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문예물공모전⑨〕평택 해군기지의 교훈
본 내용은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2012년 보훈문예물 공모전』에서 「수필」 초등부 우수상으로 선정된 김진유(안양 안일초등학교) 학생의 글임. (편집자 주)
‘아, 어쩌면 저렇게 동강이 났을까? 어뢰는 얼마나 무섭기에 저 큰 배를 세 동강이 나게 했을까? 무섭다, 정말 무섭다. 슬프다, 정말 슬프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찾아간 평택 해군기지 천안함 앞에 서자 갑자기 작은 몸 가득 소름이 쫙 끼쳐오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으로 볼 때는 두 동강 났다고 들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세 동강이 난 것이다.
갑자기 숨이 멎을 것 같았다.백령도 깜깜한 어둠속에서 살려 달라고 몸부림 쳤을 마흔여섯 해군 용사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슴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설명하는 아저씨의 모습도 희미했고 목소리 또한 잘 들리지 않았다. ‘아, 가여워라!’ 아, 무서워라! ‘이런 내 마음속 혼잣말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고 가슴을 아프게 누르고 있었다.
전깃줄 작은 선 하나만 끊어져도 고장이었을 텐데 수 백 개의 줄들이 끊어졌고 굵게 작게 가늘게 길게 끊겨진 전깃줄들을 보자 이어지지 않는 우리들의 마음과 같아 보였다.
나는 왜 천안함 앞에 도착하자마자 묵념을 올려야 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바다를 지키다 젊음을 바친 해군 용사들의 넋을 위로해 주고 감사히 여기며 묵념을 올릴 때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 동안 입으로만 떠들었던 ‘통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가벼운 짓이었나. 뉘우치고 또 뉘우쳤다.
전시관에 들어가서 보니 북한의 도발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NLL이 무엇인가 읽고 동영상으로 보며 휴전협상 후에도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만을 엿보며 살아온 북한의 태도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동강난 천안함을 떠나 참수리호로 옮기자 나는 북한이 너무 미워졌다. 2002년이면 내가 세 살적이어서 잘 몰랐을 때인데 북한이 쏜 총알 자국들 이 참수리호 앞에, 뒤에 수없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섯 해군 용사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그랬다. 전시관 유리창 안에는 얼굴도 모르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하늘나라로 보낸 열 살 어떤 여자 아이의 편지도 있었다.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난 후에 태어났다는 가여운 아이의 슬픈 편지여서 그런지 목이 꽉 메여왔다.
내가 사춘기라서 그럴까? 돌아오는 발걸음이 많이 무거웠다. 그리고 많이 우울했다. 그 동안 내가 누렸던 모든 자유들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돌아가신 국군 용사 분들께 눈을 감고 용서를 빌었다.
그렇다. 이제는 그래서 입으로 떠드는 ‘통일’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통일’을 풀어야겠다. 여기 저기 구멍 난 우리들의 안보는 참수리 호에 박힌 총알자국보다 천안함에 쏘아진 어뢰보다 더 아프게 우리들의 행복을 빼앗을 테니까. 우리의 자유를 송두리째 앗아갈 테니까.(Konas)
김진유(안양 안일초등학교)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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