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립운동가 이희승(李熙昇) 선생
국가보훈처는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에 저항한 우리말 지킴이 이희승(李熙昇) 선생(1897. 4. 28 ~ 1989. 11. 27)을 10월의 독립운동가 선정했다.
이희승 선생은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조선표준어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진단학회를 창립하여 국학운동에 진력하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1910년 관립 한성 외국어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학교를 중퇴하였다. 이 시기 선생은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강습원에서 한글과 국문법을 학습하고 독립사상을 정립했다.
이어 일생동안 우리말을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1918년 스물두살에 중앙고등보통학교와 1925년 서른 살에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여 언어학을 공부했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일제가 이듬해 8월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일본어 교과서를 사용하고 평상시에도 일본어의 사용을 강제하는 등 이른바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해나나가자 대학 졸업 후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조선어와 조선문학을 강의하던 선생은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했다.
선생은 1933년까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이루어냈으며 조선어 표준어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적극적으로 항거해 나갔다.
1942년 10월, 선생은 일제가 한국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 말살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한글 연구자와 한글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검거되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경찰서에서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8.15광복을 맞아 출옥한 후 곧바로 상경하여 1946년부터는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어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선생은 우리의 민족 문화와 정신이 짓밟히던 암울한 시대에 끊임없이 우리말을 연구하였고, 해방 후 그러한 각고의 결실로 [국어대사전](민중서관, 1961)을 편찬하였다.
선생의 이러한 노력으로 우리는 일제 35년의 지배를 받고도 우리의 언어를 지켜 낼 수 있었으며 이에 정부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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