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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순신이 그립다

Written by. 손풍삼   입력 : 2008-04-05 오후 1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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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충무공은 예나 지금이나 호국충정의 상징이다. 그러나 문인이 아닌 무인(武人)이기도 하고 또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통해 그 존재의미가 더욱 커진 인물이다 보니 때로는 호사가들의 이런저런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칼을 오른 손으로 잡고 있고 고개도 떨구고 있어 항복한 장수 같다'로부터 '얼굴이 인자하게 표현된 영정과는 딴판이다' '우리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로 무인을 세우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일반의 정서야 이런 시비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대한민국 사람치고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지 않는 이는 없다. 그는 영원한 '성웅'이요 인간적으로도 매력적인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순신을 좋아한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몇 년 전에 출판되어 선풍을 일으킨 소설들, 그리고 방송 드라마도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비로소 인간 이순신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근접하기 어려운 '성웅'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인간 이순신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드라마 역시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여러 역사학자들이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지적하고 있는 소설과 드라마의 오류들에 대해 우리는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광화문에 서 있는 장군의 동상에 대한 지적만 해도 그렇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급하게 재촉을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동상의 모습은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성품에 비추어 볼 때 동상의 살벌한 분위기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동상은 도저히 한 손으로는 뽑아낼 수 없을 것 같은 지나치게 긴 칼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항장, 즉 항복하는 장수가 아니라면 칼을 오른손으로 잡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부족하다. 물론 자료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난중일기>가 있지만 마치 선장이 항해일지를 쓰듯 매일 매일의 일상에 관해서만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나 정치권으로부터 핍박받을 당시의 심경 같은 것은 드러나 있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군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왜곡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순신 장군을 제대로 알기 위한 연구에 나서야 하겠다는 것이다. 막연히 장군을 떠받들기만 하는 것은 장군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특히 역사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우리가 소장하고 있는 장군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그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장군을 성웅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위대한 전략가로 존경하고 있다. 도오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1905년 대한 해협에서 러시아의 발트함대를 전멸시킨 일본의 명장인데, 환영만찬에서 넬슨 제독이나 이순신 장군을 능가한다고 추켜세우자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트라팔가르 해전을 승리로 이끈 넬슨 제독과 비교하는 것은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는 것은 그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당시 똑똑한 임금만 만났더라면 동양 전체를 석권했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저는 일개 하사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본은 지금도 자위대 군사학교에서 이순신 장군의 작전에 관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장군에 대한 보잘 것 없는 기술과 한번 비교해 볼 만한 일이다. 이제는 <난중일기>나 <대한국사>에도 언급되지 않고 소설로도 수용하지 못한 장군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보니 오해와 왜곡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무엇 때문에 문과가 아닌 무과를 고집했을까? 임진왜란 당시, 서울을 버리고 압록강까지 도망친 왕과 조정대신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 위급한 와중에 전투 중인 장군을 불러 올려 고문을 가하고 사형판결까지 내렸던 것일까? 일본함선을 격파할 수 있었던 장군의 작전은 어떤 내용인가? 그리고 당시 전쟁 내용에 대해 일본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충실한 답을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다.

 이순신은 전란으로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원한 영웅이다. 장수로서 부끄럽지 않게 자기 직분을 다했다는 점도 훌륭하지만 '유비무환', '백의종군' 같은 가치를 구현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듯이 사후의 평가 또한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어야만 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순신은 칼을 찬 장군이자 목민관이었다. 어떻게 보아도 그의 일생은 고독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 이순신이 온전히 평가받은 것은 18세기 정조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정조는 교서관 유득공에게 명해 원집 8권과 부록 6권으로 된 <이충무공 전서>를 펴냈고, 그를 영의정에 추증했다. 이후 다시 잊혀져 가던 이순신은 20세기초에 부활한다. 그런데 이때부터의 담론은 당대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문학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근대적 시각으로 이순신을 주목하게 만든 첫 번째 인물은 단재 신채호였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이후 단재는 대한매일 신보(1908년 5월 20일 ∼ 8월 18일)에 <수군 제일위인 이순신전>을 연재함으로써 충무공을 장졸과 백성의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한 영웅이자 민족 자강과 통합의 구심점으로 그렸다.

 춘원 이광수도 훼절하기 전인 1930년대 초 동아일보에 <이순신>을 연재했다. 춘원은 당과 싸움에 초연한 영웅과 당파 싸움에 미친 조선 지배층의 갈등을 소설의 뼈대로 삼았다. 춘원 역시 자신이 주창하던 민족개조론의 텍스트로 이순신을 원용했던 셈이다. 그리고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 이순신 담론은 본격적으로 기획되고 완성되었다.

 현충사 성역화와 전국적인 동상 건립이 이때 이루어졌다. 노산 이은상이 <성웅 이순신>을 쓴 것도 이 때다. 지금 30∼40대가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본 '말에서 떨어진 이순신' 이야기의 출전이 이 책이다. 민족문화협회 부설 횃불사가 출판한 이 책은 홍종철 당시 문화공보부장관의 독려 속에 준 국가사업 성격을 띠고 배급되었다.

 이렇듯 박정히 대통령의 이순신관은, 박정희의 요청으로 1975년 5월 21일부터 만 1년 동안 주 2회씩 국무호의 석상에서 장관과 장성들을 모아놓고 특강했던 역사학자 이선근박사의 당시 강의 내용을 묶어 펴낸 <한민족 국난극복사>에 잘 나와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국사란 곧 국난극복사와 다름없었다. 대통령 자신과 유신 체제 또한 그런 선상에서 해석되어야 했다. 그 사징 모델이 바로 이순신이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이 이순신을 주목한 또 다른 배경으로 일본군 콤플렉스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이승만 시절에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독립운동가 발굴과 포상이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와서야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이순신 담론은 1980년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이때부터 화석화한 계몽적 영웅은 고적한 마음의 행로를 가진 한 인간으로 재탄생했다. 그릭 현재 이순신은 김탁환의 장편소설 <불멸의 이순신> 말고도 김 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 등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인간 이순신'의 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학계의 분발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konas)

 손풍삼 (순천향대학교 부총장, 인문대 교수)

 ** 이 글은 '자유' 4월호에 실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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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13 오후 6: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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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히래 ㅋㅋㅋ 오타.</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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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국헌신의 이충무공과 같은분이 한분만 더 있엇어면하는 바램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04-07 오후 3: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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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뻑 !! 반갑습니다. 어디계신가 했습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04-05 오후 10: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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