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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호"는 이대로 좌초할 것인가…!?②

Written by. 김명배   입력 : 2012-11-03 오후 1: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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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경제위기, 남 안보위기

 오늘 날 북한이 처한 위기는 경제위기로, 남한이 처한 위기는 안보위기로 요약할 수 있다. 전자가 빈곤 속의 물질적 위기로서 북한체제 자체에서 야기되는 현상임에 반해, 후자는 풍요 속의 정신적 위기로서 북한의 대남공작에서 야기되는 점에서 후자가 더 심각한 위기라 할 수 있다. 로마제국도, 통일신라도 풍요 속의 정신적 퇴폐 때문에 망했지 결코 물질적 빈곤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다.

 상당 수 국민은 남북한 간에 결코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고 믿고, 설혹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수령독재에 분노하고 있는 북한 인민이 남한 편을 들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데 지난 반 세기 이상 인민들에게 끈질기게 대남 적개심을 고취해 온 북한당국의 이념화 교양사업과 선전,선동의 위력을 결코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정일의 특별 지시에 의해 위장탈북자를 대거 남한에 침투시켜 이들로 하여금 북한에 있는 친척과 친지들에게 “남한 OO들 돈 좀 있다고 탈북자를 무시하고 탈북자 자녀를 학교에서도 왕따 시키고, 도저히 피를 나눈 동포라고 생각할 수 없는 나쁜 OO들”이라고 악 선전하는 공작을 집요하게 전개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KBS가 탈북자 102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중국이 67%, 한국이 30%, 한국을 형제국가로 생각한다 38%, 미국의 식민지로 생각한다 61%로 나타난 것은 북한 인민이 한국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결코 우리 기분만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북한 인민들은 아마도 전쟁이 나면 북한이 이기도록 기를 쓰고 싸울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이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고려시대든 조선시대든백성은 헐벗고 굶주리고 특히 보릿고개를 못 넘기고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때도 왕실과 양반은 잘 먹고 잘 살았다.그래도 전쟁이 나면 목숨 내걸고 나라를 지킨 것은 헐벗고 굶주린 백성이었다.백성은 늘 그렇게 살아왔고,북한인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당국은 그런 방향으로 인민을 이념.사상화 하는데 혼신의 정력을 기울여 온 정권이 아닌가...북한정권은 정상적인 국가라기보다는 마피아 범죄조직적 집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수령과 지배계층이 철통 같은 응집력과 결속력으로 똘똘 뭉쳐 폭력과 공포를 극대화한 선군정치로 인민을 틀어 쥐고, 마피아가 폭력으로 시장을 강점 하듯이 남조선만 먹으면 적화통일도 경제위기도 근원적으로 해결된다는 식이다.

 정 다급하면 핵 무기를 쓰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다. 우리는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를 결코 자유민주주의적 시각이 아닌 마피아 범죄집단적 시각에서 볼 때 비로소 북한체제를 제대로 이해 할 수가 있다.

한국사회 친북좌경세력의 성장

4.19 학생의거와 5.18광주 민주화 항쟁은 3.1독립운동과 더불어 민족의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확립한 민족사의 금자탑이었다. 북한 당국이 4.19를 계기로 대남정치공작을 가동시키고, 5.18을 계기로 학생운동의 주사파화를 실현한 것은 실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며, 국민이 이를 직시하고 북 정치공작을 저지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친북좌경 세력이 성장한 주요계기는 4.19학생의거, 5.18 광주 민주화 항쟁, 그리고 좌경정부 10년, MB정부 ‘중도실용’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공작이 파고든 결과였다.

(1) 4.19 학생의거

4.19학생의거는 당초에는 3.15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장기독재에 항거하는 순수 학생운동으로 출발했으나, 학생운동을 정권쟁취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야당의 정치적 이해, 이를 정계진출의 발판으로 역 이용하려는 정치지망생들의 정치적 야심, 야당탄압과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미국의 정치문화, 이 모든 요소를 남 조선 적화통일에 이용하려는 북한 정치공작 등 4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사회에 친북좌경세력이 뿌리내리는 토양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5.16 군사혁명 이후 장기집권에 항거하는 학생시위가 지속되면서 반 정부 학생시위는 어느덧 정계의 판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특히 학생시위의 ‘유혈사태’여부가 여야의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가르는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겉으로는 여야 모두가 유혈사태가 발생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았지만 내심은 달랐다. 학생이 피를 흘리면 야당에 유리하고, 경찰이 피를 흘리면 여당에 유리한 것이 정치현실이었다.

 나는 주 러시아 대사관 근무 시절 야당 총재 자격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관저만찬에서 직접 들은 얘기가 있다. 아다싶이 김 대통령은 ‘3락4당’케이스다. 세 번 째 출마했을 때 하루는 선거운동을 마치고 집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KBS TV 저녁 9시 뉴스에 당시 정원식 총리가 한국외국어대학 교정에서 데모학생들을 설득하다 학생들이 퍼 부은 밀가루 푸대를 뒤집어 쓰고 마치 유령 같은 모습으로 화면에 비친 모습을 보고 “어이쿠 또 떨어졌구나”라고 생각이 들더라는 얘기였다. 당시 학생시위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또한 야당이 반드시 ‘친북’성향을 띤 것은 아니지만 야당의 표밭이 좌경세력이고, 북한당국의 끈질긴 정치공작의 결과로서 학생운동이 주사파화 되는 등, 야당, 학생운동, 북한당국 3자의 이해관계가 친북좌파정권 창출로 모아지면서 야당과 북한당국의 이해관계의 공유면적이 확장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당초 학생운동은 투쟁의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레닌의 조직, 선전, 선동 기법을 원용하면서 ‘자생적’으로 좌경노선을 추구하게 되었다. 북한당국은 이 점에 착안하여 60년 대 초부터 학생운동의 주사파화를 집요하게 추진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던 중, 80년대 초 특히 5.18광주 민주화 항쟁을 계기로 학생운동의 주도세력인 ‘386 세대’의 주사파화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공적인 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시샘한 북한당국이 무리하게 ‘89 세계 청소년 축제’를 개최하면서 북한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어 북한경제의 버팀목인 소련의 붕괴로 대규모 원조, 국제우호가 적용, 교역 등이 일시에 사라지면서 북한경제는 급전직하 침체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이어 한,러(1990)및 한,중수교(1992), 김 주석 사망, 식량난 등 일연의 사태로 북한의 대남공작이 일시 주춤하다가, 김대중 정부 등장과 특히 6.15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사회에 평화열기가 고조되면서 친북 주사파가 전열을 재 정비한 데 이어, 여중생 사망 촛불시위의 ‘반미선풍’을 타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이어 탄핵역풍이 휘몰아친 17대 총선(2004)을 계기로 386 주사파 세력이 대거 정계에 진출, 청와대, 여의도를 비롯하여 정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언론 등 한국사회요로에 주사파가 대거 포진하게 되었다.

좌경정부 10년 동안 386 주사파 세력이 사실상 정계를 주도하면서 한국사회의 이념성향이 ‘334 구도’로 정착될 만큼 좌파세력이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2) 5.18 광주 민주화 항쟁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순수민주화 운동, 야당의 정권장악 차원의 지원, 이면에서 북한 대남공작의 개입 등이 얽혀 있어 그 성격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금기 시 될 정도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다만 야당의 집권의욕, 북한의 대남공작 등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면서 민주화 운동의 순수성이 상당 부분 희석되었다 할 것이며, 이후 좌경정부 10년 집권을 가능케 하는 동력을 제공한 중대 계기가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5.18 민주화 항쟁과 관련하여 ‘성역화’문제는 신중한 접근이 요망된다. 그것은 북한당국의 공작 차원에서의 개입과 야당의 이해가 ‘성역화’에 가려 논란 자체가 금기 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광주 민주화 항쟁의 ‘성역화’와 ‘호남몰표’에 대한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 북한 공작 당국이 ‘민주화’와 ‘자주화’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서 온갖 정치공작을 펼 수 있는 것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성역화’와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의 교활성 및 노회성을 감지할 수 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성역화’가 고착될수록 북 대남공작이 ‘민주화’와 ‘자주화’로 위장되면서 보다 유리한 공작 여건이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좌경정부 10년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좌경정부 1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이 정부의 제재 없이 종횡무진 구사된 결과 한국사회에 ‘334 이념구도’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북한당국은 이 구도를 바탕으로 ‘반 보수 진보연합’을 부추기고, 야당은 정권 쟁취 차원에서 이 구도를 이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친북여부와 관계 없이 대부분 정치 이슈에서 야당이 북측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제약을 안게 되었다 할 것이다.

(3) 좌경정부 10년

 김대중 정부의 출현이 가능했던 결정적 요인은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이른바 ‘DJP연합’을 통해 절대다수 호남 표에 추가하여 경상, 충청 표 일부를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 당시만 해도 일부 보수세력을 끌어 들이지 않고는 집권이 불가능할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좌파세력이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6.15 공동선언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69%에서 37%로, 주한미군 지지여론이 89%에서 56%로 줄어든 사실이 6.15 공동선언이 한국사회에 친북좌경세력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6.15공동선언 남측위원장이 천암함 사태의 북한 연루를 부인하는 서한을 미 국무부에 발송한 사실이 동 선언의 친북성을 말해 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것은 김대중 정부 5년 동안 상기 ‘334 구도’가 정착될 만큼 한국사회에서 좌경세력이 확고히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 정부가 친북좌경세력과 북한 공작당국이 주도한 ‘여중생 사망 촛불시위’의 반미친북 분위기에 편승하여 집권한 사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5년이 친북좌파의 토양을 배양한 기간이었다면, 노무현 정부 5년은 이러한 토양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안보체제를 하나하나 해체한 기간이었다. 종북단체인 전교조 및 민주노총의 합법화, 정부가 사법부의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범민련, 전교조, 민주노총의 탈법시위와 반미활동을 묵인한 사실 등도 이에 속한다.

(4) MB정부의 ‘중도실용’ 정책

 남.북한 간에 ‘제로 섬 게임’을 벌이는 절박한 상황에서 MB정부가 ‘중도실용’을 표방한 것은 친북정권 10년에 실종된 국가안보와 국민의 해체된 안보의식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친북 10년에 누적된 일연의 병폐현상들, 즉 자유민주주의 국가정체성과 ‘한강의 기적’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의 훼손, 안보의식 해소, 이념,사상문제의 혼란을 척결한다는 시대정신과 국민적 여망을 안고 출범한 MB정부가 소위 ‘중도실용’을 표방하며 친북정부 10년의 적폐를 방치하면서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이 좌경 10년의 연장선 상에서 자행되고 있다.

 MB정부 초기 서울 도심을 마비시킨 격렬한 ‘광우병 촛불시위’는 새 정부의 종북세력 척결의지를 시험하는 북한 공작당국의 탐색전의 성격을 띤 사건이었다. MB정부는 사실상 뒷짐지고 이를 수수방관함으로써 이후 북한 공작당국으로 하여금 한국사회에서 과거 친북좌경 10년의 공작패턴을 답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할 것이다.

 노 정부 탄핵 역풍 이래 정치권과 언론계 등에 대거 포진한 친북용공세력을 MB정부가 척결하지 못한 사실 또한 좌경 10년의 연장선 상에서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이 활개치는 동력을 제공했다 할 것이다. 2012 년 대선을 앞두고 친북좌경정부의 출현을 지원하는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이 집요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MB정부가 안보공백을 야기하는 중도실용에 안주하는 것은 대선을 겨냥한 북한의 정치공작에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다.

과연 주사파화 이후의 학생운동을 ‘민주화’ 투쟁이라 할 수 있는가…!

 한국사회 민주화의 주요계기는 4.19학생의거와 5.18민주화 항쟁이라 할 수 있으나 북한의 주사파화 정치공작이 개입되면서 민주화의 순수성이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친미가 반 민주로, 친북이 민주”로 자리매김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북한의 정치공작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북한 공작당국은 “학생운동의 주사파화 이후에도 4.19 당시의 순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이미지를 도용하는 기만전술”을 구사했다. 또한 여야 불문하고 정치권 역시 자신들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주사파화 이후의 학생운동을 주사파화 이전의 순수 민주화 반독재 투쟁과 동일시 하는 위선과 기만”을 떨치지 못 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성역화’도 북한의 정치공작과 야당의 정권차원에서의 개입을 은폐하고 ‘민주화’투쟁을 부각시키는 데 일조를 했다.

 학생운동의 ‘주사파화’를 은폐하고, 광주민주화 항쟁의 ‘성역화’를 부각시키는 일에 여야 정치권과 종북세력과 북한당국이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북한 공작당국은 공작개입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라 할 것이다. 이는 실로 순수 반 독재 4.19정신과 순수 민주화 5.18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더욱이 좌경정부 10년 동안 386 주사파 세력이 정계를 주도하면서 북한의 대남공작 차원에서의 선전,선동 용어들이 한국사회에서 여과 없이 통용되고, 또한 어느 면에서는 종북세력 스스로가 기회 있을 때마다 ‘민주화’ ‘자주화’로 위장하면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용어의 혼란이 극에 달해 있다.

 과연 주사파화 이후의 학생운동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주도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한 일이 무엇인가?”(What they did?) “그들이 어디에 있었는가?”(Where they were?)라는 두 개의 질문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가건설과 경제발전에 기여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의 확립과 ‘한강의 기적’에 대한 자긍심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면, 또한 그들이 한 일이 복면과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대한민국의 민주질서를 파괴하고, 공권력을 부정하며, 국론결집을 훼방하는 일이었다면 이들을 북한 공산주의의 추종세력이라 부를 수는 있지만 결코 민주화 세력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학생운동의 주사파화가 성공을 거두게 된 이후의 학생운동을 ‘민주화’ ‘자주화’로 부각시키는 것은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위선과 기만에 불과한 것이다. ‘주사파화’ 이후의 학생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주체사상을 찬양하며 대한민국의 전복을 시도했을 뿐, 대한민국의 ‘민주화’에는 180도 역행했을 뿐이다. 오히려 이러한 사실을 반성하고 자숙하는 ‘개전의 정’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점이 오늘 날 대다수 국민이 정치권을 불신하는 이유일 것이다.

3대 후계체제는 2012 대선에서 친북좌파정부 출현지원에 ‘올 인’(all in)할 것이다.

 북한의 대남공작의 최대 성공 사례는 두 번에 걸쳐 친북좌경정부를 실현한 일이라 할 것이다. 북 공작당국이 칼자루를 쥔 채 친북좌경정부의 묵인 내지 음성적 지원 하에 대남정치공작을 종횡무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두 번에 걸친 친북좌경 정부를 통하여 대 규모 원조탈취는 물론 안보체제의 상당 부분을 무력화시킨 경험에 비추어 친북좌경정권의 재 등장이야말로 대남공작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북한 당국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3대 후계체제는 2012년 대선에 총력 경주할 것이다.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남조선 적화통일로 성큼 다가서는 지름길이고, 단기적으로는 시급한 경제위기 해소를 위해 대북 퍼 주기 식 지원을 복원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친북좌경 10년, 중도실용 5년에 한국사회의 안보의식은 밑바닥 수준에 있고, 북한의 대남공작을 분쇄할 대공기능도 약화 될 대로 약화되어 있고, 정계는 물론 법조계, 언론계를 비롯하여 한국사회 요로요로에 친북좌파 세력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니 북 공작당국으로서도 과거 어느 대선 때보다도 내심 자신감이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북한의 대남 공작의 영향으로 경제문제, 사회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정작 국가의 존폐가 달린 안보문제는 뒷전으로 밀려 제기조차 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은 지리멸렬하다. 애국심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 반면 북한정권의 마피아 범죄조직적 응집력과 결속력 하나만은 우리 정치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

 북한 정치공작은 공산주의의 특성대로 뚜렷한 전략목표와 강력한 투쟁의욕을 갖고 있다. 그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는 종북세력도 마찬가지다. 북 공작당국과 똘똘 뭉쳐 시민운동으로 위장하여 대한민국 흔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야당은 좌파 표를 의식해서 종북세력에 추종하면서 북 공작당국과 종북좌파가 내건 ‘반보수 진보연합’을 지지한다. 여당은 좌파의 공세에 밀려, 보수의 기치와 보수의 가치를 외면한 채 종북좌파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

 결국 국정이 북 정치공작에 놀아나고 있다. 북 정치공작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정치권 전체를 ‘원격조정’(remote control)하는 식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온갖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이 나라를 떠받쳐 온 ‘건전보수’가 설 땅이 없다. ‘대한민국 호’가 표류하는데 선장도 선원도 손을 놓고 있다.

좌초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호’를 구출하자

 2012 대선에서 친북좌경정부가 집권하는 경우 한미 FTA반대 촛불시위 등 한국사회가 극도의 반미시위에 휩싸일 것이다. 미국의 국민여론과 의회는 물론이고 보수언론 조차 주한미군철수를 지지하는 쪽으로 급 선회할 것이다. 지난 2003년 한미동맹 50주년 기념결의안이 미 의회에서 부결되고, 미일수교 100주년과 미,대만 특별법 제정 25주년 기념결의안만 만장일치로 채택된 상황을 넘어설 정도로 한미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북한공작 당국은 민주절차에 의해 출범한 반미친북정권을 이용하여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하기 위해 필사적인 총력전을 펼 것이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미국의 원조는 핵 폐기 전제, 투명성 제고, 중국의 거부감 등 부담이 있고, 중국의 원조 역시 저자세와 예속화를 유발할 우려가 있어 내심 경계할 것이다.

 그러나 2012 대선에서 친북좌경 정부가 들어서는 경우 지난 친북좌경정부 10년 처럼 고자세를 견지하면서 아무런 부담이 없는 대북 퍼 주기 식 지원을 복원할 수가 있고, 오히려 남남갈등과 한미이간을 통해 국론결집 저해 등 유리한 대남 공작 여건을 조성할 수도 있고, 궁극적인 통일에 대비하여 연방제 통일방안 관철 등 정치적 실익도 챙길 수 있어 정치, 경제 양면에서 북한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게 되고, 남한이 종속적 지위로 전락하면서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이 남한사회에서 종횡무진 활개칠 것이다.

 국가의 운명이 2012년 대선 결과에 달려 있다. 이 땅에 또 다시 친북좌경 정권이 들어서는 경우 국가안보도, 자유민주주의 정체성도, 국민적 자긍심도 사라지고 대한민국이 북한의 남조선 적화통일의 야욕에 희생되면서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차기 대선은 실로 국가운명의 존폐를 결정짓는 역사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국민의 애국적 판단이 그 어느 때 보다 도 절실히 요망된다. 좌초의 위기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 호’를 구출하자. 이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konas)

김명배(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전 주 브라질 대사, 평화통일국민포럼 고문)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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