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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문예물공모전⑤〕그리움을 담은 통일의 염원

Written by. 김예준   입력 : 2012-12-16 오전 8: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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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2012년 보훈문예물 공모전』에서 「수필」 중고등부 우수상으로 선정된 김예준(강원 영월고등학교) 학생의 글임. (편집자 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모부는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 중 한 분이시다. 오랜 교사 생활을 거쳐 교장 선생님이 되신 이모부께서는 경험을 통해 빚어진 지혜로 내가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 주셨다.

 동년배 친척이 없어 집안 행사 때마다 외롭게 혼자놀고 있을때면, 이모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고,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도 들어주곤 하셨다. 항상 따스하고 만날 때마다 밝은 미소를 지으시던 이모부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크면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라고 매번 다짐해 하고는 했다.

 하지만 언제나 밝게 미소 지으시는 모습과는 달리 이모부의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상처와 아픔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모부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와 헤어져 지금 이 순간에도 북에계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살고 계신다.

 어딘가에 건강하게 살아계실 것이라 굳게 믿고 아버지의 환갑을 준비하시고, 명절에 북쪽으로 잔을 따르며 남몰래 눈시울을 붉히시던 이모부의 모습. 어린 마음이지만, 그런 이모부께 궁금한 점이 있어도 여쭈어 볼 수 없었고, ‘아버지’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 또한 죄송했고 조심스러웠다. 다만 이모부 댁에 갈때마다 이모께서 하나씩 들려주시던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의 일을 짐작해 볼 뿐이다.

 우리 이모부는 3살 되던 해 아버지와 헤어지셨다. 1950년 8월 14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2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북한군은 당시 이모부가 살고 계시던 가금면 정천리 형천으로 진격해와 순식간에 마을을 점령했다. 북한군이 마을 점령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마을에 살고 있던 지식인 청년층을 강제징집 하는 것이었다.

 이모부의 아버지께서는 한학을 공부했으며 청년 대표라는 이유로 강제로 면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많이 걱정했지만, 북한군의 위세 아래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하루하루를 걱정과 근심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살얼음 위를 걷듯 시간을 보내던 중,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국군이 반격을 시작해 북한군이 북으로 후퇴를 결정했고, 이모부의 아버지께서도 이 때 북한군에게 잡힌채 북으로 끌려가 행방불명이 되고 만것이다. 이모부의 가족은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기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계속되는 전쟁의 여파로 인해 남쪽으로 피난을 왔고 가장이 없는 어려운 생활을 보내셨다.

 말을 잠시 멈추시고 근처 책꽂이에 꽂혀있던 사진첩에서 그때의 사진을 보여 주시던 이모께서는 이모부의 여동생이 태어나기 4개월 전에 아버지를 잃게되어 아버지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났었다는 아픈 과거가 생각 나셨다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셨다.

 이모부께서는 아버지가 전쟁 중에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타까움 속에서 삶을 살아오셨다.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께서 대한 적십자사를 통해서 남한에 살아있을 가족을 찾고 있다는, 기적과도 같은 내용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모부께서는 그 연락을 받자마자 이산가족 방문 명단에 이름을 올리셨고, 2001년 10월에 서울에서 만나기로 통보를 받은채 기대속에서 그날을 기다리고 계셨었다.

 하지만 북한측의 일방적인 정책 철회로 상봉이 무산되었고 이모부는 좌절을 맛보셨다고 한다. 북한의 이기적인 태도에 눈을 찌푸린 내게 "처음엔 화도 나고 안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더욱 그리움을 일깨워주었던 사건이었단다." 라고 말씀하시며 이모는 편지 한 통을 보여 주셨다.

 상봉이 좌절된 직후 이모부께서는 이산가족 서신 교환을 신청해서 아버지와 편지를 교환 하셨다고 했다. 한국 전쟁이 휴전이라는 형태로 종결된 후 이모부의 아버지는 공부를 계속해 오셔서 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며 아버지가 정말 살아계신다는 행복감에 고생은 덜 하셨을것 같은 안심을 하셨다고 하신다.

 편지에 묻어있는 손때와 구석구석 묻어있는 눈물 자국들이 이모부께서 느끼셨던 안도감과 그 편지를 정말 소중히 여겨 오셨던 모습을 생생하게 증명해 주는 것만 같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모부는 편지를 계기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그 뒤로도 계속 노력을 기울여 오셨고 노력의 대가로 2002년 5월 감격적인 상봉을 이루어 내셨다. 함께 가셨던 이모께 그 때의 감격을 여쭈어 보니 금강산 온정각에서 600여 명의 사람들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족을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터트렸던 감동적인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비록 직접보지는 못했지만 가족이 재회하고 오열했을 그 광경을 아쉬움 섞인 미소로 떠올려 본다. 더불어 가까운 미래 휴전선 너머 그리운 이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2박 3일 간의 잊지 못할 추억을 가슴속에 새긴 채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모부는 아버지와 헤어져 돌아오셨다.

 2007년 재당숙 상봉에서 생사를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북한과의 마찰로  어 떤 소식도 듣지 못하고 생사확인도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모부께서는 그날 이후 식사도 잠도 북한에서 고생하실 가족 분들에게 미안해서라는 이유로 필요 이상으로 하시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해오고 계신다. 검소한 생활 탓에 심한 병까지 앓게 되셔서 이모께서 가는 것만 못했다며 속상해 하신 적도 있었다고 하신다.

 가까운 친척이 역사의 사건 속에서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으로 이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안 것 같다. 이모부의 삶은 통일의 필요성을 분명히 알려주는 열정을 갖게 하는 경험이었고, 진정으로 우리가 이뤄내야 하는 통일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준 반환점이었다.

 북한이 여전히 이런 아픔을 무시한 채 전쟁을 통해서 한반도를 무력화하는데 정신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천안함 침몰사건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사건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나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반드시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과 6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통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또한 우리 민족도 다시한번 통일의 역사를 이루어 한반도가 오천년의 역사를 지킨 그 감격을 누려야만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한 사람으로 책임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미래의 지도자로 준비되어 가는 우리가 직면한 이 과제를 또 다시 다음 세대로 넘기지 않도록 적극적인 노력과 준비를 바탕으로 반드시 통일을 성취해 내리라 다짐해 본다.

 며칠 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충일’의 진의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던 뉴스 기사가 기억이 난다. 설문을 했던 초등학생의 절반이 넘는 대답은 “현충일의 진의를 모른다.”였으며 일부는 육이오 전쟁 일어난 날, 새로운 게임 업로드 되는 날이라는 충격적인 대답을 했다고 한다.

 육이오 전쟁에 대해 정확하게 그 비참했던 현실을 교육하지 않았던 것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들이 전쟁을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든다.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치른 선조들의 희생을 마음에서 지워가며 교만에 빠진 지금의 사회가, 민족에게 주어진 숙제인 평화통일의 본질을 잊은 채 이런 문예대회, 액션 영화, 게임의 소재로만 이용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현 세대들이 온 나라를 전쟁이라는 비극의 길로 내몰았던 과거의 과오를 그대로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진심으로 걱정된다.

 선조들의 피로 이 땅에서 전쟁의 흔적이 사리진지 오래다.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서 잊혀 지지 않을 줄 알았던 전쟁의 피해도 세대를 거쳐 가면서 서서히 사라져왔다. 내게도 육이오는 이제 드라마와 소설을 통해서 ‘역사’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래서 일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하게 되면 남한이 언제나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라는, 근거 없이 자신감만 넘치는 사고방식을 취하고 있다.

 주변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을 때마다 통일보다는 오히려 북한과의 무력전쟁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닌 건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 무분별한 사고방식에 대해서 심각한 염려가 되는 바이다. 우리는 육이오 전쟁으로 황무지와 다름없던 그 잿더미속에서 희생적인 육이오 시대의 사람들의 그 재건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음을 정확히 알고 앞선 조상들의 수고와 대가가 헛된것이 아닌 소중한 피와 눈물의 결과였음을 세계 모두에게 보여야만 할 것이다.

 내가 아는 우리 이모부의 아픔이 어디 우리 이모부만의 아픔이겠는가? 수많은 아픔을 안고 긴 시간 괴로웠던 만큼, 그리웠을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작은 가슴으로 안아보며, 하나 되어, 세계 속에서 찬란한 역사의 주역으로 다시한번 일어나는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Konas)

김예준(강원 영월고등학교)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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