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독립운동가 이만도(李晩燾)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명성황후 시해 후 예안 선성의진을 결성하고 을사조약 파기와 을사오적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고, 경술국치에 이르자 병탄에 항거하며 단식 순국한 이만도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경북 봉화군 봉성면에서 태어났다. 24세가 되던 1866년 정시 문과에서 장원으로 합격한 후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홍문관 부교리, 사헌부 장령과 지평, 사간원 사간 등의 청직(淸職)을 지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을 당시 최익현이 개항을 반대하여 올린 상소를 두둔하다 파직 당하였으며, 1882년 한미수호조약으로 나라가 혼란하자 낙향했다.
그 해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난 후 공조참의와 승정원 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1894년 6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자 이에 서상철이 거병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선생은 왕의 명령이 없는 거병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가 9월 의병봉기를 촉구하는 왕의 밀령이 전달돼 거병 준비를 하다 소모관 이용호가 일본군에 붙잡히는 바람에 뜻을 중단 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의병을 일으켜 대장을 맡아 선성의진을 이끌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외교권이 박탈되자 아들 이중업을 통해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 - 다섯 역적의 목을 베소서’라는 상소를 올리며 을사늑약 파기를 강력히 주장했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선생은 9월 17일 단식을 시작하고 단식 24일째 되던 날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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