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내부논란 북한을 돕는 결과
북한의 NLL 무력화책동과 우리의 대응
NLL이란?
NLL(Northern Limit Line : 북방한계선, 이하 NLL이라 함)은 1953년 8월30일 정전협정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설정된 이후, 남북간에 60년 가까이 지켜져 온 실질적인 해상군사분계선이다. 동해의 NLL은 지상의 군사분계선(MDL) 연장선을 기준으로 설정되었고, 서해의 NLL은 서해 5개 도서와 북한지역과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12개 좌표를 연 결하여 설정되었다.
NLL 설정의 역사적 배경... NLL은 김일성에게 고마운 선
1951년 7월10일 이후 2년 여간 이어진 정전협상 과정에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은 연해수역(coastal waters)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해상경계선에 대한 합의에 실패하였다. 이는, 공산군 측이 당시 3마일을 영해로 인정하는 국제적 관례를 벗어나 12마일을 주장 함으로써 비롯된 결과였다. 당시 지상에서의 군사분계선은 군사접촉선을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해상에서의 경계선을 이런 논리로 설정한다면 당시 북한 전 해역의 제해권을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군사접촉선은 북한의 해안선이 된다. 하지만 유엔군 측은 북측 해역에서 철수하는 양보를 하면서 당시 국제해양법 정신에 부합되게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자고 제안하였으나, 공산군 측이 끝내 거부함으로써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유엔군사령관(Mark W. Clark 대장)은 동해 및 서해에서 남북간 우발적 무력충돌 발생을 방지하고 우리 해군과 공군의 초계활동을 한정하기 위하여 NLL을 설정하였다.
NLL이 선포된 직후, 북한 김일성에게 NLL은 참으로 고마운 선이었다. 당시 우리 이승만 대통령은 기회만 있으면 북진 통일해야 한다고 외치던 시기였다. 바다 와 하늘에서 이렇다 할 세력도 없었던 김일성의 입장에서는 유엔군사령관이 바다에 선을 그어 남쪽의 군사력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세워 막아주니 NLL이 더없이 고마운 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로부 터 20년 동안 북한은 NLL에 대해 일언반구 이의를 제기한 바 없다. 오히려 그들이 발간한 1959 년 조선연감에서는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표기하고, 지금까지도 NLL을 암묵적으로 준수해 온 것이다.
NLL이 꼭 지켜져야 하는 이유
NLL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는 NLL이 갖 고 있는 세 가지의 타당성 때문이다.
첫째는, ‘현실적인 타당성’ 때문이다. NLL 이 설정된 이후 근 60년 동안 서해 해상에서 실질적인 경계선의 역할을 해 왔다. 북한도 NLL설정 초기에는 고마운 선으로 간주했고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하여 지금까지 묵시적으로 준수해 왔다. 또한 남북 쌍방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해상불가침경계선과 구역을 1953년 정전협정상 군사분계선과 이후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함으로써 NLL이 해상불가침경계선임을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현실적 타당성에 대해서는 유엔사와 미국 정부도 공식 인정하고 있다.
둘째는, ‘정전협정상의 타당성’ 때문이다. 앞서 지적 한 바와 같이 NLL의 설정 배경은 공산 측의 무리한 요구로 정전협상에서 해상군사분계선에 합의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이었다. 이에 유엔군사령관은 정전협정 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전협정의 정신에 부합되게 NLL을 설정하였다. 이후 NLL은 반세기 이상 정전협정체제를 유지하고 서해 해상에서 충돌 방지를 위한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셋째는, ‘국제적 관행상의 타당성’ 때문이다. NLL은 유엔해양법협약상의 중간선 원칙을 충실히 지키면서 설정되었다. 즉, 서해 5도와 북한지역 사이의 대략적인 중간점을 좌표로 설정하여 이를 연결한 선이다. 다만 연평도와 소청도 사이의 폭이 47마일로서 해양법상 24해리를 넘을 수 없다는 일부 국제법학자들의 의견도 있다. 하지만 만약 이 선이 끊어질 경우 서해5도 즉 백령군도와 연평도가 완전히 고립되어 안전이 심각 하게 우려되기에 군사적 견지에서 이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한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에서도 군사적 필요에 의한 예외적 설정은 인정하고 있다. 또한 유엔해양법협약상 당사자 간 별도 합의가 없는 한 해상경계선은 중간선 내지 등거리선을 적용하는 바, 서해 5도 근해의 남북한 수역 폭을 고려하여 그 중간선을 택한 것 은 국제법상으로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NLL 무력화를 위한 북한의 이중적 책동
<서해사태와 도계선 논리>
북한이 1960년대를 거치면서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화되자, NLL설정 초기 고마웠던 NLL이 점차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1973년 서해사태 당시 북한은 40여 차례 NLL을 침범하면서 도발해 왔다. 이후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에서 정전협정에 따라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서북쪽은 자기들 바다라고 주장하면서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개섬의 통행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년간 북한은 NLL에 대해 이렇다 할 무력화책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NLL을 본격적으로 무력화시키려 시도한 시기는 1990년대 말이다. 즉,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이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10여년간 북한은 한편으로 무력도발을 통해, 한편으로는 협상으로 NLL의 무 력화를 시도해 왔다.
<연평해전과 미·북간 새로운 해상경계선 협의 요구>
1999년 1차 연평해전 직후, 북한은 유엔사측과의 판문점 장성급회담을 통해 서해 충돌은 분명한 경계선이 없기에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면서, 정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간 새로운 경계선 협의를 제의하였다. 이에 유엔군 측은 NLL은 지난시기 쌍방의 군사력을 분리시켜 온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며 협상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필요시 새로운 해상불가침경계선은 남북간 협의할 사안임을 밝혔다.
자기들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자,북한은 1999년 9월 소위 ‘조선서해해상군사분계선’이라는 유령의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였다. 이듬해인 2000년 3월23일에는 ‘서해 5개섬 통항질서’를 공포하여 동 구역에 출입하는 모든 미군 함정 및 민간 선박은 사전에 허가를 받고 북한측이 지정한 2개의 수로만을 이용하여 출·입항하라고 요구하였다.
우리 군은 북한의 이러한 일방적인 선포에 대해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명백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자, 북한은 2002년 6월 월드 컵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에 두 번째 도발을 시도하였다. 이른 바, 제2연평해전이다.
북한의 NLL 무력화를 위한 군사 도발은 NLL의 무력화 자체에도 목적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의도는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북한이 미국과 새로운 경계선 협의를 제의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의도 때문이다.
이는 1990년대 북한의 정전협정체제 무실화를 추진 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90년대초 유엔군측 군정위 수석대표에 한국군 장성이 임명되자 북한은 기다렸다 는 듯이 군정위 본회의를 거부하더니, 공산측 중감위 국가의 강제철수와 중국 및 북한측 군정위 대표단을 철수하고 소위 판문점대표부라는 불법기구를 설치하 였다. 그러면서 그들의 주장은 이제 정전협정은 사실 상 사문화되었고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니, 미국과 새 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하였다.
<남북공동어로와 서해평화협력지대의 함정>
두 차례의 무력도발을 통해서도 NLL을 협상대상으로 삼는데 실패한 북한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그 시점은 2005년 남북어업실무협상을 통해 공동어로에 합의한 이후이다. 사실 남측이 공동어로 아이디어를 낸 배경에는 북한의 서해 NLL해역에서 잇단 군사도 발을 시도한 것과 연관성이 있다.
우리측으로서는 북한이 NLL 인근에서 조업하고 있는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단속한다는 구실로 NLL을 침범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만큼, 남과 북이 그 해역을 공동어로구역을 설정 하여 공동어로를 한다면, 긴장도 완화시키고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이 기회야말로 NLL을 남북협상테이블에 올려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호기로 판단한 것이다. 2006년초 제3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 북한 측 단장에 김영철(당시 중장, 우리 소장에 해당)이 전면에 나섰다. 그는 자기가 직접 나서서 NLL을 무력화 시키고 새로운 경계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 을 가지고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2006년 3월, 3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측의 김영철은 “공동어로를 하기 전에 먼저 경계선부터 그 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금은 똑똑한 경계선 이 없기 때문에 이대로는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는 논리였다. 이에 우리측은 “서해해상경계선은 NLL이며 NLL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과, “NLL을 중심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고 시행하자.”는 입장 으로 대응하였다.
그러자 북측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해상불가침경 계선을 협의하도록 되어있으니 새로운 경계선 협의를 시작하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북측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NLL을 존중· 준수하면서 경계선문제 뿐 아니라 군사적 신뢰구축 등 기본합의서 조항들을 모두 군사공동위를 구성하여 논의하자고 역제의하였다.
결국 NLL 문제는 2007년 10.4선언 직후 개최된 2차 국방장관회담에서 남북 쌍방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정을 둘러싸고 다시 격돌하게 된다. 북측은 남측이 주장하는 NLL과 자기들이 주장하는 경계선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그 사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정하고 그 수역에서 공동어로를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마치 우리 NLL을 인정하는 듯한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에 우리측은 불가침경계선 문제는 향후 군사공 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들과 함께 논의하고, NLL 준수를 전제로 공동어로 문제는 장성급군사회담에서 협의해 나가자고 대응하였다. 결국 우리측 주장대로 합의서가 타결되었다. 이후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문제 협의를 위해 2007년 12월 제 7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었지만, 쌍방간의 현저한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종료되었다.
북한은 집요한 무력화책동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의도대로 관철되지 못하자, 다시금 무력도발로 나섰다. 2009년에는 대청해전으로, 2010년에는 천안함폭침 과 연평포격도발이라는 본색을 드러낸 한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고, NLL 무력화책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의 대응방향
첫째, NLL은 우리의 영토선으로 간주하고 강력한 힘으로 지켜내야 한다. 특히 NLL과 관련된 우리 사회 내부의 논란은 북한을 도와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NLL은 정전협정 정신과 국제법에 부합되게 설정되었고 남과 북이 60년 가까지 지 켜온 실질적인 해상군사분계선이다.
우리 군은 NLL을 지상의 군사분계선과 같이, 영토선과 같이 지켜낼 것 이다. 우리 국민들도 NLL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NLL을 사수한다는 확고한 인식으로 하나된다면, 북한도 결코 NLL 무력화 의도가 관철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둘째, 서해해상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 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남북간에는 2004년 서해해상에서 우발충돌 방지를 위한 6.4 합의서를 체결하였다. 북한이 동 합의서를 유린하고 천안함 폭침도발을 야기한 이후 이행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복원된다면 이 합의서 이행문제도 협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쌍방 함대사령부간의 핫라인 설치, 함정간 호출시 응답의 의무화 등, 보다 실효적인 방안들을 발전시키고 반드시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북한은 더 이상의 무모한 NLL 무력화책동을 즉각 중단하고 NLL을 존중·준수하는 올바른 자세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그러한 결단이 있을 때 비로소 북한이 염원하는 해주직항을 비롯한 제반 사안들이 협의과정을 거쳐 가시화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북한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유념하기 바란다.(konas) 자료출처:충호지
문 성 묵 (前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豫 육군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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