 62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국군도 전국의 격전지에서 유해발굴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적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우리 군이 미덥다. 그럼에도 수만리 떨어진 적국(敵國)에서까지 유해발굴활동을 끊이지 않고 재개하는 미 정부의 자국민에의 보호·의리 대처 방식에 새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정녕코 배워야 할 점이다.
2005년 2월18일, 당시 병환으로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6ㆍ25 참전 국군포로 가족모임’ 발족식에 참석해 기자와 얘기를 나눈 귀환 국군포로 1호로 귀에 익숙한 故 조창호 중위는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는데 변변한 직업도 없이 월 35만원 생계비로 근근히 지내는 탈북 국군포로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도대체 (대한민국 정부는)이게 뭐 하는 것인가?"라고.
3년 넘게 벌어진 6·25 전쟁 동안 16만명이 넘는 국군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2000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정부가 발굴한 국군 전사자 유해는 6460구다. 미수습 국군 전사자 13만명의 5%에 불과하다는 통계다.
6·25 당시 포로로 잡힌 국군은 8만2000여 명으로 추산되나 정전협정당시에 송환된 국군포로는 8343명이라는 통계가 있다. 10분의 1만 송환되고 나머지는 억류되었다는 추측이다. 지금은 80세가 넘은 노인들이라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는 정부의 추산으로 500여명에 불과하다.
그분들을 위해, 그 가족들을 위해 지금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6·25전쟁 귀환 국군전사자 12 영웅을 보면서 스스로 자문자답케 된다.(konas)
이현오 (코나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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