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애철수장부(懸崖撤手丈夫)와 임진년 일광(日光)극복기
- 진정한 장부와 2012년 뜨거운 여름 극복기-
아! 45년 만에 다시 찾아온 임진년, 그 어느 해보다도 뜨겁고 강렬히 달구었던
불볕더위를 잊게 만든 백범일지, 기나긴 밤사이 느꼈던 이 벅찬 감동은 늘 민족적
진리의 갈증에 허덕이는 내게 꼭 단비와 같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백범과 함께 역사를 바라보고, 때로는 함께 거닐며 겨레의 앞날을 논하는 문답의 시간은 대한민국 육군 장교인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던 것일까?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中京)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으로서 ‘군대가 국가의 간성(干城)이며 반드시 필요하다’는 군대 없는 설움을 호소하며 광복군 창설을 주관했던 백범의 인생을 이제는 어느덧 장성한 우리 육군의 5대 가치관인 ‘충성(忠誠), 용기(勇氣), 책임(責任), 존중(尊重), 창의(創意)’의 5가지 관점을 중심으로 바라보았다.
그중 첫째는, 백범이 항상 좌우명으로 새겨 실천하던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이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다.(得樹攀枝無足奇)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진정한 장부다(懸崖撤手丈夫兒)’ 라는 실천가로서의 ‘용기’(勇氣)이다.
어렸을 적 몰락한 양반 집안을 일으키고자 했던 용기,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황해도에서 동학의 접주로 동학군으로 해주성을 공격했던 기개, 김이언 의병부대에 참가
했던 고산리 전투의 경험과 특히, 1896년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에 따른 복수로
일본군 중위를 해치운 치하포의 의거에서는 장차 이 나라를 위해 헌신 투구할
미래 백범의 용맹무쌍한 모습을 십분 예견케 하는 대목이었다.
2차례의 투옥과, 교수형에 이은 탈옥, 15년형 등을 받고 고난을 겪었으나 옥중에서 암중모색을 하며, 오히려 더욱 강인한 의지를 정립하여 진정한 장부로서 담대(膽大)한 모습으로 일관하였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 성공 이후 목숨을 걸고 주모자가 당신이 하신 일임을 당당히 밝히고서 상해를 탈출하며 풍찬노숙(風餐露宿)하신 일들, 용기 있는 자의 선택에 대한 고난이었지만 한 번의 용기도 못 내고 평생을 후회하는 것 보다는 나라가 필요하면 스스로를 벼랑에서 잡은 손을 뗄 줄 아는 용기를 실천하는 백범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내가 함께 의기가 끓어오르면서도 각종 고난이 있을 때는 함께 고난의 길을 같이 걸어가는 마음이었다.
둘째, 백범의 가르침은 국가에 대한 충성(忠誠)의 흔들리지 않는 진실 된 가치관과 국가와 민족을 위한 높은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수많은 역경을 넘어 백범을 견디게 하였던 것은 겨레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으로 발원된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에 대한 소원” 때문이었다. 선생께서는 1919년 3ㆍ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 상해 임시정부에서 백범(白凡)으로 자신의 호를 바꾸고 고관대작 집안의 하인보다는 초가삼간이라도 내 집안의 문지기라도 하고자 하시는 충성스런 마음을 내서 결국에는 경무국장직을 수행하시고,
1931년 대일항쟁의 핵심으로 일본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창단, 이봉창 의사의 동경에서 일왕 히로히토 저격 의거와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의 대성공, 험난한 임시정부 대장정의 역정과 그 와중에 저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으나 역경을 극복하고 1940년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추대되어 임정의 최고수장으로서 광복군 총사령부 설치하였다.
1945년, 당시 민족내 공산주의자들의 교조적 행태와 이념의 허구가 횡횡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광복군의 국내진입작전 합의 후 종전(終戰) 직전 연합군 일원으로 참전의 기회까지 만들었던 백범의 삶은 오직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조국광복을 위한 충성스러운 전진의 연속이었다.
셋째, 백범 전편을 두 자식에게 쓰는 유언으로 남기고, 후편은 우리민족을 위해
남기신 민족과 국가에 대한 성(聖)스러운 책임의식(責任意識)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 일제에 대항할 책임을 깨닫고 이 민족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하여 당시 민족을 걱정하고 위했던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진사와 유학자 고능선 등
스승과의 만남, 스스로 우리 민족을 깨치기 위해서는 교육밖에는 없음을 깨닫고
실천한 애국계몽운동과 신민회(新民會) 활동 등은 막심고리끼의 ‘어머니’에서처럼
인생의 주체로 각종 교육과 경험을 바탕으로 깨닫게 된 소명(召命)의식의 발로라고 본다.
내가 한번 믿은 사람에 대해서는 깊은 신뢰를 하고 끝까지 의리와 믿음으로
상대를 대하였고, 임시정부가 존폐의 위기에 있을 때도 누군가는 정부의 모습으로
외압에 견뎌서 정통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민족의 대표로서의 책임의식을 그야말로 몸소 실천한 사례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 정통성은 백범의 책임의식에 의해서 숭고하게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무릇 성공한 자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자서전을 쓰는 사람은 많으나, 대한민국의 독립의 여정을 본인의 피와 땀을 절절히 흘려가며 자칫 풍전등화의 등불처럼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위해서 내 자식들이 내 유지를 이어서 대한의 자주독립에 힘써 매진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는 백범의 남다른 의식과, 때로는 훈계하는 선생님처럼, 때로는 내 목숨을 내어놓은 투사요, 전사처럼 울부짖을 때는 이는 선생의 흉금을 보는 듯한 마음에 애국심과 나라를 위한 책임을 넘어선 무한한 헌신을 느낄 수 있었다.
넷째, 동학에서 싹트고 신문물을 배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우리의 토양에 좋은 민주주의의 싹을 틔운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존중의식(尊重意識)이다.
과거에서 매관매직의 실태를 본 후 관직의 뜻을 접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마의상법을 배우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동학에 눈을 떠 애기접주로 활동하는 등 그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인(仁)을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성정을 전형적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임정 피난길에 안중근의 모친을 모시려고 하고 자신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을 위하는 모습은 본인이 믿음에 의해서 비록 총에 맞을지언정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존중은 내게는 정말로 큰 귀감이었다.
대한의 온전한 자주독립을 주장하시며 내놓으신 우리 민족의 인류관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는 홍익인간의 정신이 백범에게서 꽃피운 것도 당시에 일제와 제국주의가 판치던 국제정세를 넘어, 비록 약소국이지만 타국을 존중할 줄 아는 시대를 뛰어넘는 높은 민족정신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꼈다.
다섯째, 민족을 위하는 마음에서 발현한 창의(創意)적인 정신이다. 이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이 인생의 전반에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능기 선생에게 배운 위정척사론을 타산지석 삼아, 나라의 힘이 부족하면 외세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신교육(新敎育)을 받아들여 광진학교를 세우는 등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바탕이 된 계몽운동을 전개하여 국민을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 또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민족의 기를 살리기 위한 창의적 노력은 백범일지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백범이 1917년 동산평 이주 후 농촌 감독관 시절 당시, 그 지역에서 소작인들에게 도박을 시켜 추수 때 그들의 몫을 빼앗고, 뇌물을 바치는 자에게 소작을 내어주는 악습들이 횡횡한 지역에서 내놓은 “도박하는 자는 소작권을 주지 않겠다. 학교를 보내는 자에게는 일정의 소작 혜택을 주겠다.”는 등의 소작인 준수규칙은 마치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던 새마을 운동의 전신(前身)처럼 당시로써는 관행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행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가 중국 농촌 가흥 남문 밖 농가에서 기숙할 때 중국의 농기구와 사용법을 면밀히 살펴보며 전답에 물을 대는 나무 톱니바퀴와 양잠하고 실 짓는 기계 등을 보고 “우리나라 선인(先人)들이 사절로 다닐 때 그들은 모두 장님들이었던가? 필시 허깨비나 쫓고 국가의 계책은 무엇이며 민생은 무엇인지 생각도 못한 것이니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닌가!” 라며 개탄하고 우리 국가의 특성과 민도(民度)에 맞는 주의와 제도를 연구하려고 했다.
이 시대를 사는 현대에도 필히 적용해야 하는 창의적인 정치이념도 볼 수 있다. 1947년 우리에게 남긴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밝힌 ‘나의 소원’에서 ‘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다. 군주나 기타 개인 독재자의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되면 그만이나 다수의 개인으로 조직된 한 계급이 독재의 주체일 때에는 제거하기는 심히 어려우니 공산당의 독재정치는 독재정치 중에서 가장 철저한 것이다.’ 라고 북한 공산주의의 모순에 대해 정확히 통찰력을 보며, 이미 공산주의의 시조인 구소련에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공산주의를 쫓는 소위 종북이나 좌파로 호명되는 어리석은 세력들이 이제는 민주주의의 다양한 이상과 보편적 철학,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어우러지고 자유와 평화가 충만한 세상을 직접 바라보고 느끼며, 즐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육군의 오대 가치관인 용기, 충성, 책임, 존중, 창의를 아우르는 위국헌신(爲國獻身)의 모습을 이처럼 잘 구현한 현대의 위인이 있었던가? 정말로 자랑스럽다. 일생을 이처럼 신명(神明)을 다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백범의 일생은 특히, 이 시대의 국민의 안위와 국토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군인들이 본받아야 할 이상이요 표본과도 같다.
이처럼 백범선생을 비롯하여,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사적 관점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원조국에서 지원국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반세기 만에 비약적 발전을 이룬 국가로 성장하여 전 세계 개발도상국과 주요 신흥국으로부터 국가 건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이는 바로 ‘나는 우리 교육의 힘을 통해 산과 들에는 산림이 무성하고 오곡백과가 가득하여 촌락과 도시는 풍성하고 화평하며 우리 대한 사람의 모든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을 믿는다.’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실현되고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
중국의 고승 황벽선사의 ‘매서운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던들(不是一番寒徹骨)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 라는 시와 같이 백범의 인생은 민족의 시련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이겨낸 그 숭고한 위국헌신의 정신으로 그윽한 매화 향기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영원할 것이다.(konas)
군수사 탄약지원사령부 3탄약창 소령 염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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