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발발 413주년, 충무공 이순신을 다시본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5-04-13 오전 8:48:44
불화살이 비오듯 난무한다. 함포에서는 적선을 향해 쉴틈 없이 포화를 퍼부어 대고 함선과 함선이 돌격전으로 부딪치며 피를 튀기던 적병의 몸이 순식간에 짙푸른 바닷물로 곤두박질친다.
직격탄을 맞은 적함은 화염에 휩싸인 채 이내 파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그러자 포연이 자욱한 연기 사이로 붉은색 갑옷에 긴 지휘도를 손에 든, 굳게 다문 입술로 무너져 가는 적선을 응시하다 승리에 환호하는 수병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근엄한 모습이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 된다.
지난 4월 2일 저녁 방송된 주말 사극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 옥포해전의 한 장면이다.
23전 23승. 세계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신화 아닌 불패신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참전한 최초의 해전인 옥포해전을 통해 조선 수군은 해전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전승을 위한 담금질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상우수사 원균과 당포 앞바다에서 합세한 장군은 자신의 기함을 중심으로 횡렬로 늘어서서 왜군의 중심부를 공격하여 결국 일본의 도도다카토라의 함대 26척을 격침하여 최초의 승리를 장식하였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의 기세에 전함을 버리고 수군 1만을 해산시킨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은 전라·충청 지방에 이르는 해로(海路)의 목줄인 옥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응하여 장군은 휘하의 판옥선과 기타 함선을 이끌고 당포 앞바다에서 합세하였다.
이때 원균은 그가 거느리고 있던 70여 척의 전선을 모두 잃고 겨우 3척으로 합세하였다.
그리고 5월 7일 조선 함대는 옥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적선 50여 척을 발견하고 이를
동서로 포위 맹렬한 포격을 가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결과 아군은 단 한 척의 전선도,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이 적선 26척을 격침하는 대 전과를 올렸으니 이는 승전을 위한 서막이자, 이어진 전투에의 승승장구를 위한 발판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조선수군의 승리는 1592년 4월 12일 이미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하루 전 조선수군 최강의 돌격선인 귀선(龜船), 거북선이 진수된 것이다.
광풍노도처럼 진격하는 왜군 앞에 도성인 한양이 무너지고 평양성이 함락되는 등 풍전등화의 조선이었지만 하늘은 아직 조선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순신이 건재하였기 때문이다.
413년 전 오늘 4월13일은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를 1, 2군 선봉장으로 7백여척의 함선을 이끌고 부산진 앞바다로 출병, 조선정벌에 나선 날이다. 조·일 전쟁이 시작된 날인 것이다.
그리고 2005년 4월 오늘에 우리는 또 다시 일본과 독도를 사이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필두로 또 다른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지난 날 일본을 방문했던 통신사절단이 당리당략에 따른 상반된 보고를 함에 따라 씻을 수 없는 오욕과 파란을 겪었듯이 413년 전 임진왜란과 100년 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야만 했던 역사를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독도를 방문한 시민들이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제정에 항의하고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규정한 후소샤 판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분노의 함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시위규모가 갈수록 일파만파 번지는 가운데 반일감정 표출 또한 노골화 되고있는 시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시대에 침략과 가해의 역사를 정당시하는 민족과 함께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말처럼 최근 일본이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영토분쟁을 획책하며 국제사회에서 자행하고있는 행위는 지난 세기 역사적 가해와 더불어 20세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나치와 파시스트와 다를 바 없으며 우리민족을 참담한 비극 속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게 했던 군국주의 망령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400년 전 임진왜란을 통해 왜구들의 대륙침탈에의 야욕을 확인했다면 100년 전 우리는 군국주의에 의한 세계제패의 망상을 거듭 확인했다. 그리고 오늘 일본은 세계2위의 경제대국을 앞세워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두 번 다시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국강병, 유비무환의 안보의식이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발발 413주년이 되는 오늘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노기에 찬 음성을 역사의 교훈으로 새겨들어야 한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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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탄을 맞은 적함은 화염에 휩싸인 채 이내 파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그러자 포연이 자욱한 연기 사이로 붉은색 갑옷에 긴 지휘도를 손에 든, 굳게 다문 입술로 무너져 가는 적선을 응시하다 승리에 환호하는 수병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근엄한 모습이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 된다.
지난 4월 2일 저녁 방송된 주말 사극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 옥포해전의 한 장면이다.
23전 23승. 세계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신화 아닌 불패신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참전한 최초의 해전인 옥포해전을 통해 조선 수군은 해전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전승을 위한 담금질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상우수사 원균과 당포 앞바다에서 합세한 장군은 자신의 기함을 중심으로 횡렬로 늘어서서 왜군의 중심부를 공격하여 결국 일본의 도도다카토라의 함대 26척을 격침하여 최초의 승리를 장식하였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의 기세에 전함을 버리고 수군 1만을 해산시킨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은 전라·충청 지방에 이르는 해로(海路)의 목줄인 옥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응하여 장군은 휘하의 판옥선과 기타 함선을 이끌고 당포 앞바다에서 합세하였다.
이때 원균은 그가 거느리고 있던 70여 척의 전선을 모두 잃고 겨우 3척으로 합세하였다.
그리고 5월 7일 조선 함대는 옥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적선 50여 척을 발견하고 이를
동서로 포위 맹렬한 포격을 가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결과 아군은 단 한 척의 전선도,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이 적선 26척을 격침하는 대 전과를 올렸으니 이는 승전을 위한 서막이자, 이어진 전투에의 승승장구를 위한 발판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조선수군의 승리는 1592년 4월 12일 이미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하루 전 조선수군 최강의 돌격선인 귀선(龜船), 거북선이 진수된 것이다.
광풍노도처럼 진격하는 왜군 앞에 도성인 한양이 무너지고 평양성이 함락되는 등 풍전등화의 조선이었지만 하늘은 아직 조선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순신이 건재하였기 때문이다.
413년 전 오늘 4월13일은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를 1, 2군 선봉장으로 7백여척의 함선을 이끌고 부산진 앞바다로 출병, 조선정벌에 나선 날이다. 조·일 전쟁이 시작된 날인 것이다.
그리고 2005년 4월 오늘에 우리는 또 다시 일본과 독도를 사이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필두로 또 다른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지난 날 일본을 방문했던 통신사절단이 당리당략에 따른 상반된 보고를 함에 따라 씻을 수 없는 오욕과 파란을 겪었듯이 413년 전 임진왜란과 100년 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야만 했던 역사를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독도를 방문한 시민들이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제정에 항의하고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규정한 후소샤 판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분노의 함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시위규모가 갈수록 일파만파 번지는 가운데 반일감정 표출 또한 노골화 되고있는 시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시대에 침략과 가해의 역사를 정당시하는 민족과 함께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말처럼 최근 일본이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영토분쟁을 획책하며 국제사회에서 자행하고있는 행위는 지난 세기 역사적 가해와 더불어 20세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나치와 파시스트와 다를 바 없으며 우리민족을 참담한 비극 속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게 했던 군국주의 망령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400년 전 임진왜란을 통해 왜구들의 대륙침탈에의 야욕을 확인했다면 100년 전 우리는 군국주의에 의한 세계제패의 망상을 거듭 확인했다. 그리고 오늘 일본은 세계2위의 경제대국을 앞세워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두 번 다시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국강병, 유비무환의 안보의식이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발발 413주년이 되는 오늘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노기에 찬 음성을 역사의 교훈으로 새겨들어야 한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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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바로 임진란 발발 413주년이라니... 일본놈들이 제2의 임진왜란을 획책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일본을 경계하며 유비무환의 정신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국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 시의적절한 기사가 맘에 든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4-13 오전 11: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