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호"는 이대로 좌초할 것인가…!?①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
오늘 날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연의 현상들이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국민의 기본의무인 병역의무를 거부하고, 빨치산을 찬양하며, 6.25 북침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맡고 있다.
국가정체성의 상징인 태극기와 애국가와 국민의례를 거부하고 대한민국의 근원인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한반도 기'와 "님을 위한 행진곡'과 '민중의례'로 대신하는 이른바 '종북세력이' 정계의 중추세력으로 버젓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주체사상의 정통성을 신봉하고 추종하는 자들로서 지난 63주년 광복절 기념행사도 거부한 바 있다.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서해에서 해군장병이 목숨을 잃는 절박한 순간에 동해에서 유유히 금강산 유람선을 띄운 자들이다.
저들은 해군기지를 해적의 소굴로 폄하하고, 여중생 사망과 광우병 촛불시위를 통해, 또한 앞으로 한미 FTA 폐기 등 격렬한 반미시위를 통해 국가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의 폐기와 주한미군철수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민족의 은인 맥아더 장군의 동상철거를 요구하고 성조기를 불태우며, 6.25의 영웅 백선엽 장군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국가건설에 이바지한 지도자들을 친일파로 몰면서 ‘반일’을 구실로 ‘친북세력’의 확장을 기도하는 위선과 기만을 서슴지 않는 자들이다.
종북세력은 북한 공작당국의 지시를 받고, 야당은 좌파 표를 의식해서 종북세력을 추종하고, 여당은 종북세력의 눈치 보고 좌클릭과 포퓰리즘에 영합하며 보수가치를 버리면서 까지 종북좌파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 보니 정치 판이 북한의 정치공작에 놀아나면서 북 공작당국의 보이지 않는 ‘원격조정’에 끌려가고 있다. 건국 이래 우리사회를 묵묵히 떠받쳐 온 '건전보수'가 설 땅이 없다.일찍히 경험해 보지 못한 초유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땅에 또 다시 친북 좌파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대한민국의 공산화는 피치 못할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 올 것이다.시간문제일 뿐이다. 김정일 사망 이후 나라의 운명이 조기통일을 논할 만큼 한가로운 상황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북에 의한 흡수통일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이 모든 현상들의 배후에는 북한의 대남공작의 보이지 않는 마수가 뻗쳐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깨달아야 한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롭다.
남북한 관계는 생사를 가르는 절박한 ‘제로 섬 게임’(zero-sum game)이다.
오늘의 한반도는 지구 상에서 탈 냉전기의 유일한 냉전지역으로 남아 있다.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간에 100만 이상의 병력이 대치하고 있는 세계최대의 분쟁지역이다. 북한이 남조선 적화통일을 혁명목표로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한 간에는 “이기느냐 지느냐, 먹느냐 먹히느냐”의 절박한 ‘제로 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남북한 간의 모든 문제는 ‘ZSG’의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북한정권이 당면한 2대 과제는 남조선 적화통일과 경제위기해소로서 양자 공히 ZSG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1) 남조선 적화통일
남조선 적화통일은 북한 정권의 불변의 혁명목표이자 존재사유로서 주한미군철수가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교역과 미국의 대외교역의 1/4이 각각 동북아에서 이루어지고, 미중패권경쟁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동북아의 정치,경제,군사적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그 중심에 위치한 한반도의 전략적 비중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한국전 휴전 이후 한반도 휴전체제가 유지되어 온 것은 주한미군의 전쟁 억지력과 한반도 현상유지(status quo)를 원하는 미,중 간의 전략적 묵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경우 한,일의 핵무장과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현실화 되면서 중국이 미,일을 상대로 동시에 패권경쟁을 벌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됨으로써 중국의 경제대국화 추진이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주한미군 철수주장은 상당부분 외교적 수사(diplomatic euphemism)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중국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에 따른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신장 움직임, 국제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국방비 감축에 따른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의 상대적 감소, 천안함 사태 이후 중국의 노골적인 ‘북한 껴안기’ 등 미중패권경쟁이 더욱 가시화되면서 그간 명분화 내지 형해화되어 왔던 북한의 남조선 적화통일 기도가 탄력을 받게 되는 미묘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그간 대남정치공작의 결과로서 남한사회의 안보의식이 해이되어 있는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여 2012 대선에서 반미친북정권의 출현을 위해 총력을 경주하고, 반미정권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극렬한 한미 FTA폐기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미국사회에 주한미군 철수여론을 조성하고 주한미군철수를 관철하는 데 총력을 경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할 것이다.
(2) 경제위기해소
수령독재체제의 ‘아킬레스 건’(Archiles’ heel)은 만성적 경제침체이며, 이는 수령독재체제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들로부터 야기되는 불가피한 현상이기 때문에 체제 자체를 폐기하지 않는 한 해소가 불가능한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른바 ‘개혁, 개방 딜레마’인 것이다.
체제유지에 최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북한당국은 수령독재체제를 유지한 채 경제위기를 일부나마 해소시키는 편법으로 국제불법행위(마약, 밀수, 위조화폐, 불법무기거래 등)와 군사적 긴장조성, 핵 위협 등을 통한 원조탈취에 한 동안 매달려 왔지만 점차 한계효용에 달하고 있다. 북한의 협박, 기만, 위장, 벼랑 끝 등 온갖 수법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대북제재 강화, 원조 피로증(donors’ fatigue)등으로 북한의 입지가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북한당국은 국제불법행위와 핵 공갈로는 당면한 경제위기를 해소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경제를 ‘muddle through’ 상황(진흙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모습)에 묶어 놓고, 인민경제를 생계, 생존 수준에 얽어 맨 채 ‘대북 퍼주기 식 지원’을 복원할 친북좌경정부의 출현을 지원하는 일에 ‘올 인’할 것이다.
북한당국이 대남정치공작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을 친북좌경정부로 하여금 국가정책으로서 스스로 추진토록 몰고 가겠다는 전략적 복안을 갖고 2012대선을 향한 정치공작에 총력경주 할 것이다. 2012 대선이야 말로 남북한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다.
김일성의 대남공작 4대 지침과 대남공작의 양상
(1) 김일성 대남공작의 4대 지침
북한이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시도한 것이 6.25전쟁이며 미국의 참전으로 실패했다. 이후 지난 60여 년 간 한미동맹에 의한 주한미군의 전쟁억지력과 한반도 현상유지(status quo)를 원하는 미,중 양 강대국 간의 전략적 묵계로 인해 북한의 재침기도가 저지되어 왔다.
김일성 주석이 평화적 방법에 의한 적화통일의 가능성을 느끼게 된 계기가 4.19 학생의거(1960)로 알려져 있다. 물론 4.19 학생의거는 장기독재에 항거하는 순수 민주화 애국운동이었지만, 김주석은 4.19의거를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고, 정권이 바뀌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학생운동을 이용하면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위장하여 민중혁명 방식으로도 남조선 적화통일이 가능함을 꿰뚫어 보고 대남공작을 구상했을 것이다.
4차 당대회(61.9)는 김일성의 지침에 따라 대남 지하당 구축에 최 역점을 둘 것을 결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신설된 통일전선부에 김 주석은 일반국민의 정신무장 약화, 학생운동의 주사파화, 전교조를 통한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좌경 일변도 교육, 상기 지침들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친북좌경정부 출현 지원 등 대남공작 4대 지침을 시달한 바 있다.
첫째,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3대혁명역량강화’ 공작을 구사하는 것이다. 남한국민의 정신무장을 해제하고 북한인민과의 동포애를 강조하면서 남한 국민으로 하여금 경제적 풍요에서 야기되는 전쟁기피, 웰빙추구 생활패턴에 젖어 안보의식을 망각토록 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북한정권이 남조선 적화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침 가능성이 전무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감으로써 남한 국민이 평화무드에 취하도록 ‘망국풍조’를 조장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북한인민에 대해서는 정신무장을 강화하고, 남한국민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면서 오로지 수령과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 던지는 ‘주체형 공산주의자’로서 인간개조를 시도하는 사상,이념 교양사업에 주력하도록 지시했다.
둘째, 반독재 학생운동의 주사파화 공작이었다. 이는 반 정부 학생운동이 장차 한국사회의 정계진출의 등용문화 될 것을 내다보고 여,야를 불문하고 장차 한국의 정계를 장악하고자 하는 중,장기적 포석이었다. 20여 년에 걸친 집요한 공작 끝에 광주사태(1980)를 계기로 반 정부 학생운동의 주사파화 정치공작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광주 민주화 항쟁의 본 뜻은 순수했으나,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풍토, 특히 한국사회의 이념구도를 일신할 정도의 중대한 정치적 사건에 북한의 대남 공작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생각일 것이다.
오늘날 ‘성역화’에 가려 북한 정치공작의 개입여부의 규명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지만, 5만 여명의 ‘혁명전위대’(vanguard)이자 직업혁명가들로 구성된 지하당 조직(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언급)을 갖춘 북한의 정치공작이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은 상식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북한의 통일전선부에는 대남정치공작만을 전담하면서 고도의 전문지식과 프로의식(professionalism)을 갖춘 3,600 여명의 공작전문가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하당 조직은 진보연대(30만 회원을 가진 대한민국 최대 정치조직) 등 종북단체를 동원하여 여중생 사망과 광우병 촛불시위를 이면에서 조종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앞으로 언제고 ‘한미 FTA반대 촛불시위’를 부추길 가능성 또한 매우 크다. 이점 친북좌경과 중도실용 15년 간 초토화된 우리의 대공전선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소련 공산주의 혁명을 주도한 레닌이 “1%의 직업혁명가 조직이 비의식화, 비조직적인 99%의 대중을 부추겨 능히 민중혁명으로 유도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광주민주화 항쟁의 ‘성역화’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북한 정치공작의 이면에서의 개입을 은폐하려는 북한당국의 또 하나의 고 단수 정치공작이라 할 것이다. 학생운동의 주사파화는 오늘 날 한국 정계가 애국심 부재, 국익보다 사익위주 풍조, 기회주의, 출세주의, 보신주의, 위선과 기만이 난무하는 정계풍토를 조성하는 주 요소가 되었다 할 것이다.
셋째, 전교조를 이용하여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좌경일변도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장차 세대교체에 의해 남한사회의 친북좌경화를 이끌어 갈 주도 세력으로 육성코자 하는 장기전략이었다. 공산주의 정치공작의 장점은 세대교체까지 내다보는 장기전략에 있다. 망하는 순간까지 정치공작에 매달린다.
좌경정부 10년 동안 안보교육이 실종되고 전교조 독무대의 일방적 좌경교육이 종횡무진 구사된 결과 한국사회 젊은이들은 6.25북침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한강의 기적’에 대한 자긍심과 역사의식이 소멸되면서 안보의식 자체가 실종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청소년(16-25)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2005.8)에서 미국이 북한과 전쟁하는 경우 북한을 돕겠다는 응답이 66%에 이른 사실이 젊은 세대의 안보의식을 무너뜨리려는 북한의 정치공작이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깊숙이 파고 들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교조의 좌경일변도 교육은 청소년 들에게 공중도덕, 준법정신, 인성교육, 국가의식을 실종케 하는 망국풍조를 조성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할 것이다.
넷째, 친북좌경정부의 출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지시했다. 북한 당국이 대남정치공작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을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출범한 친북좌경정부로 하여금 국가정책으로서 스스로 추진토록 몰고 가겠다는 전략적 복안을 전제로 한 지침이었다.
상기 4대 공작이 한국사회에서 당초 북한당국이 기대했던 바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한국사회의 이념성향이 ‘좌3:우3:중도4 구도’로 정착되었으며 이러한 결과를 도출한 결정적 요소가 두 번에 걸친 친북좌경정부의 출현이었다. 친북좌경정부 스스로가 북한정권이 매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남측에 요구한 연례적 요구사안들, 주적개념삭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및 한미연합사 해체, 국가보안법의 유명무실화, 안기부 등 대공기구의 무력화, 자주국방 명분으로 국방력 약화시도(2020년 까지 700억 불 투입), 미국의 핵 우산 보호 제거 시도(2006.10 한미SCM) 등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들을 하나하나 앞장서 시행함으로써 사실상 북측에 ‘백기투항’하는 이적행위를 서슴지 않고 수행했다.
김일성은 상기 4대 지침 이외에도 대남공작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구체적인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예컨대 남한사회의 기존 인권, 환경 등 시민단체를 종북단체로 만든 후 인권, 환경 등으로 위장하여 대남공작을 수행토록 지시하고, 힘없는 노동자 농민보다는 목사, 신부, 스님을 포섭하고 이들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보다 많은 사람을 포섭토록 지시하고, 조총련을 통한 우회공작과 남침 땅굴의 전술적 효용성을 강조한 바 있다. 김정일 또한 위장 탈북자를 통해 남한 국민과 북한 인민 간에 적개심을 조장하고, 수령과 당에 대한 불만을 남쪽으로 돌리는 심리전을 전개하고, 사이버 공작을 통해 남한사회의 젊은 세대를 포섭하는 등 구체적인 공작 지침을 내린 바 있다.
(2) 북 대남공작 양상
북 공작 당국은 남북한 간에 생사를 가르는 절박한 ZSG을 어느 사회, 어느 나라에도 있기 마련인 보편적 현상, 즉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 쯤으로 호도함으로써 남한국민의 위기의식을 해소시키고 안보불감증을 조성하는 데 공작의 초점을 맞춘다.
또한 경제문제(소득격차, 복지 등)와 사회문제(보혁갈등 등)를 부각시키면서 보다 중요한 안보문제를 은폐하고, 제기 자체를 원천봉쇄한다. 야당의 표밭과 북 지지세력이 공히 좌파인 점을 이용하여 좌파세력을 확대하는 데 야당을 이용하고, 나아가 야당의 정권쟁취와 북 정치공작이 공히 친북좌파 정권 수립에 있는 점을 이용하여 ‘반 보수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데 야당을 끌어들인다.
“협상은 미국과, 돈은 한국으로부터”라는 도식을 이용하여 한.미이간을 조성하고, 남조선 배제정책을 고수하면서, 좌파 및 종북세력으로 하여금 격렬한 반미시위를 벌이도록 부추기고, 미국의 국내여론을 주한미군 철수 쪽으로 유도하는 고단수 정치공작을 벌인다. 주체사상의 민족주의와 자주성을 부각시키는 반면, 한국사회의 자유민주주의세력을 ‘반통일, 반민족’ 세력으로 매도한다.
사이버 심리전을 통해 “OO당 찍으면 전쟁 난다” 식의 공포심을 젊은 세대에게 심어 줌으로써 전쟁기피 심리를 조장하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대북 퍼 주기 식 지원’을 해서라도 전쟁은 막고 보자는 식의 패배의식을 부추긴다. 탈 냉전 명분 하에 미,북 직접협상을 통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 후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하고, 한국의 대북지원을 역 이용하여 남남갈등을 조장함으로써 원조탈취강화와 국론분열을 기도한다.
‘민족 대단결’명분 아래 친북좌경정부로 하여금 남한사회에서 북 대남공작이 종횡무진 구사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토록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한 인구 1/2을 반미통일전선으로 끌어들이는 정치공작을 편다.
좌경정부 ‘햇볕정책’의 허구: 북 대남공작 활개, 남 대공기능 무력화
90년대 초 소, 동구공산권이 붕괴되면서 북한경제는 급전직하 침체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한 동안 북한당국은 미쳐 남조선 정치공작을 수행할 여유 조차 없었다. 설상가상 김주석 사망(94.7), 식량난(90년대 중반)까지 겹쳐 북한은 정권수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면초가에 처한 김정일은 ‘NPT’탈퇴라는 초 강수를 구사하며 유일 초 강대국 미국과의 일전도 불사하는 전쟁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주민통제를 틀어쥐고, 벼랑 끝 전술을 통해 미국과 ’94 제네바 핵 협상’을 도출해 냄으로써 자신의 통치기반을 다지고 부족한 카리스마를 견고히 구축하며, 엄청난 원조를 탈취하는 협상력을 종횡무진 구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위기는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 이 경제위기에 숨통을 터 준 것이 좌경정부 10년의 햇볕정책이었으며, 우리로서는 조기통일의 절호의 기회를 잃었다.
햇볕정책에 의해 북한의 대남공작에만 햇볕이 들었을 뿐, 남한의 대공업무가 무력화 되면서 국가안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햇볕정책이 표방한 남북교류는 실상은 ‘북북교류’에 불과했고,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종북활동을 지원했을 뿐이다.
정부기 북한을 도와줄수록 북의 대남공작에 역 이용되면서 남남갈등과 한.미이간이 증폭되고, 국민혈세가 북 군사력 증강과 핵무기 개발에 전용되면서 더 큰 안보위협으로 우리에게 되돌아 왔을 뿐이다. 좌경정부 10년 동안 두 번에 걸친 정상회담에서 남북한간 최대현안인 북핵문제와 북한 인권문제가 논의조차 된 적이 없다.
한국이 대북지원을 강화하는 유화정책을 추구한다고 해서 북한의 남한에 대한 태도가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수령독재체제의 ‘촌치의 빈틈도 없는 철벽성’을 간과하는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북한은 오로지 남조선 적화통일의 혁명목표를 향해 요지부동 자기들 나름의 일관된 정책을 추구할 뿐이다. 주체사상에는 오로지 힘의 논리만 통할 뿐, 주체의 사전에 도덕성이란 단어는 없다. 지금까지 “남쪽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식”이다.(계속) (konas)
김명배(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전 주 브라질 대사, 평화통일국민포럼 고문)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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