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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念(신념)의 鳥人(조인)’ 딘 헤스 미국 공군 대령, 10월의 6‧25전쟁영웅

"바우트 원’(Bout One) 한국 공군 건설작전 성공적 수행"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18-09-28 오전 10: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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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딘 헤스’ 미국 공군 대령(1917. 12. 6~2015. 3. 3)을 10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국가보훈처가 28일 밝혔다.

 딘 헤스 대령은 미국의 공군 장교로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을 지원할 제6146군사고문단 창설 책임자로 임명되면서 한국과 인연이 시작됐다. 또 한국 공군의 F-51D 머스탱 18번기 신념의 조인기의 주인이기도 하다.

 헤스 대령이 탔던 전투기 F-51D 머스탱 18번기에는 ‘信念(신념)의 鳥人(조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의 좌우명인 ‘By faith, I fly’(믿음으로 하늘을 난다)를 한국 공군 정비사가 우리말로 옮겨 써준 것이다.

 제6146군사고문단은 대한민국 공군 재건을 위한 작전을 한판 승부(Bout One)라 이름 짓고 부대명도 이 이름을 따서 ‘바우트 원 대대’라고 명명했다.

 이후 전시 상황은 악화되었고 결국 미군은 바우트 원 대대를 해체시켜 미 공군에 전속시킬 것을 결정하지만 상부에 부대의 존속을 결사적으로 주장했고 그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존속할 수 있었다.

 헤스는 전투기가 부족하다는 상부의 압박이 들어올 때마다 교육 중인 한국 조종사들과 함께 전투기를 타고 출격해 임무를 완수했다. 훈련부대였음에도 불구하고 헤스는 1951년 6월에 한국을 떠날 때까지 무려 250회나 출격하며 각종 전투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미 공군 조종사들이 100회의 출격을 달성하면 일본 등 후방으로 전출 보내주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한국에 남았고 끝까지 대대를 지켰다.

 또한 중공군 개입으로 전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전쟁고아들을 대비할 계획을 세웠지만 단 1대의 항공기도 아쉬운 판국에 전쟁고아들을 실어 나를 비행기를 따로 편성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헤스는 적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김포 비행장을 뜨려던 수송기들을 붙잡아 950명의 고아와 80명의 직원을 제주도로 구출했다. 6·25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헤스 대령은 전쟁고아를 위한 기금을 만들어 한국의 고아원을 지원했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17. 3. 9.)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공군은 그를 전쟁 중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로 현양하고 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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