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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⑩ <입선> "동행, 함께 꿈꾸다"

Written by. 강범석   입력 : 2018-10-05 오후 4: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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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고 헤매다
 너는 꿈이 뭐야? 주위의 만류에도 고집대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저에게 사람들은 종종 물었습니다. 졸업해도 할 일이 없을 거야, 요즘 누가 글을 읽는다고. 처음 보는 사람조차 제 미래를 부정적으로 단정하곤 했습니다. 이런 경우,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것은 차라리 핀잔에 가까웠습니다. 작가가 될 것이라고 답하면서도 저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냉대에 맞설 만큼 작가에 대한 꿈이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치열한 고민 끝에 얻어낸 꿈이 아니라 단순히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정해진 목표였습니다. 어영부영 대학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상황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길을 열심히 나아갈 리 없었습니다. 더구나 몇 번의 습작 활동을 거치면서 제가 글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창작 수업에서는 항상 낙제점을 받았고 펜을 잡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어느새 저는 꿈을 잃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허한 마음을 달래려 무작정 대외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갖은 동아리 활동과 봉사를 병행하며 매주 수십 명의 사람과 교류하고 경험을 쌓았지만 이내 시들해 졌습니다. 무엇인가 마음을 툭 건드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애초에 제가 세운 꿈과 목표는 철없고 안일한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도 없이 누가' 되리라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즉, 본질을 놓친 것입니다. 어설픈 사랑 이야기나 자의식적인 글만 늘어 놓는 제게 하루는 교수님이 물었습니다. 자네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가? 저는 그만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금껏 마감 시간에 쫓겨 떠오르는 대로 급하게 써낸 것이 제 글의 전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며칠이 지나서도 질문에 답을 내어놓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떠한 결실도 맺지 못한 채 공연히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정처를 잃고 떠돌던 22살의 초여름, 훈련소를 거쳐 사회복무를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입장으로서 스스로 편견이 없기로 자부했지만 막상 장애인 복지 시설에 발을 들이니 떨떠름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간 가까이 접해보지 않았기에 시설 내 풍경은 생소하고 어색했습니다. 다가가면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을 걸어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좀처럼 가늠하기 힘든 사람들과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하며 애써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몹시 당황했습니다.

마치 초여름의 열병처럼 아찔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음이 풀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미디어에서 익히 보던 어두컴컴하고 침울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시설 거주인 모두는 하나의 가족 같은 화목한 공동체였고 저를 조건 없이 일원으로 받아주었습니다. 몇 주간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을 도와 중증 장애인들의 식사나 목욕 등을 지원하고 여러 교육 프로그램의 보조 역할로 일했습니다.

 일에 익숙해지자 점차 거주인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눈에 밟혔습니다. 시설 특성상 대부분 비슷한 생활 유형을 공유하고 있지만 각자 다른 과거를 품고 있었습니다. 굴곡진 삶을 삶아왔기에 그것들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매사에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거나 방 안에 틀어박혀 꿈쩍도 하지 않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의 문제야말로 글을 읽고 쓰면서 치유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것을 활용해서 일하는 동안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데 모여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간단한 계획을 들은 사무국장님은 반색하며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마침 시설 안에 시를 쓰는 거주인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뇌성마비를 가진 몸으로 4년이 넘도록 102편의 시를 써서 곧 시집까지 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담당해서 잘 이끌어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시

 첫 임무는 시집에 실릴 시의 교정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시집의 감수를 맡은 등단 시인이 먼저 확인한 것을 오탈자나 맞춤법 등을 재검토하면 되었습니다. 손가락 두 마디보다 두꺼운 종이 더미를 받아들고 집에 와 시를 읽었습니다.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가슴이 아파 쉽게 종이를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일을 마치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이었습니다.

내 마음, 천국에 있으니
내가 받은 사랑을
사랑받지 못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소서.
내 마음, 천국에 있으니
세상에 가난하고 외로운 자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 中 -

 시에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에 대한 날 선 한탄도, 건강한 몸에 대한 안타까운 동경도 있었지만 오히려 따뜻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씨는 자기에게만 바쳐도 모자랄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써왔습니다. 자신보다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을 위한 기도를 시에 담은 것입니다.

저는 무엇인가에 얻어맞은 듯 머리가 어찔했습니다. 저도 남들보다 그리 평탄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제게 훈장처럼 남았습니다. 저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자만하며 아픈 과거만을 강조해서 글을 쓰곤 했습니다. 사람들의 동정을 받으며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치기 어린 글들이 부끄럽게만 느껴졌습니다. 제게 글은
수단 그 이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마음 한 편 프로그램, 진심을 담다

 시집을 펴내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씨는 시와 관련된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책을 읽을 형편이 되지 않았으므로 어휘력이나 표현력이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J씨의 시도 내용은 물론 좋았으나 문학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이론 수업을 위주로 함께 공부해나갈 생각이었습니다. 사무국장님과의 몇 차례 회의를 거쳐 기획서를 만들었습니다. 프로그램명은 마음 한 편'으로 정했습니다.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한 편의 시로 완성해보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다음으로 세부 수업 계획을 짜야 했는데
교수법을 배운 적이 없어 녹록지가 않았습니다. 과외나 교육 봉사 등으로 남을 가르쳐보기는 했지만 체계를 갖추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여러 책자와 선생님들이 챙겨주신 자료를 참고해 겨우 완성은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시작하자 ○○씨가 잘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학습 수준을 너무 높게 책정한 탓이었습니다. 기본적인 비유조차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수업 방식이 맞지 않았습니다. 수험생들과 공부했던 자료를 그대로 가져와 시 이론을 주입시키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정작 ○○씨에게 필요한 것은 시야를 넓혀줄 다양한 경험과 독서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혼자 힘으로 바깥을 나갈 수 없는 J씨는 견문이 넓지 않았습니다. 저는 방법을 바꿔 여러 시를 함께 읽으며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수업도 일방적으로 내용을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닌 서로 감상을 나누는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씨도 한결 수월한 듯 보였습니다. 매주 시를 한 편씩 써오면서도 쓰고 싶은 것이 자꾸 생긴다며 즐거워했습니다.

 한 번은 수업을 하다 물었습니다. ○○씨는 왜 글을 쓰세요? 저는 이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씨라면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잠시 고민을 거친 후에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면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까요. 스키도 타고, 소풍도 가고. 마음껏 쓰다 보면 몸이 아픈 것도 잊게 돼요.ˮ

 ○○씨에게 글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소망과 그 진심이 여전히 반짝이는 하나의 결정체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새까맣던 머릿속에 형광등이 켜지듯 무엇인가 떠올랐습니다. 대학 수시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말했던 다짐이었습니다. 면접관은 제게 작가가 된다면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질문했습니다.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겠습니다. 그들 곁에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문학을 하고 싶습니다. 스무 살의 저는 그렇게 답했습니다. 합격을 위한 허울뿐인 말이었지만 그 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일 년이 가까운 시간을 ○○씨와 보내면서 저는 제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사람이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제 위주로 바라보던 세상이 서서히 바뀌어 갔습니다. 이곳저곳에 방치되어 있는 사회적 소수자, 장애인들이 눈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그들은 정말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운명처럼 꿈과 재회하다

 ○○씨와 함께 공부해온 것들은 제게도 상당한 훈련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펜을 들어 그들의 모습을 글로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성소수자에 관련된 칼럼을 썼고, 학교 밖 청소년들을 주제로 기사를 썼습니다. 완전히 어긋난 줄 알았던 작가의 길에 다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이제 글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 여부는 나중 문제였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세상에는 그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왕왕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J씨와 그의 시를 만나게 된 것은 운명적이었습니다. 단순히 보조 업무만 수행하며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거주인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인사만 하는 정도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가가자 미리 정해져 있었듯 길이 펼쳐진 것입니다. ○○씨의 꿈은 또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시집을 펴낸 것에 그치지 않고, ○○씨는 한국 문인 협회 등단을 목표로 오늘도 시를 쓰고 있습니다. 저 또한 묵묵히 여러 소수자를 위한 글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씨와 저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글이 막힐 때면 언제든 찾아가 영감을 주고, 서로 글을 읽어주며 성장해가는 어엿한 파트너입니다.

동행, 함께 꿈꾸다

 사회복무를 위한 2년이라는 기간은 제게 일종의 마라톤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3개월을 넘겨본 적 없을 만큼 저는 지구력이나 끈기가 부족했습니다. 막상 일을 벌여놓고는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이러한 성정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완주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도 어떻게든 참고 나아가자고 다짐
했습니다.

 몇 차례 고비는 제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만두고 싶다, 귀찮다. 무엇을 바라고 열심을 쏟아야 하는가. 수업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거나, 여전히 제 글이 탐탁지 않게 느껴지면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이끌어준 것은, 어느새 제 옆에서 발맞춰 함께 뛰고 있는 ○○씨였습니다. 선생님, 하고 부르며 써온 시를 꺼내 놓는 ○○씨를 보면 감히 발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다시금 힘을 내어 계속 달렸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경주도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언젠가 도착지점에 도달할 것이고, 우리의 프로그램도 끝날 때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동행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한, 서로 부대끼고 의지하며 앞으로 한 발 전진할 것입니다.(konas)

남해소망의 집 강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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