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한반도 평화공존 ②
4. 한반도 조기 통일에의 제약 요소
(1). 북한의 남조선 적화통일 정책과 남조선 배제정책
통일문제의 핵심은 ‘정체성’(identity)이다.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냐, 공산주의 통일이냐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든, 공산주의 통일이든 통일만 되면 된다” “어떠한 통일도 민족 분단보다 낫다”라는 소위 통일지상주의는 공산주의 통일을 기도하는 북한 당국과 남한 사회 내의 종북세력의 기만적 음모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은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통일일 뿐이다.
북한 당국은 그들의 소위 주체사상을 인용하여 “남조선 정부는 자주성이 없이 미국에 종속된 허수아비 정권에 불과하므로 통일을 주도할 자격이 없고, 통일은 자주정부로서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갖춘 북조선 정부 주도로 이루어 져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통일문제를 비롯한 남북한 간의 모든 실질 사안은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하고만 협의한다는 이른바 ‘남조선 배제정책’을 견지한다.
따라서 북한이 남한과 통일문제를 협의하는 것은 7.4공동성명(1972)이든, 6.15 공동선언(2000)이든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자유민주주의 통일과는 상극일 뿐, 결코 진정한 통일방안이 될 수 없다. 통일 협의의 모양새만 갖추면서 원조만 탈취코자 하는 전형적인 기만 전술일 뿐이다.
(2). 4강, 특히 미,중의 한반도 현상유지 선호
한반도는 4강의 국익과 이해가 상충되는 전략적 요충이므로 한반도 통일은 필연적으로 동북아 평화안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4강 모두 위험을 최소화 하기 위해 한반도의 현상유지 (status quo)를 선호한다. 4강이 겉으로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것은 자신들의 국익과 전략을 호도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diplomatic euphemism)에 불과하다.
특히 남,북한에 각기 배타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중은 한반도 전체가 상대방의 배타적 영향권에 속하게 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기 때문에 분란의 소지를 막기 위해 한반도 현상유지를 강력히 원한다.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영향권에 속하게 되는 경우 중국은 미,일 과의 패권경쟁에서 필수불가결한 ‘완충국’(buffer state)을 잃게 되고 해양으로의 진출이 제약을 받게 되는 반면, 한반도 전체가 중국의 영향권에 속하게 되는 경우 미국은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잃게 되고 주한미군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대외 교역의 1/4을 차지하는 동북아에서의 교역 이익을 지키는 기능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강 속의 1약’이라는 지정학적 제약을 안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한반도 현상유지를 원하는 4강의 묵시적 합의를 거스르는 것은 스스로의 존립을 위협하는 우를 자초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국이 북한의 ‘통미봉남’과 ‘통중봉남’전술의 이간책에 놀아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3). 한반도 평화공존의 과도기적 불가피성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한 관계가 제로 섬 게임에서 윈 윈 게임으로 전환되는 것이 선결요건이다. 북한 수령독재가 군사모험주의와 핵 비지네스를 통해 전쟁위협과 핵 공갈 등 무리수를 두며 체제유지를 도모하는 동안 수령독재체제 자체가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후계체제가 스스로 수령독재를 청산하고 정상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한 북한은 국가로서의 존속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북한이 붕괴 위협에 처하게 되면 북한에 지대한 전략적 이해를 갖고 있는 중국이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북한의 국가로서의 존속을 지켜 줄 것이다. 이는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이 중국에게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붕괴위협에 처하게 되면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하여 ‘단말마’의 발악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안정을 크게 뒤흔들 것이며 이는 결코 한국과 4강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상당 수 한국 국민은 북한에 김정일 사망 후 북한이 동족인 한국에 지원 요청할 가능성이 크고, 잘 하면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 하면서 조기통일이 실현될 것으로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는 기회 있을 때마다 ‘민족공조’ ‘민족자주’를 외치는 북한의 정치선전에 현혹되었거나 아니면 현실을 도외시한 ‘민족주의적 낭만’ (nationalistic romanticism)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한국이 북한을 흡수통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스스로가 붕괴되고 엄청난 통일비용을 감당할 경제력도 의사도 없는 한국이 무리하게 흡수통일을 시도하는 경우, 남,북한이 침체의 나락으로 동반추락 할 위험이 적지 않으며 한반도 긴장상황이 더욱 고조될 것이므로 이 또한 한국과 4강이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결국, 상당 기간 과도기적으로 남,북한 간에 평화공존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통일기반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시일은 걸리겠지만 오히려 현실성 있는 통일방안이 될 것이다.
5. 북핵과 한반도 평화공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보의 최대 위해요소가 북핵인 반면, 최대 보루가 주한미군인 점에서 양자는 상극관계에 있다. 한국과 4강은 각자의 국익과 전략에 비추어 한반도 평화공존과 현상유지를 추구함에 반해, 북한 홀로 남조선 적화통일을 지향하면서 현상타파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당면한 경제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진정한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데 있지만 체제 붕괴 위험 때문에 지금까지 주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개혁, 개방을 위해서는 체제유지를 담보할 ‘안전 판’으로서 북핵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할 것이다. 남조선 적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 철수가 선행되어야 하는 데 한국과 4강 어느 나라도 내심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을 담보하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이 지금까지 수령독재체제를 사수코자 만난을 무릅쓰고 관성적 질주로 내달아 오면서 연명을 도모해 온 (muddle through) 행적에 비추어 , 또한 최근 미,중 패권경쟁의 가시화에 따른 북한의 친중경사 현상에 비추어 친중 위성국화를 통한 수동적 개혁,개방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정변이 발생하여 민중봉기로 이어지는 경우 북한 당국의 요청으로 중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사태를 수습한 후 사실 상 위성국화 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중국은 경제 대국화 추진이라는 자신의 국익 추구 차원에서 북한에게 남침전쟁 포기와 중국 식 개혁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시실상 수령독재체제를 포기하고 남,북한과 4강 모두가 원하는 한반도 평화공존이 이루어 지는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비록 통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통일을 지향한 준비 단계로서의 의미가 크다 하겠다. 북한의 친중 위성국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북핵의 안정관리를 공감하는 미,중 간의 전략적 묵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미,중 양 강대국 간의 전략적 묵계가 궁극적인 한반도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로서 한반도 평화공존을 가능케 하는 관건적 요소가 될 것이다.
6. 결 어
통일은 민족사적 당위이지만 현실에서 통일에의 길은 멀고 험하다. 남북한 간에는 동서독의 경우와 달리 동족상잔의 전쟁과 동족 간의 극단적 이념대립으로 민족 동질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북한 당국이 남조선 적화통일과 남조선 배제정책에 집착하는 한 남,북한 간의 교류, 협력은 통일전선전략 차원에서의 원조탈취와 남남갈등 및 한.미이간 조성 등에 이용될 뿐 통일 여건 조성에는 기여하는 바가 없다. 따라서 남,북한 간에는 통일은 고사하고 그 전 단계로서 한반도 평화공존 조차 실현될 가능성이 철두철미 봉쇄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4강이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것은 각자의 국익과 전략을 반영하는 외교적 수사일 뿐 내심은 남북한 분단상태에서의 현상유지와 세력균형을 원하고 있다 할 것이다. 특히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중 양 강대국은 한반도에서의 기존 배타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현상유지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공존을 선호한다. 한국이 통일의 전 단계로서 한반도 평화공존을 의식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할 것이다.
6.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휴전체제가 주효했던 것은 미,중 간의 전략적 묵계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통일도 미,중 간의 전략적 묵계 없이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한국으로서는 한반도 평화공존에 관한 미,중 간의 전략적 묵계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이를 이면에서 지원하는 우회적 방법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핵협상 등과 관련하여 대북 경제지원의 상당 부분을 한국이 부담하는 사실을 미,중에 대한 지렛대로 활용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공존이야 말로 남,북한, 미,중 4국의 국익과 전략을 구현하는 최대공약수라 할 것이다.(konas)
김명배(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전 주 브라질 대사, 평화통일국민포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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