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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독립운동가 이석용(李錫庸)선생

비밀결사대 ‘임자밀맹단(壬子密盟團)’ 조직 맹활약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2-10-30 오후 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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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와 광복회가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석용(1877.11.29 ∼ 1914.4.28)선생을 선정했다.

 선생은 전북 마이산에서 거의하여 ‘호남창의소’ 의병대장으로 남원, 전주, 임실 등지에서 활약 중 체포되어 사형 순국하였다.

 선생은 1877년 전북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에서 태어났다. 1897년 8월, 10여 명의 동학과 함께 진안의 도동서려(桃洞書侶)로 이거하여 학문연마에 전심전력하였고, 이후 면암 최익현과 연재 송병선 선생에게 사상적 영향을 크게 받아 의병 활동을 전개 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외교권이 박탈되자 선생은 최익현과 임병찬이 주도한 태인의병에 가담하고자 했으나 최익현 등 12의사의 체포로 조직이 해산되자 1907년 전북 마이산 자락 용암에서 ‘호남창의소’라는 명칭의 의진을 만들고 의병장에 추대되어 진안읍 소재 헌병분파소와 우편취급소를 파괴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일본군의 기습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1907년 말 군자금을 확보한 선생은 의병을 다시 규합하여 ‘의진약속’, ‘의령10조’를 통해 전투력을 향상시키고 군율을 정비하여 일본 군·경과 시설물을 공격했다.

 친일세력인 일진회와 자위단의 처단에 앞장섰으며 임실, 장수, 남원, 함양, 구례 등을 비롯한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를 무대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여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의병부대로 이끌었다.

 1909년 일제가 선생을 체포하기 위해 진압잔적을 전개하자 이에 선생은 1909년 음력 3월 한시적으로 의병을 해산하였다가 이 후 나라가 국권을 상실하자 ‘의령단(義靈壇)’을 설치하여 전사한 의병들을 추모하고 일본천황을 암살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912년 겨울에는 비밀결사인 ‘임자밀맹단(壬子密盟團)’을 조직하여 일본의 테라우치총독, 을사5적, 정미7적 처단 및 일본 도쿄와 오사카 등지에서의 방화를 계획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다 1913년 말에 체포되어 1914년 4월 28일 사형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다음은 선생이 사형 순국 前에 남긴 우국충정의 뜻을 밝힌 詩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천고의 강상을 짊어짐은 중요하고
 삼한의 해와 달은 밝게 비치는데
 외로운 신하 만 번 죽어도 마음 변치 않으니
 사람으로 머리 숙여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네.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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