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으로의 감군계획을 철폐하라
2006년 12월 1일 국회 본회의는 찬성 120, 반대 17, 기권 15표로 노무현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국방개혁법(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2020년까지 국군을 50만명으로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제정한 것이다. 이 법 25조 1항은 ‘국군의 상비병력 규모는 군구조의 개편과 연계하여 2020년까지 50만명 수준을 목표로 한다’라고 돼 있다. 이 법을 만든 노무현 정부는 “50만명을 최첨단 무기로 무장시켜 과학기술군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감군을 위해 그때 24개월이던 육군 병사의 복무기한을 단계적으로 낮춰 18개월로 줄이기로 했다. 이 법을 만들 때 노무현 정부는 반복해서 “복무 기간은 줄이고 국방은 강화하겠다”고 이야기했다. “50만명을 최첨단 무기로 무장시켜 과학기술군으로 만들겠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의무 복무기간은 줄이는데 국방은 강화된다고 하니 누가 이 법에 반대하겠는가. 복무기간 단축에는 거의 모든 국민이 찬성하니 국민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이 법에 반대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120대 17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이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복무기한을 줄이고 국방은 강화한다’는 말을 정직하게 따져보기로 하자. 과학기술군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첨단장비는 일반장비에 비해 긴 숙달 기간을 요구한다. 첨단 장비의 대표가 전투기이다.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공군사관학교 4년은 항공 기초를 배우는 학습의 기간이니 별 것 아니라고 넘어가자. 공사를 졸업하고 조종사가 되는 훈련기간만 따져보자는 것이다. 공사를 졸업한 소위가 조종사가 되는데 필요한 최소 시간은 1년 8개월이다. 이 기간 동안 조종사 후보생들은 입문-기본-고등비행교육을 받는다.
그때까지 그들은 KT-1 이나 T-50 같은 훈련기를 몰아본다. 일선부대에서 몰 전투기가 아니라, 일반 조종술을 익히는 훈련기를 모는 것이다. 비행기를 모는 것과 전투를 하는 것은 다르다. 1년 8개월이 지나 일반 조종술을 익힌 전투기 조종사 후보생들은 전술입문기인 TA-50으로 기본 전투술을 배워야 한다. 추가로 21주간 전술입문 교육을 받는 것이다. 21주는 5개월이 넘는 긴 기간이다.
그리고 일선부대에서 그가 몰 항공기를 모는 전문 훈련을 받는다. 전투기 조종사라면 F-15K나 KF-16 F-4 F-5, 수송기 조종사라면 C-130이나 CN-235, 헬기 조종사라면 HH-60이나 HH-47처럼 그가 몰 항공기 조종훈련을 받는다. 조종사 후보생 처지에서 이는 기종을 바꾸는 것이라, 기종 전환 훈련이 된다. 기종 전환 훈련에 8주가 걸린다. 그리고 일선부대에 배치된다.
공사를 졸업한 조종사 후보생이 모든 훈련을 마치고 일선 부대에 배치되는데 1년 8개월+21주(5개월)+8주(2개월)가 소요되니, 대략 2년 3개월이 걸린다고 볼 수 있다. 군에서 소위 계급은 1년 정도 단다. 중위는 2년이다. 전투기 조종사는 중위 중반이 될 때까지 일선부대에 가지 못하고 훈련만 받는 것이다. 중위 중반기에 비로소 소속 부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일선부대에 갔다고 해서 중위들이 바로 전투에 들어갈 수 있을까. 비행단은 비행단대로 부여받은 작전이 있다. 적진으로 침투하는 부대라면 적의 레이더망을 피해 들어가는 침투훈련과 공격 성공 후 안전하게 귀환하는 훈련을 반복해서 익혀야 한다. 적 전투기의 내습을 막는 부대라면 아군 방공부대와 협조해 요격전술을 익혀야 한다. 이 훈련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중위는 그저 ‘수습 조종사’일 뿐이다. 독수리가 아니라 병아리라는 이야기다.
전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편대, 대대 별로 역할을 나눠 하는 것도 많다. 공군 작전술의 꽃은 ‘스트라이크 패키지’라고 하는 대규모 편대군(群) 공격인데, 이 작전을 하려면 자기 비행단은 물론이고 타 비행단에서 온 항공기와도 작전할 줄 알아야 한다. 편대 작전, 대대 작전, 협동 작전을 익히는데 상당한 시간이 들어간다.
정비와 무장을 해주는 부대와의 관계에서도 조종사들은 큰 영향을 받는다. 전투기는 어떤 무장을 했느냐에 따라 하는 전투가 달라지니 무장 팀과도 많은 협조를 해야 한다. 작전을 잘 하려면 정비사 무장사들과 척척 호흡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레이더를 운용하는 방공관제단, 공대지 미사일로 적기를 잡아주는 방공포병과고 능숙하게 교신할 줄 알아야 한다. 일선 부대에 배치됐지만 끝없는 훈련을 받아야 조종사는 베테랑이 된다.
대위는 보통 3년간 단다. 그래서 대위가 돼야 비로소 전투기 조종사는 조종사 다워졌다고 한다. 수송기나 헬기를 몰게 되는 조종사들도 마찬가지다. 공사를 졸업하고 만 4년이 지나야 제대로 된 ‘빨간 마후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체력과 지력, 상황판단력, 편대를 이끄는 리더십까지 고려했을 때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는 소령 때 만들어진다. 소령이 되려면 공사를 졸업하고 최소한 만 6년이 지나야 한다.
군에서는 경력을 ‘짬밥’이라고 부른다. 군도 전문성이 강한 조직이기에 짬밥을 오래 먹어야 베테랑이 만들어진다. 복무기간이 길어야 첨단장비를 운용하는 과학기술군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첨단 전투기는 방공관제단은 물론이고 아군 항공기와 정보를 공유하는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조종사는 조종과 전투에 정보 이용에도 도사가 되어야 한다. 공중 급유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첨단 장비일수록 익힐 것이 많으니 경험 많은 숙달 요원을 요구한다.
물론 의무병으로 가는 젊은이들은 전투기와 같은 첨단 장비는 몰지 않는다는 반론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사격실력도 군대 생활 적응력도, 그리고 위기 시 대처능력도 어느 정도 짬밥을 먹어봐야 늘어난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요즘은 소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과거의 전투 비중이 줄어들었다. 관측과 통신장비 덕분에 보이지 않는 곳에 적이 있는 것을 알아내, 그곳을 포탄을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장비를 사용하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생 시절 컴퓨터 게임으로 익힌 것과는 다른 기술을 배워야 한다.
육군에서 말하는 과학기술군은 포병이나 공병 포병 기갑 같은 기술 병과를 뜻한다. 이러한 병과가 다루는 장비의 가격은 억(億)대이다. 좋은 외제 승용차의 가격이 대개 억대다. 이러한 차를 가진 ‘사장님’은 베테랑 운전수를 기사로 고용한다. 신출내기 기사는 고용하지 않는다. 신출내기 기사에게 고급 차를 맡겼다가 사고가 나면 억대가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출내기 병사에게 억대 장비를 맡기겠다고 한다. ‘복무기간은 줄이고 첨단과학기술군은 만들겠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국방전선 이상 없다’며 발 뻗고 자고 있다. “어려운 학문을 할수록 공부시간을 줄여야 성적이 올라간다”고 하면 누구나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왜 ‘복무기간을 줄이며 첨단과학기술군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참말로 믿는 것일까. 우리는 내 좋을 대로인 아전인수식으로 정보를 선택하는 덫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닐까.
6·25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10여년간 한국의 젊은이들은 많은 아이를 낳았다. 베이붐 시대를 만든 것이다. 그 후 한국은 한 두 자녀만 낳은 사회로 변모했다. 그러나 원체 인구 비중이 큰 베이비붐 세대가 가정을 이루자, 한 두 자녀만 낳았어도 자연 그들 자녀가 많는 인구 비중은 커졌다. 지금은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의 아들들이 입대하는 시기라 그래도 입대할 장정이 많다. 그러나 베이비붐 다음 세대의 아들들이 20살을 넘길 때는, 입대 장정의 수가 크게 줄어든다. 입대 장정이 줄어들면 감군은 저절로 이뤄진다.
안 그래도 한국군 병력은 줄어드는데 국방개혁법은 2020년까지 50만명으로 감군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육군 의무병의 복무기간을 24개월에서 점차적으로 줄여 18개월로 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당한 후 깜짝 놀라서 21개월에서 일단은 멈춰 세워놓았다. 그러나 지난 18대 대선에서 야당 후보는 18개월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인도 18개월로 줄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안 그래도 입대장정이 줄어들고 있는데 의무병의 복무기간까지 줄이면 감군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그에 따라 첨단장비를 다룰 숙달된 병사가 줄어들어 과학기술군 결성을 물 건너가는 것이 된다. 그러나 누구도 이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폐가 있는 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착각이 거부하기 힘든 마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친 복지는 미래를 갉아 먹는다”고 말한다. 어려운 이를 돕는 것은 좋지만, 자력갱생을 하는데 초점을 둔 지원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누구도 “복무기간 단축은 미래의 안보를 갉아 먹는다. 자주국방의 의지를 무력화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꼴통보수로 무시되기 때문이다.
의무병의 복무기간을 단축하고도 과학기술군을 만들려면 직업군인의 수를 늘여야 한다. 직접 장비를 다룬 부사관 수를 늘여야 하는 것이다. 부사관 증강은 백명 천명 단위로 이뤄지는데 의무병 감군은 만명 단위로 이뤄지고 있다. 부사관 한명의 능력의 의무병 능력의 열 배, 백 배에 이른다고 확신하는가.
군사학은 전쟁이 이기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기에 이기는 길을 찾는 많은 이론이 탄생했다. 군사학 이론은 경험을 통해 확인된 것이라 총칼 없는 군대인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이 많이 차용하고 있다. 경영학에서도 인용하는 군사학 이론 가운데 ‘란체스터의 수(數)의 법칙’이 있다. 수많은 전사를 연구한 란체스터는 전력(戰力)은 병력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두 명인 병력을 두 배인 네 명으로 늘이면 전력은 두 배가 아닌 2의 제곱 즉 네 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많은 전투를 살펴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10만 대 10만 맞붙어 싸운다면, 지휘관의 능력이 특출하지 않는 한, 양측에서는 비슷한 사상자가 발생한다. 그런데 어느 한 쪽이 20만으로 급증시켜 20만 대 10만의 싸움이 벌어지면 20만인 쪽은 거의가 살아남고, 10만인 쪽은 거의가 궤멸된다.
우리의 역사 속 이야기도 이를 증명한다. 화랑 관창과 백제의 영웅 계백이 등장하는 황산벌 전투가 그것이다. 그 싸움은 5만을 이끈 김유신의 부하 품일의 군과 5000 결사대를 이끈 계백 군이 맞붙은 것이다. 계백은 자신의 처자를 죽이고 출전했기에 백제의 병사들도 1당 백의 용기로 참전했다. 그때 품일의 아들 관창이 단기로 뛰어들어 싸우다 죽음을 당했다. 그러자 5만의 신라군이 몰려들어 계백의 결사대를 무너뜨렸다.
이 전투는 10대 1의 싸움이었으니 계백군이 전멸했다면 신라군도 5000명은 궤멸돼야 한다. 그러나 수적으로 워낙 큰 차이가 났기에 품일 군은 큰 희생을 당하지 않고 승리했다. 수가 많다는 것은 전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수가 많은 측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승리한다. 때문에 대군을 뜻하는 100만 대군은 전략과 장비에 관계없이 강군을 뜻하는 용어로 통용돼 왔다. 최고의 군사전략가인 클라우제비치도 ‘수의 우세 법칙’을 이야기한 바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거듭하는 북한은 감군의 ‘감’자도 내비치지 않는데 왜 우리가 먼저 감군을 하는 것일까. 북한이 120만 대군을 유지할 때 우리가 60만 대군을 유지해온 것은 유사시 60만의 미군이 한반도에 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사는 유사시 그러한 병력이 한국에 오게 하는 ‘시차별부대전개제원’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국방개혁 때문에 2015년 연합사가 해체되면 이 계획의 존폐가 불투명해진다. 존재를 해도 실행력이 약한 ‘말로만’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군은 “한국은 미국을 상대할 때마다 민족 자존심을 거론하면서, 정작 한국을 지키는 일은 왜 미국에 떠넘기느냐. 한국인 병사들의 복무기간은 단축하면서 미국 보고는 자꾸 한국의 안보를 책임지라고 하느냐”고 반문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이 대학에 간다. 18개월을 복무한다면 1년 1학기만 휴학하면 되지만, 대개는 2년을 휴학할 것이다. 20개월 21개월을 복무한다면 2년을 휴학해야 한다. 24개월을 복무해도 2년을 휴학하면 된다. 2년간 휴학이 대세임을 인정한다면 복무기간을 과거처럼 24개월에 근접하게 하는 것이 괜찮은 방법이 된다. 그것이 젊은이의 의무를 최소화하며 국방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복무기간 단축은 심각한 자충수다. 우리의 안보를 약화시키며 미국에 대해 지나치게 안보를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만든다. 새 정부는 이 모순을 척결해야 한다. 그 시작은 국방개혁법 폐지이다. 2020년까지 50만명으로 감군한다는 목표를 없애 버려야 뭔가를 해볼 수 있다.
복무기간 환원은 국민적 저항이 큰 문제다. 야당은 무조건 반대할 것이므로 당장 거론할 수 없다면 새 정부는 국방개혁법이라고 폐지해야 한다. 집권 초기에 이것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안보 불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이 진정한 리더다.(Konas) 출처:월간자유
이정훈 (월간조선, 주간조선, 시사저널, 신동아 기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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