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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자유롭게 살게 하고 싶다 - 어느 실향민의 회상과 소망

3. 공산주의가 뭐길래
Written by. 어느실향민   입력 : 2012-05-07 오전 8: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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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북한에서 살던, 이제는 초로의 노신사가 된 한 실향민의 육필 수기형 글임. 김영수(가명)씨의 수기를 5회에 걸쳐 게재하며 2편에 이어 세번째 글임.<편집자 주>

*공산주의 정권의 부침

 마르크스, 엥겔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에 의하면 그들은 인류사를 1.원시공산사회 2.고대노예제사회 3.(영주들이 중심이 된)봉건사회 4.(자본가들이 노동자 위에 군림한)근대자본주의사회 5.미래(현대)공산사회 로 나누었다.

 근대자본주의사회에 들어와서 독일사람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 일부 엘리트를 중심으로 소수의 자본가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에 대한 구체적인 의문과 반성이 일었고 그에 대해 개선책을 찾아보려고 하는 노력에 의해 탄생한 것이 ‘공산주의’ 이론이라 하겠다.

 좀 더 멀리 가보면 노예제사회부터 소수 집권세력에게 지속적으로 억눌려 왔던 다수를 인류애적 관점에서 돌아보게 된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공산주의사회 실현 수단으로서의 폭력적인 방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이론을 정립한 사람들의 동기 자체만은 순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1차대전 말기인 1918년 러시아의 국내 여건 변화로 레닌 등에 의하여 세계 최초로 러시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그 다음 2차대전 이후 1940년대 중·후반 러시아의 후신인 소련에 의해 동유럽의 여러나라와 북한 등이 공산화 되었고 이어서 중국이, 1970년대 중·후반에는 한 나라가 공산화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옆 나라도 공산화 된다는 ‘공산화 도미노 이론’까지 등장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공산화가 이어졌다. 이때부터 한동안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전성기를 맞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후 20세기 후반에 헝가리의 미주화 운동, 폴란드의 시민혁명과 동독 시민들의 서독을 향한 탈출 행렬 등으로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곧 이어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됨으로써 지금은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공산주의 국가들은 불과 몇 나라에 불과할 뿐이다.

*공산주의 정권의 소멸 이유는

 마르크스, 엥겔스 등이 다수의 이익을 바탕에 둔 이상향으로 보고, 심혈을 기울여 사유(思惟)한 결과물인 공산주의 이론이 오늘날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공산주의 사상의 골간이라 할 수 있는 ‘공동생산 공동분배’가 얼핏 이상적일 것 같지만 생산주체인 개개인의 의욕을 자극 시킬 수 없다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생산의 질과 양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노동자들이 옆집 사람들(자본주의 국가의 근로자들)에 비해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어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될 수 밖에 없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한편, 공산주의 국가의 인민들은 개인의 영리 추구 목적으로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므로 개인적으로는 순빅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나태하다.

 예를 들어 보면, 서방세계의 여행객들이 구 소련이나 동유럽 공산국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려 하면 분명 빈자리가 눈에 보이는 데도 기다리라는 말밖에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때 슬며시 다가가서 말도 걸면서 껌이나 초콜릿이라도 건네면 금방 자리에 앉게 하였다는 것은 흔히 들을 수 있던 얘기다.

 또, 여행객이 비행기 탑승 시간에 맞춰 공항을 가더라도 안내방송도 없이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것이 예사였다 한다.

 아마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의 행태였다면 그 기업은 초기 경쟁에서 도태되었을 것이다.

 둘째. ‘큰 조직은 부패하기가 쉽다’는 지적대로 극 소수의 공산 세력들이 자기네들에게 충성하는 자들만 기용하는 등 국가가 모든 기업을 관장하는 체제 하에서는 눈치 보는 개인들이 광범위하게 부패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생산주체들의 생산의욕을 저하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셋째. 전체를 위해 개인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본능적으로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한편 무산계급이 유산계급을 폭력적으로 제거할 수 밖에 없다는 공산주의 논리에 따라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여 버렸고, 그로 인해 인명경시 풍조가 확산됨으로써 스스로 체제의 정당성을 훼손시킨 데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보거나 당이나 고위층에게 과인 충성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얼마 전 김정일 사망 시에 북한주민들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과인 몸짓이 그것을 잘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공산화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참살해버린 사람들의 수는 무려 1억명이 넘는다고 한다.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따라 공산주의만을 믿고 따라야 하는데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타종교인들까지 모두 죽이려 들었다.

 구 소련의 공산화과정에서만 기독교 신자 2700만 명 등ㅇ 4500만 명을 죽였고, 북한도 종교인들을 참살하고 아예 종교 자체를 말살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신자들은 한국 등으로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중공의 공산화과정에서 6000만 명이나 되는 국민들이 살해되었고 영화 킬링필드로 알려진 캄보디아에서는 인구의 삼분의 일에 가까운 150?200만 여명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기가 찬 것은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외국물을 먹었다 하여 운동선수 2000여명을 학살해 버린 일과 안경 낀 농부를 지식인처럼 보인다 하여 살해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 당시 대량 학살의 주범인 폴포트는 수 년 간 프랑스에서 유학한 인텔리였다.

 그 당시 도시에는 젊은 남자들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명재천(人命在天)’이 ‘인명재공(人命在共)’으로 변질된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각국의 공산화 과정에서는 아비규환의 대 참살의 만행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우리 민족에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인류의 아픈 역사를 뒤돌아보면 공산주의 사상을 정립한 사람들의 현실을 뒷받침하지 못한 이론의 허구성 때문에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아마 인류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있었던 삶의 방식에 대한 가장 크고 광범위하면서도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참담한 역사적 실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제 우리 동족인 ‘북한’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konas)
<4편에 계속>

어느 실향민

국가보안법서명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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