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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㉚] 오! 나의 웬수들

Written by. 이정민   입력 : 2017-09-24 오후 1: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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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나는...

  난 올해로 29살의 최고참 사회복무요원이다.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대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느 덧 1달이라는 짧은 기간만을 남겨놓고 있다.
20대에 들어서면서 내 시간은 번개같이 지나갔다. 그동안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27살에 들어서며, 아니 27살 7월 6일 훈련소 입소부터는 매우 더디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지난 1년 11개월 간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내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서히 변화하는 내 자신과 환경을 느꼈다.

장애아동생활시설, 늘사랑의집

  2015년 8월 3일, 난 강릉 시내에서도 차를 타고 40분은 떨어져 있는, 정동진보다도 더 위로 올라가야 하는, 하루에 지나가는 버스가 네다섯 대 밖에 없는 장애인생활시설 늘사랑의집으로 배정을 받고 첫 출근을 하였다. 오랜 사회에서의 시간동안 학원 영어강사로서 어린 아이들을 상대해왔던 나였던지라 장애아동생활시설이라는 곳에 대해 큰 이질감 없이 들뜬 마음으로 출근을 하였다. 비록 그 대상이 장애인이더라도 막연하게 ‘말아톤’이나 ‘7번방의 선물’ 등의 장애우 주인공들을 생각하며 들어갔다. 그리고 첫 인상은 한 마디로 ‘망했다!’ 였다.

분명 장애아동시설이라고 공지를 받았던 난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아동’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애우들이 분명히 있긴 하였으나 이용자들의 3분의 2 이상은 주로 내 또래 였던 것이다! 게다가 중증장애인들만 가득 모아놓은......

온전히 의사소통이 되는 이용자는 겨우 5명 내외였고, 그 외엔 의사소통은커녕, 대소변도 본인 힘으로 처리가 가능한 인원이 반도 안 될 정도였으니,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후회감이 물 밀 듯이 들어왔고 그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하는 데에만 꼬박 1개월이 걸렸다. 지옥과 같았다. 웃으며 식사보조를 해주며, 매일 목욕보조를 하고, 프로그램 참여에, 침 냄새와 변 냄새가 수시로 났던 그 생활시설이란...

도무지 2017년 7월 5일이란 시간은 나에게 오지 않을 거 같았고, 정말 3개월 동안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 악물고 버텨야 하는 시기였다.

마음을 열다.

  당시 내 어머니는 암 환자였고, 집에서 살지 못 하시고 멀리 경기도 어느 산에 있는 요양병원에 계셔서 두어 달에 한 번씩이나 얼굴을 뵐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매일매일 힘들어하던 나를 보시고는 “네가 힘든 거 다 알아. 하지만 그런 너를 보는 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니? 본인이 원해서 장애를 갖게 된 것이 아닌데, 그런 너를 보면 얼마나 미안하겠니? 나도 아픈 나를 보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미안해. 그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해라. 그 사람들에게 형과 같은 사람이 되어라” 그 말이 옳았다.

본능적으로 찡그렸던 내 얼굴과 내 마음으로 인해 이용자들은 나에게 말 거는 것조차 어려워했고, 서로가 너무나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왔던 것이다. 그 이후, 난 조금씩 달라지기로 했다. ‘먼저 인사하기, 불평불만 줄이기, 친근한 형이 되기.’ 그렇게 하나하나씩 시도해가며 이용자들은 내 동생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이용자 한명 한명의 특징과 주의해야 할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무섭다며 다가오지도 못 하던 이용자들은 내가 가장 좋다며 나에게 다가왔고, 어린 이용자들은 나와 함께 집에 가고 싶다며 내가 퇴근하는 시간마다 울기 바쁠 정도였다. 함께 축구를 보며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서로의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좋은 날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우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늘어나는 사회복무요원. 달라지는 분위기

  내가 이 시설에 들어왔을 때, 우리 시설엔 나까지 총 다섯명의 사회복무요원이 있었다. 모두 나보다 대여섯 살 씩 어린 동생들이었고, 심지어 중고등학교 후배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복무하는 동안, 한 명은 만기소집해제를 하여 직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고 두 명은 개인사정으로 조기소집해제를 했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이로는 가장 큰 형이면서 짬밥(?) 으로는 가장 막내인 생활을 이어갔고 1년 1개월 만에 후임들을 받게 되었다. 그 후임들이 들어왔을 때, 난 그들에게 ‘너흰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든 복무지로 배정을 받아왔어. 하지만 너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이 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즐거운 복무지가 될 거야’ 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가고 내 위로는 모두 소집해제를, 내 밑으로는 네 명의 사회복무요원들이 생겼다. 이십대 초반의 어린 동생들과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서 이제는 모든 사회복무요원들이 이용자들과 형, 동생이 되어 어쩔 땐 정말 재활교사 선생님들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어있다. 또한 단합이 어찌나 잘 되는지 마치 오래 본 사이들처럼 가까워졌다.

8살 짜리 여자 이용자는 학교를 다녀오면 재활교사에게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우리 오빠들 어디 갔어?’ 이며, 사회복무요원 한 명, 한 명이 이제는 모두가 ‘우린 정말 가장 즐겁고 복무하기 편한 시설로 왔어!’ 라고 진심을 다해 말하는 공간이 되었다.

생애 가장 슬픈 일. 그리고...

  올해 결국 내 어머니는 우리 가족 곁을 떠나셨다. 6년 간의 힘든 투병 생활 끝에 결국 돌아가셨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곧 서른이 되는 나이에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하며, 직업을 가질 수 없어 값비싼 좋은 음식 한 번 제대로 사드리지 못 했고, 잡혀있는 생활이라 편찮으신 어머니 곁을 제대로 지켜드리지도 못 했다는 그 자괴감이 매일같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다시 복귀한 나는 그 누구와도 웃지 못 했고, 그 누구와도 제대로 대화를 해 나갈 수가 없었다. 그 때 내게 기탄없이 가장 먼저 다가온 게 바로 몇몇의 이용자들이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네주었고, 괜찮냐. 어디 아프진 않냐. 등등의 질문과 서투른 말투로 음료수 하나씩을 건네주었다.

도무지 마음은 잡히지 않았지만, 그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어머니의 말씀들이 오버랩 되었다. “그래, 힘든 모습 보이지 말자. 이 악물고 버텨내자.” 라고 하루에 수 십번씩 마음을 먹으며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대해나갔다. 우린 더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힘든 현실에서도 이들은 나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아무 인지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무 생각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이곳에선 가장 먼저 따뜻하게 다가와 주었고, 가장 먼저 마음을 열어주었으며, 가장 티 없이, 허물없이 나에게 그들을 보여주었다.

이제 소집해제를 한 달 앞둔 나에게 그들은 친동생과 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아프거나 다치면 정말 내 가족의 일인 것처럼 속상해지고, 그들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하고, 축구 시합이 열리면 그들과 함께 열광한다.

2년간의 사회복무요원은 사실 누군가에게는 군대보다 훨씬 쉬운, 속칭 ‘개꿀’ 이라고 불리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군대도 못 간 등신들만 가는 곳이라고 욕 먹어가며 버텨야 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그 무엇보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눈을 뜨고 있는 매 순간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순간이고, 그 대상이 누가 되든 나의 선생이다. 라는 누군가의 격언이 생각이 난다.
분명 늘사랑의집의 이용자들은 다른 장애인 시설보다 케어해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지녔으며, 가장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곳이 바로 이 곳. ‘늘 사랑의 집’ 이다.

이정민  늘사랑의집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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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8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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