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위한 헌신의 길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인생 자서전 백범 일지를 읽으며 나는 한명의 위인과 직접 마주대한 느낌을 받았다. 기구한 인생길 위에서 조국을 떠나 있다가 27년 만에 귀국하여 느낀 두 가지의 감정을 보며 이 나라, 이 민족을 향한 백범 김구 선생님의 애틋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왜나라의 악정에 주름펴지 못하고 전전긍긍 살아가리라 우려하며 속앓이를 했지만 막상 조국에 와보니 책보 메고 길 위에 줄지어 돌아가는 학생들에게서 활발명랑한 기상을 통해 느끼는 기쁨이 첫째요, 가옥들이 온통 빈틈없이 겹칠 듯 이어져 있고 집과 땅이 하나인 양 납작 붙어 있으니 이로 인해 동포의 저열한 생활수준을 짐작케 하여 느끼는 슬픔이 두 번째 감정이다.
그저 그립기만 하고 한없이 기쁘기만 한 상황임에도 기쁨의 이유가 범인과 다르고, 그 속에서 민족의 처지를 깊이 통찰하여 슬픔을 느끼는 김구 선생님을 닮아 가는 것이야 말로 이 험준한 시대에 군인으로서 바로서는 길이라 생각이 든다. 넓지도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은 땅덩어리를 그것으로도 모자라 두 개로 나눠 놓고 대치중이며, 세계 군사력의 절반 이상 밀집되어 서로를 견제하고 있고, 제 것에 만족 하지 아니하고 우리 것을 호시 탐탐 노리는 주변 국가들 속 지금의 대한민국은 60여년 전 그 때 그 당시의 대한민국처럼 혼잡한 정세 속에서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여 대한민국의 기둥이 되어야 할 때이며, 그 근간은 모두가 한명의 작은 김구 선생님이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백범 일지를 통하여서 김구 선생님의 삶 그 자체를 이해하고 깊이 통찰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내면의 강인함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김구선생님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우는 것이 마땅하나 그 중에서도 으뜸인 남다른 애국심은 치하포 의거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단발령을 통해 일어난 서울 종로에서의 큰 난리를 겪은 후 떨어진 단발 정지령과 삼남 방면에서의 의병 봉기를 통해 시국을 주시하고자 본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여관에 머무는 중에 한 사람이 김구 선생님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머리를 깎았으나 한복을 입었고, 단발령이 시행한 곳에 살고 있다며 자신의 출신 지역 말투가 아닌 서울 말투를 하는 이상한 사람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같은 동족으로 착각하여 대하였지만 김구선생님은 한눈에 상대방이 평범하지 않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물론 이 일본 사람을 죽이는 과정도 찬탄을 금할 수 없지만, 그 전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처음 본 인물에 대해 순간적으로 관찰하고 정체를 파악하는 능력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이는 마치 영화 속에나 나오는 아주 잘 훈련된 정예 요원의 모습과 동일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후 아주 적나라하게 심리상태가 드러나며 김구 선생님의 솔직한 심정과 그에 따른 냉철한 판단력을 볼 수 있었다.
칼을 숨기고 은밀하게 다니는 일본인은 어디에서건 우리나라와 민족에 독버섯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주위 정황과 자신의 능력을 꼼꼼히 살펴본다. 방 세 칸의 숙박 인원은 40여 명이고, 일본인의 일행이 이들 중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른다. 또한 자신은 혼자고 빈손이지만 상대방은 칼을 소지하고 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일본인을 죽이지도 못하고 자신의 목숨만 값없이 잃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빈손으로는 단번에 상대방을 죽일 수 없었고, 시간이 지체되면 방 안의 사람들이 만류하게 되고 이로 인해 틈이 생기면 일본인의 칼에 죽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자 가슴이 울렁이며 마음과 정신이 자못 혼란한 상태에 빠졌다.
이때 고후조 선생의 좋은 환경 속에서 성취한 것은 당연한 것이며,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에서 성취한 것이 진정 값어치가 있다는 교훈이 떠오르며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한다. 자신이 보기에 저 일본인을 죽여서 설욕할 만하다고 확신하는지, 어렸을 적부터 마음좋은 사람 되기가 가장 큰 바람이 아닌지, 일본인을 섣불리 죽이려 들지 못하는 이유가 실은 몸 호강하고 이름 날리고 싶은 바람이 아닌지 물었다.
이에 자답하며 죽을 작정을 하니 주변의 상황이 정리가 되며 일본인을 죽일 방법을 정하고 행동에 들어갔다. 이후 아침상을 여덟 상을 받아 미친놈 취급 혹은, 이인으로 비춰지게 하고, 별안간 큰 호령소리와 함께 일본인을 발로 차 한 길이나 되는 계단 아래로 떨어뜨리고 목을 짓밟았다. 큰 호상과 기백에 눌린 다른 사람들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본인은 그 길로 김구 선생님에게 난도질 하여 죽임을 당한다.
과연 내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생사를 오가는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그 짧은 순간에 마음을 다잡고 내 적을 단칼에 죽일 수 있을까? 김구 선생님의 행동에서 세 가지 흠모하고 싶은 모습을 보았다. 첫째는 살인과 죽임 당함 사이에서 고민하며 마음과 정신이 혼란한 상태에서 떠오른 고후조 선생의 글이다.
이는 해박한 김구 선생님의 지식수준을 나타내며, 끊임없는 독서와 지식의 탐닉은 결국 중요한 순간에 내게 귀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자문자답하는 내용이다. 냉정하게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과연 내가 하려는 지금의 이 행위가 정의 실현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고, 주춤거리는 이유가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미련이 남아서인지 자신의 마음 한 가운데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인생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시련과 기회의 순간에 후회없는 선택을 하게 해 줄 것이다.
셋째는 마음먹은 순간 세운 계획과 이를 망설임 없이 이행하는 추진력이다. 마음먹은 순간 이미 김구 선생님은 일의 처음과 끝을 명확히 계획하고 정확하게 추진하는 능력은 마음은 먹었으나 이를 제때 실천하지 아니하여 결국 아무런 수확을 거두지 못하는 나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숱한 힘겨운 상황 속에서 김구 선생님에게는 어쩌면 기쁜 날보다는 힘들고 지친 나날들이 더욱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애국심으로 모두 극복하는 그 모습은 지칠 줄 모르는 위대한 독립 영웅으로 길이 남을 것이라 확신 하며, 이미 우리에겐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런 김구 선생님에게 있어서 가장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동시에 받은 엄청난 날이 존재하였다.
그 날은 바로 일제의 항복소식이 들려오는 날이었다. 광복군을 창설하여 공수 훈련을 시켜가며 대한민국에 상륙하여 일본군을 소탕하려는 애국심에 불타올랐던 지난날을 한순간에 無의 상태로 돌려놓은 날, 그토록 바라던 기쁜 소식이었지만 과정과 방법이 달랐기에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날인 것이다.
몇 년을 애써서 참전 준비하며 산동반도에 미국의 잠수함을 배치하여 서안훈련소와 부양훈련소에서 훈련받은 청년들을 조직적 계획적으로 각종 비밀무기와 무전기를 휴대시켜 본국으로 침투케 할 계획이었다. 또한 국내 요소에서 각종 공작을 개시하여 인심을 선동하고, 무전을 통해 비행기로 무기를 운반해서 사용하기로 미국 육군성과 이미 비밀리에 합작을 이루어내었는데 이 모든 계획을 단 한 번도 실시하지 못해보고 일본이 항복하게 되었으니 그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이제껏 해온 노력의 시간이 날라 갔고, 앞일이 걱정이 될 뿐이었다.
한국군 수천 명을 수용할 병사를 짓던 미국은 그 날 부로 공사를 중지하였으며, 서안에서 훈련을 마친 청년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부양으로 가서 그곳에서 훈련받은 청년들을 아울러 본국으로 보낼 예정 또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어려서부터 일본의 교육을 받아와 우리나라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한글조차 능숙하지 못한 일본 유학생들 중에 징병으로 전장에 나가게 되자 일본군의 앞잡이로 끌려다니다가 개죽음을 당하느니 우리 정부를 찾아가 독립전쟁을 하다가 영광스럽게 죽겠노라 다짐한 청년 장병들의 그 원대하고 깊은 포부는 그렇게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채 사그러진 것이다.
매 순간 생사의 갈림길에서 위태롭게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 하였으나 그 뜻을 펼치지 못함이 얼마나 아쉬울까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일본의 항복을 연유로 하기에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같은 크기는 아니지만 같은 느낌의 낙망의 시기가 있을 수 있다.
오랜 시간을 준비하여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덧없이 스러질 때, 열심히 살고자 다짐하지만 주변의 환경은 온통 좌절할 것들로만 가득 차 있을 때 말이다. 하지만 그 길이 분명히 옳은 길이고 맞는 길이라면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때에 비로소 막다른길 끝에서 새로운 출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읽으며 그동안 김구 선생님에 대해 너무나 몰랐다는 사실에 심히도 부끄러웠다. 그 중에서도 날 가장 부끄럽게 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와 김구 선생님의 관계였다. 내가 지난 날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생각을 가진 채 채소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윤봉길 의사, 김구 선생님이 윤봉길 의사의 부탁에 길을 제시한다. 바로 홍구공원의 의거이다. 그 유명한 도시락 폭탄을 이용하여 홍구공원에서 가와바타 민단장, 시라카와 대장 등을 죽인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그 중심엔 백범 김구 선생님이 계셨던 것이다.
의거 당일날 태연자약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4원 더 값진 자신의 시계를 김구 선생님의 것과 맞바꾸고, 차비를 제외하고 남은 잔돈마저 김구 선생님에게 드린 채 출발하는 차창 너머로 김구선생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던 윤봉길 의사는 그렇게 우리 민족을 위한 의거를 성공시켰다. 이로써 우리 민족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중국인들과의 감정이 호전되어 극히 사이가 돈독해졌으며, 해외 한교들의 신망이 충천하여 임시정부에 대한 납세와 김구 선생님에 대한 후원이 격증하였으며 그로 인해 점차 사업이 확장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또한, 독립운동자 중 김구 선생님에 대한 낙관자들보다 많았던 비관자들을 돌이킬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만화로 또는, 위인전으로 김구 선생님의 전기나 백범일지를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항상 앞부분 몇 장을 읽은 채 책을 덮어버리곤 했었다. 역사적 깊이가 없으며, 그 참된 가치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유흥거리 위주의 책들만을 즐겨보던 내게 이번 독서는 모처럼만의 깊은 자아 성찰과 더불어 역사에 대한 고찰, 현 삶에서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평범한 일반인이였다면 그저 역사를 모르는 주체성을 잃어버린 한 청년에 불과한 채 지나칠 수도 있지만, 나는 이미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자랑스런 육군 장교로 군 복무 중에 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부대뿐만 아니라 나라에 크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온전하고 바르며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는 것이 필수인 내게 지금껏 그냥 지나쳐왔던 국가관을 다시 한 번 바르게 정립해주며 내가 앞으로 군복무함에 있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 자세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는 귀중한 시간을 백범일지를 읽음으로서 얻을 수 있었다.
나 역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며,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하며, 남의 침략을 능히 막는 정도면 충분하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인 인의, 자비, 사랑의 부족을 나부터 채워 나가겠다. 김구 선생님의 삶을 늘 기억하며. 이제부터 나의 삶은 다시 시작인 것이다. 나라를 위한 가슴의 두근거림을 안고 이제부터 시작이다.(kona)
육군군수사 종합보급창 101보급대 중위 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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