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과 전장심리! ②
군대에서 재미있는 일은 병사들이 자기의 지휘관이 신비적일 정도로 명장일 것을 언제나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 연합함대의 도고와 로제스트벤스키는 비교되었다.
도고는 개전과 더불어 거의 신앙적이랄 수 있는 신비적 신뢰감을 획득하고 있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같은 해 5월 여순항 봉쇄 작전 중 전함 두 척을 촉뢰 사고로 잃었을 때였다. 이 사고로 잃은 병력은 전체의 33%에 이르는 엄청난 피해로서 보고자들이 울면서 보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도고는 안색하나 변치 않고 보고자들에게 홍차를 권했다. 또 이 사고 소식을 듣고 영국해군의 관전 무관이 위로하려고 애도의 뜻을 표했을 때도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 무관은 후일 ‘그때처럼 인간의 위대성이라는 것을 느낀 적은 없다.’고 술회했다. 즉 도고는 그 가슴속의 비애를 눌러 죽임으로써 패배 심리가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전 함대를 멋지게 구출한 것이다. 그러나 로제스트벤스키는 그의 공포심리를 각본으로, 함대를 무대로 쇼를 연출하는 인물이었다.
발틱함대는 북해로 들어가고 있었다. 전 함대는 일본의 수뢰정이라는 환상을 뒤쫓아 자지 않고 모든 포대에 장탄하여 항해중인 선박을 볼 때마다 포신을 좌우로 움직였다. 조그만 선박만 나타나도 구축함들은 미친 듯이 쫓아갔다.
더구나 안개가 자욱한 야간에 서로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차례로 경적을 울렸다. 그럴 때마다 각 군함에서 내는 서로 다른 소리가 공포를 한층 더해 주었다. 또한 무전전신도 한 몫을 거들었다. 각 함정들의 경계심리가 과민해져 수시로 괴정보를 발신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마구 교환했다.
그러던 중 함대의 수리를 위해 뒤따르던 한 공작선이 기관고장으로 뒤쳐지면서 선장의 심리적 동요에 의해 ‘일본의 수뢰전대(水雷戰隊)에 쫓기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무선으로 전 함대에 전파되면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보고를 받은 사령관은 즉각 반응을 일으켰다. 얼마 후 ‘이제는 적함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았지만 사령관의 그 멋진 공상력은 다시 발동되었다. 즉 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적들이 그 공작선을 그냥 놔두고 본대를 뒤쫓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기묘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 전 함대에 전투준비를 내렸다.
그런 중에도 시간이 흐르고 함대는 별일 없이 어둠속의 북해를 항해하고 있었다. 전함대의 전투원들은 자지 않고 각 부서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비바람이 불어 날씨도 좋지 않았지만 이미 그들은 어둠속에서 자기의 상상력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지쳐있었다.
이 함대가 통과하고 있는 북해의 중앙에는 수심이 낮은 ‘Dogger Bank'라는 넓은 지역이 있는데 이곳은 수많은 어류의 서식지로 영국을 포함한 각국의 어선들이 계절마다 활발히 조업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불행히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결국은 전방에서 조업을 하고 있는 어선들이 상호 교신하는 것을 목격한 기함 스와로프에서 어둠을 뚫고 탐조등을 비추었다. 이는 집단 심리 속에서의 전투 개시를 명령한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발휘했다.
각 함의 함장들은 깜짝 놀랐고 사령관은 전 함대에 전투명령을 내렸다. 상대는 분명한 어선이었다. 그러나 이미 공포감에 질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상황이라 각 함대는 그 어선들을 일본의 수뢰정으로 보았고 모든 대포가 포효하기 시작하였다.
실제 그 곳에서는 21척의 영국 어선들이 조업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연(狂宴)은 시작되었다. 이 대 함대는 아무 저항 없는 어선들을 한복판에 가두고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하게 된 것이다. 도중에 이상하다고 판단한 사령관이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수병들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광분해 있었다.
일부는 어선이 침몰하자 일본 해군력이 별거 아니라며 자신감에 넘친 괴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이 무슨 망신인가? 발틱함대의 이 광기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더구나 피해자인 어선들을 구조하지 않고 현장에 두고 도망침으로써, 국가의 원천을 명예와 가치라고 생각했던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불명예스러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하여 일본과 이미 동맹을 맺은 영국은 격분했고 전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이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문제점이 예견되는 엄청난 거리를 항해해야 하는 발틱함대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결국 발틱함대는 영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방해 공작으로 숫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천신만고 끝에 극동지역에 도착하였으나 기다리고 있던 일본 함대의 공격을 받아 괴멸에 이르게 되고 결국은 전쟁에서 패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때와는 전쟁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지휘관은 물론 전투원들의 이러한 정신적 심리적인 요소들이 여전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변함이 없다.
겨울철이면 북에서 남으로 수도 없이 밤중에 하늘을 날아오는 철새 떼를 묘한 상황 하에서 적 침투용 항공기로 오인하여 대공포를 발사하지 말란 법이 없으며, 수많은 부유물들과 주변국들의 어선 상선들이 떠다니는 동서남해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들이 겁에 질려 있다면 어떤 판단을 하게 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적인 지형의 특성상 6.25 전쟁 시 현리전투에서와 같이 적 침투부대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지휘부를 포함 전 부대가 와해되는 상황이 또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더구나 군사력이 우리보다 월등한 주변 강대국들과의 우발적인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그러한 상황에 임하는 각급 지휘관들과 전투원들의 냉정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전투자세가 얼마나 중요할 것인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 군이 미래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전투원들의 사기를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훌륭한 지휘관들을 육성하고 실전적인 훈련을 통하여 우수한 전투원들을 육성하는데 조금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Konas) 출처:월간자유
고인호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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