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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2막 7장"

Written by. 전민호   입력 : 2012-12-11 오후 12: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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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2년도 공익근무요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된 글임.(편집자 주)

 2막 1장 - 내 인생의 2막! 개봉박두!

 바야흐로 이 밤에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합니다. 9월에 불었던 서늘한 바람은 10월의 차가운 바람에 떠밀려 내년을 기약하며 떠나갔습니다. 추기(秋氣)의 냉풍(冷風)이 불어오면서 이성(理性)의 냉정(冷靜)도 함께 가져온 것 같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한 여름 들떴던 마음들이 하나둘씩 조용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며 2막의 시간들을 차분히 되뇔 수 있게 됐다는 점. 이 점이 기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느덧 공익근무(公益勤務)를 시작한지 10개월이 되었습니다. 아직 남은 시간이 14개월인데 10개월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이야기하면 호들갑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시간이 결코 저에게는 짧지 않았다는 것이 호들갑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제 인생에 허락해준 선물이 차마 감당할 수 없기에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성탄절(聖誕節)이었습니다. 성탄절이라는 것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가지지 않은 사람이든 연말을 아주 풍성하게 보내는 시간이지요. 그런데 그 날, 저는 좀 달랐습니다. 그날은 제가 공익근무를 시작하기 바로 전날이었죠. 정확히 말하면 4주간의 군사훈련에 소집되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누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추운데 군대에서 어떻게 있지. 한 달이라지만 군대라는 곳이 힘들긴 할 거야. 그런데 그런 생각보다 저의 마음에 물밀듯 솟구쳐 오르는 것은 ‘기대’였습니다. ‘이제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되는구나.’

 본래 2막이라는 것은 이렇습니다. 1막의 스토리가 끝나고 커튼이 쳐집니다. 그런 후에 다시 커튼이 걷히는 순간. 새로운 스토리가 전개되는 순간을 일컫죠. 그날 밤까지가 제 인생의 1막이었던 셈입니다. 2막이 시작되는 출발점에 서 있다는 생각이. 저를 설레게 하였습니다.

 사실 평소에 ‘공익근무기간 2년이 내 인생(人生)에 승부처가 될 것이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습니다. 현역으로 갔다면 못했을 것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자기 개발에 투자해야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생활을 배울 수 있는 기회. 남들은 방위라고 놀려대는 공익이지만 나름대로 공익근무 생활에 대해 뚜렷한 목표와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죠. 그렇게 2막이 열리던 아침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증평으로 입소했던 그 날. 친구들의 배웅 속에 훈련소를 입소하면서 제 인생에 2막이 시작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의 생활은 꿈같이 지나갔습니다. 모르던 사람들과도 알게 됐고 군대를 먼저 다녀온 친구들이 군대이야기를 하면 사실 어리둥절했었는데. 분대장이 뭔지도 알았고 연병장이 뭔지도 알았고. 생소했던 군대 용어, 군대 생활 등을 접하다 보니 한 달 남짓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사히 훈련소를 퇴소했고. 참 시기가 적절(?)하게 마침 훈련소를 퇴소한 후 그 다음 주 월화수가 설날이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편안한 휴식을 가졌죠.

 2막 2장 - 산남동 주민 센터 사회복무요원 전민호입니다!

 입영통지서에 저의 복무기관은 흥덕구청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주위에 물어보니 흥덕구청이라 쓰여 있으면 구청에서 근무할 수 도 있고 동사무소로 갈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흥덕구청 산하의 모든 기관이 저의 후보군이 되었던 거죠.

 설날의 휴식을 마치고 저는 흥덕구청으로 향하였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는 있지만 겨우내 내렸던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는. 아주 추운 날이었죠. 오히려 훈련소 가기 전날 보다 그 날 아침이 긴장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구청에 가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인력시장처럼 한명씩 데려간다는 군요. 그런데 이게 완전히 복불복(福不福)이라 어떤 사람은 비교적 일이 없는 부서로 떨어지고 어떤 사람은 일이 많은 곳으로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긴장감을 가지고 흥덕구청 총무과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그날 구청에 도착한 공익 중에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9시 20분까지였는데 8시 50분쯤에 도착했던 거죠. 도착한 후에 머리를 빡빡 밀은 한 사람이 얼쩡대고 있으니 구청직원분이 저를 불렀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훈련소 마치고 나온 공익입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니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자리에 앉고 신상정보를 간단히 적었습니다. 아마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저의 공익근무 데이터를 입력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구청 직원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산남동사무소로가! 집 가까운 곳으로 보내 주는 거야!”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사실 그 날 아침 집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만약 구청으로 배정을 받는다면 산남동에서 출퇴근하기가 굉장히 힘드니. 집 가까운 산남동주민센터로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아침부터 구청으로 가는 길에 결국 버스를 못 타서 택시를 타고 갔기에. 구청으로 배정받으면 정말 안 된다는 생각이 굳어진 찰나, 집 가까운 산남동사무소로 출근을 하라고 하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자리에 앉아 있으면 인력시장처럼 태우러 온다는 말은 루머였나 봅니다. 저는 제가 택시를 잡아타고 산남동주민센터로 향하였습니다. 그 당시 마음을 생각하니 다시 한 번 감격이 밀려오는 듯 하네요.

 사무실에 도착하니 처음 보는 사람들과 처음 접하는 환경이 낯설긴 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니 차츰 적응이 되었습니다. 또한 정말 오고 싶었던 곳으로 왔기에. 기쁨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지 열심히 해보려 했고 일을 처리한 나머지 시간에는 독서를 하며. 나날이 기쁨이 이어졌습니다.

 2막 3장- 이건 내가 생각했던 생활이 아니야

 강가나 호수에 가서 돌을 던져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때로는 성인이 되어서도 큰 돌을 물에 던진 후 일어나는 파장이 얼마나 멀리까지 가는지를 관찰했던 경험. 작은 돌을 던졌을 땐 파장이 멀리 못가서 아쉬워합니다. 그래서 더 큰 돌을 주워서 던져보죠. 그런데 그 돌 역시 처음엔 강 건너편까지 파장이 뻗어 갈 것 같이 요란하지만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처음엔 요란하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지고 마는.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공익근무를 하면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일을 하고 남는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며 보람된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런데 저 역시 호수에 이는 요란한 파장에 불과했습니다. 이 열정이 금세 사그라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신나게 했던 일들이. 점점 귀찮게만 다가왔습니다. 마침 2월 중순 즈음. 눈이 많이 내려 산남동 관내에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나가 눈을 치우고. 사무실로 봉사활동을 온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 눈을 치우고. 군대에서만 눈을 치울 줄 알았는데 공익생활을 하며 눈을 치우다니! 그렇게 눈을 치우고 사무실에 들어오면 각종업무 보조로 쉴 시간도 없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니 시작한지 한 달 즈음에 되어서는. 뭔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모든 생각들이 점점 흐트러지고 있었죠.

 2막 4장 - 힘들어! 힘들어도 너~~~무 힘들어!

 개그콘서트는 참 화제에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습니다. 숱한 유행어가 생겨나고 그 파급력은 대한민국을 휘몰아 칠 정도죠. 특히 요즘엔 브라우니를 모르면 간첩이 아닐까요. 강아지 인형을 이용해서 웃음을 자아내다니. 놀랍습니다. 그 브라우니를 히트시킨 코너가 ‘정 여사’라는 코너죠. 그 코너에서는 이런 유행어가 생겨났습니다.

 우선, 내용은 간단히 이렇습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산 정 여사 모녀(?)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물건을 바꿔달라고 하죠. 물건이 작다고 갑자기 바꿔달라고 말하면 상점의 점원은 그런 이유로는 못 바꿔 준다고 맞섭니다. 그러면 정 여사는 한 술 더 떠 이런 말을 합니다. ‘작아! 작아도 너~~~무작아!’ ‘너~~~무’ 부분에 강세가 워낙 강해 모든 방청객들이 따라하죠. 

 ‘너무’라는 단어에 강세를 주어 상황의 긴박함을 더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그 단어가 가장 적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정말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저에게 인내(忍耐)하라고 이야기하면 저는 거기다 대고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죠.

 무엇이 그렇게 힘드냐고 하시면. 동네에 지저분한 쓰레기가 있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제가 나가 쓰레기봉투에 넣어 정리를 하죠. 음식물쓰레기부터 시작해서 최악은 아이들 배설물이 들어있는 비닐봉투입니다. 부패되어 생긴 기생충들에 엄청난 냄새까지... 죽은 고양이 시체를 치우는 일,  동사무소 주변에 꽃과 나무들을 위해서 호수로 물도 주고. 물주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냐만. 물을 주기 위해서 긴 호수를 창고에서 꺼내서 물을 주고 다시 긴 호수를 돌돌 말아서 창고에 들여놓는 과정까지.

 정말 이제는 동사무소로 출근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으니까요. 책을 읽을 시간은커녕. 쉴 시간조차 부족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몸이 피곤하니 집으로 돌아오면 그냥 뻗기 일쑤였죠. 머릿속에서는 제가 계획했던 공부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 그냥 그렇게 출근하고 잠들고를 반복했습니다. 정말 이도저도 아닌 생활이 지속됐죠. 일하면서 배우는 건 없고 늘어나는 건 짜증뿐이요, 피곤하니 공부는 공부대로 안 되지. 정말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었습니다.

 2막 5장 - 부디 그곳에서는 편히 쉬세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아침부터 제 옆에 계신 사회복지 담당 주무관님이 바쁘셨습니다. 도청, 구청, 시청부터 시작해 병원 등으로 오고 가는 전화. 무언가 그냥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주무관님께서 전화를 마치시더니 저에게 출장을 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냐고 여쭈니 신고가 들어왔답니다. 관내에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독거노인 한 분이 계시다는 것이었죠.

 사실 몇 번 주무관님을 따라서 가정방문을 해봤던지라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렇게 차를 타고 간 곳은 산 밑에 어떤 집이었습니다. 그동안 그 노인 분을 지나다니며 돌봤다던 어르신 두 분이 집 앞에 나와 계셨습니다. 두 어르신들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니. 눈뜨고는 차마 지켜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공중파 TV에서 방영한 'SOS'라는 프로그램을 아시는지요. TV에서만 봐왔던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 보이니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어보니 엄청난 파리 떼가 마루에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식기들 속에는 눈뜨고 보기 역겨울 정도로 벌레들이 우글거렸습니다. 방문을 열어보니 고양이들이 있었고 심한 악취와 너저분한 옷가지들이 엉켜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어르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악취를 못 이겨 밖으로 나오니 어르신은 화장실에 계셨습니다. 그때 본 어르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나려 합니다.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부어올라 있는 팔 다리.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여 갈라진 손과 발. 이는 다 빠져 잇몸만 보였고 발톱은 어찌된 상황인지 시커멓게 변해 있었습니다.

 어르신을 보니 한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주무관님 역시 심각성을 깨닫고 한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어르신에게 이름과 주민번호를 여쭈었더니. 희미하게 나마들을 수 있었던 어르신의 대답은 저를 눈물 흘리게 하였습니다.

 “주민등록 없어요. 제 인생이 정말 험난해요….” 그런데 어르신의 눈은 우리에게 분명 도움을 요청하는 듯 보였습니다. 급히 차에 모시고 병원으로 이송하였습니다. 병원에 어르신이 입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제 마음 역시 안도감이 생겼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 응급실 침대에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이제 여기서 치료 잘 받고 건강하게 계세요!” “네. 고마워요.”

 그게 어르신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얼마 후 들려온 소식은 그 할아버지께서 입원 후 3일정도 계시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눈물이 그렇게 흐를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에 마지막 모습이. 그 와중에서도 고맙다는 말을 하시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2막 6장 - 단 한순간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그 시절 학교에 있었던 느티나무는 학교를 수호(守護)할 만큼 대단한 위엄(威嚴)을 자랑했습니다. 풍성한 나뭇잎과 쭉쭉 뻗어나간 가지는 모든 전교생에게 그늘을 허락해 줄 만큼 컸습니다. 그렇게 큰 나무를 보면 무엇이 먼저 보이는지요. 아마도 풍성한 나뭇잎과 무성한 가지겠지요. 그런데 신기한건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 지배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가지와 잎사귀가 나무의 원동력인 것 같으나 땅 속 깊숙이 박혀 있는 ‘뿌리’가 나무의 원동력인거죠.

 뿌리가 없으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모든 식물을 흔들리고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공익근무’라는 일을 시작하면서 뿌리를 먼저 내렸어야 하는데 그 작업을 미쳐 제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제가 해드린 건 없는데 할아버지는 떠나시며 저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은 ‘사명감(使命感)’입니다. 제가 할아버지에게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없었으나 할아버지는 그 도움을 타인(他人)들에게 나눠주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뿌리였습니다. 많은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인내하는 것도. 피곤함을 극복하고 내 계획을 해내는 끈기도. 사실 그것은 가지와 잎사귀였던 셈이죠. 

 그런 사명감이 생기고 나니. 제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의 존재로 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뿌리가 튼튼해지니 업무량이 많아도 감사가 넘쳤습니다. 이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랬습니다. 또한 공부를 하는 목적도 변했습니다. 중심이 나에서 ‘남’에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공부에 목적이 보통 무엇입니까. 나의 성공과 나의 잘됨이 목적 아닙니까. 하지만 내가 공부하는 이유가 ‘훗날 나를 통해 도움을 얻을 그 누군가’를 위함이라 생각하니 피곤함을 이길 수 있는 인내심(忍耐心)이라는 것도 생겨났습니다.

 그 노력은 작은 성과로도 나타났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대전에서 공익근무직무교육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교육에서 학생장표창과 최우수 학생 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습니다. ‘하나라도 더 배워 단 한부분이라 제가 보탬이 될 수 있는 곳에 사용하자’라는 다짐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공익근무(公益勤務)' 사전적 정의를 보니 ‘군 복무를 대신하여 일정 기간 동안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 나옵니다. 이 본질적 개념이 뿌리가 되어 가슴속 깊이 각인(刻印)되니 이 시간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제가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 많을 것이며 앞으로 제가 처리할 일들은 무궁무진할 테지요. 그 무수히 많은 일들 속에서 누군가에게 이익(利益)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받아버린 선물이 이렇게 기쁠 줄이야. 앞으로 인생 2막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은 어떨까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제 인생 2막의 시간이 흘러 분명 3막의 시간이 올 테지요. 2막의 여러 장들을 지나는 동안 관객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또한 인생의 3막을 여는 그 순간에 2막의 인생이 후회되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어 누군가에게 그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이제 2막 7장의 막이 올랐습니다. 숨죽인 관객들에게 주인공이 나오자마자 힘차게 한마디를 합니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 지켜봐주십쇼”

 부디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당신이 주신 선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Konas)

전민호(흥덕구청 산남동주민센터)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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