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이상재를 생각함
어제, ‘10월의 마지막 날’ 충남 서천군에서는 월남 선생의 동상 제막식과 아울러 선생의 삶과 정신을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서천의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있었습니다. 나는 주제 강연 30분을 하기 위해 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갔습니다. 어두움이 깔리고 가을비가 뿌리는 고속도로를 또다시 3시간을 달려 서울 집에 돌아왔습니다.
85세의 이 노인이 왜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갔는가.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나는 월남께서 세상 떠난 이듬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어른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을 리 없지만, 1929년에 발간된 <월남 전기> 한 권이 나의 삶의 방향을 정해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그 책 한 권을 읽으며 감격하던 때 나는 20대의 청년이었습니다.
월남은 누구인가? 그는 풍운아였습니다. 한말의 정계의 기린아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유교정신의 화신이었습니다. “의를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공자님의 가르침을 믿고 옳은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벼슬아치들의 부정‧부패를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에게도 대들고 거침없이 반박하는 한 시대의 거인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개종하여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종로에 자리 잡은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 YMCA)의 종교부 총무라는 직함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기독교적 신앙을 가르치고 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며 77년의 긴 생을 마감했을 때 국민의 총의로 처음 사회장으로 그를 모셨는데 당시 서울 시민 10만 명이 길거리에 도열했다고 전해집니다. 국장 못지 않은 성대한 장례식이었습니다.
나는 한평생 불의와 맞서 싸우면서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그 자의 잘못만을 미워하시던 월남의 그 너그러움 앞에 오늘도 나는 고개를 숙입니다. 월남이 한국인이었고 때문에, 나는 내가 한국인임을 오늘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마 죽는 날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월남 이상재 때문에!
김동길(www.kimdonggill.com)홈페이지 ‘자유의 파수꾼’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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