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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터널을 아시나요?, 오음리 그곳엔 지금?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2-10-04 오전 1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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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내가 중고교 시절 이 곳에 오면 정말 사람들이 많았어요. 곳곳에서 시장이 번창하고 가게며 시장들이 얼마나 북적였는지 몰라요. 특히 주말이면 버스들이 도로가를 메우고 면회객들이 이고 들고 메고 바리바리 싸들고 이곳 훈련장으로 줄을 지어 들어서는 것을 자주 목격하곤 했지요. 면회 날이면 술집이나 다방 가는 사람들로 넘쳐났고요.”

 1960년대 중반에서 월남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70년대 초반까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일대는 요즘으로 치면 대박을 터트리는 황금알을 낳는 그런 곳이었다고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말할 나위 없고 가지 않은 남녀노소라 해도 논산훈련소는 다 알고 있듯이 월남참전 용사들에 있어 오음리는 오래 떠올리고 싶은 이들이건, 그렇지 않는 이들이건 간에 함부로 잊혀 지지 않을, 가슴속 깊이 묻어 둔 인생 동반 길의 향수이자 추억의 한 장일지도 모른다.

 연인원 30만 여명이 생명을 담보로 이역만리 타국의, 어디에서 총․포탄이 날아들지 모르고, 독침 난무에 독충이 우글대며 함정(陷穽)과 부비튜랩이 언제 나의 몸통을 과녁으로 삼을지 모르는 전투현장인 정글에서 ‘따이한’의 용맹성과 투혼을 불태웠던 젊은 영웅들.

 그 때 그 젊은 영웅들은 1960년대 국민소득 불과 100달러에 머물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경제발전을 견인하고, 1950년 6.25한국 전쟁 때 세계의 젊은이들이 UN의 기치아래 모여 이 땅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월남민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겠다는 장쾌(壯快)한 사명감을 안고 미 함선(수송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48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당시의 홍안(紅顔)의 젊은이들은 이제 60대를 훌쩍 넘어 70대에 이르기까지 가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연로해 지고 있다.

 지난 9월22일 오전, 높다란 하늘은 금방 깊어질 가을을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청명하기 이를데없고 구름 한 점 없었다. 더불어 코끝에 스치는 상큼한 바람결은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와 스스로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구부정하게 기울어진 채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어른 얼굴 크기 만큼의 해바라기며, 강아지풀들과 어울려 우리들 일행의 마음을 한층 들뜨고 설레게 만들어주었다.

 이 날 나는 1960년대 당시 월남전 파병 파월용사들이 훈련을 받던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에 위치한 ‘참전용사 만남의 장’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지난 2010년 개관한 당시의 베트남군이 게릴라전에 이용한 157미터의 지하요새 구찌터널(CU CHI TUNNELS)을 비롯해 무기제작실, 작전회의실, 군복 및 신발제작실 등을 갖춘 전시실과 정글, 월남의 전통가옥, 전술기지, 경계초소 등이 그 때 시설 그대로 재현돼 있었다.

 이 날 춘천에서의 강연회가 계획돼 있어 서울에서 간 국제외교안보포럼 일행 40여명과 함께 오전 11시 경 월남전 참전 용사 만남의 장에 들어선 우리들은 먼저 월남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국땅에서 용전분투 (勇戰奮鬪) 하다 전사한 참전용사를 기린 추모비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에 임했다.

 월남전은 1965년 3월10일에서 1973년 3월23일까지 주월사령부, 맹호, 백마, 청룡, 십자성, 비둘기, 백구, 은마 등 8개 부대 연인원 31만 2853명이 파병돼 5000여명이 전사했고, 2만 여명이 부상당했으며, 10만 명에 이르는 장병이 고엽제 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월남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케 해준다. 1960년대 중반까지도 선진국의 원조에 의존한 채 빈곤과 궁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우리에게 있어 월남전 파병은 한국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국민에게 제시한 야심 찬「카드」의 하나이기도 했다.

 월남 정부가 이 때 공병과 수송병과를 중심으로 자체 방위를 위한 정규군 1천여 명의 1차 파견을 정식으로 요청하기도 했지만 미국은 한국이 월남전에 참가할 경우 월남 파병 한국군의 봉급지급은 물론 월남전에서 소요되는 군수품 중 국내 생산이 가능한 품목에 대해서는 한국산을 구매 하겠다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등 명분과 실리 양면에서 참전을 유도하기도 했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에 의하면, 당시 파병을 놓고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말부터 고심을 거듭했다고 일화를 밝힌 바도 했다. 백 박사가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바에 의하면 “박 대통령이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대통령 침실에서 나온 담배꽁초가 30~40개씩 됐다.”고 증언한 대목을 보더라도 박 대통령이 얼마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참전 결심을 굳혔고, 우여곡절 끝에 국회 동의를 얻어 65년 지금의 동대문운동장인 서울운동장에서 박 대통령 및 3부 요인, 외교사절 등 3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월남에 파병되는 비둘기부대에 대한 환송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했다. 월남 파병의 시작이었다.

 파월 참전용사들은 48년 전 이 땅에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고, 6.25 한국전쟁 당시 아무도 알지 못한 나라와 그 나라 국민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이역만리 타국에서 피를 흘렸던 UN 해외참전용사들처럼 6.25전쟁 휴전 12년이 흐른 뒤 이번엔 그들이 주역이 돼 월남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지금 월남 참전용사들이 받는 생활지원금은 매월 12만원이 전부다. 연령대도 높아가고, 생활고로 어려운 참전용사 숫자도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고엽제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려온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이들 참전용사들이 고통 속에서 더 이상 눈물짓게 해서는 안 될 줄 안다.

 9월22일 우리들 일행이 오음리 ‘참전용사 만남의 장’을 방문하던 날, 그곳 추모비 앞에는 서울, 경기, 강원도 지역에서 온 참전용사 대표자 50여명이 우리들을 따뜻하게 반겨 맞아 주었다.

 그 날 추모비 참배를 마치고 즉석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현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30만 월남참전 용사와 5천여 전사자들의 역할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로 만들고, 오늘의 잘살게 된 대한민국을 이끌게 한 원동력이자 구심점이었습니다”고 운을 뗀 뒤 “이제 여러분들에게는 또 다른 임무와 역할이 부여돼 있습니다. 그 역할은 통일 선진대한민국을 선도하는 것입니다”고 파병과 통일을 연계했다.

 그러면서 “지금 세계에는 자랑스런 젊은 대한민국 국군용사들이 자유의 파수꾼으로 세계 속에 대한민국의 혼을 심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오래 전 흘렸던 피와 땀의 의미를 그대로 본받아 심고 있는 것입니다”며 “우리 군의 최초 해외 파병인 월남전 참전이 그랬던 것처럼 파병의 마무리는 이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되는 날 마무리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라고 월남 파병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오늘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konas)

이현오 (코나스 명예기자)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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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분(chadk1212)   

    미국이 대한민국 발전을 자랑스러워 하듯 월남이 정신차리고 패망하지 않았다면 더 자랑스러운 오음리가 될텐데 조금은 아쉽지요</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12-10-04 오전 8: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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