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립운동가 양전백 선생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3-02-28 오후 5:33:13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에 참여한 양전백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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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에 참여한 양전백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69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한 양전백 선생은 명신학교, 신성중학교, 보성야학교 등의 설립에 참여해 민족교육에 앞장섰다.
1910년 한국을 강제 병합한 일본은 선생을 비롯한 기독교 각 교파 교역자 17인을 초청해 일본 시찰을 시키고 회유하려 했으나 선생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듬해인 10월 ‘데라우치 총독모살 미수사건’(105인 사건)을 조작해 신성중학교 학생 및 교사들과 함께 체포했다.
모진 고문과 법정투쟁 끝에 1913년 3월 무죄로 풀려난 선생은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가 다시 일본 순사들에 의해 다시 연행 됐다.
양전백 선생은 취조 과정에서 일제의 무단통치가 적합하지 않으며, 한국인은 일본인과 도저히 동화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아 마포의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한국장로교회 역사 편찬일을 하다 중병을 얻어 1933년 1월 17일 64세를 일기로 선천 천북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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