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76주년 기념식
중국 상해 루신(魯迅)공원 매정(梅亭) 앞에서도 동시에 열려
일본의 상하이(上海) 점령 경축식장에 폭탄을 투척해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의사 상해의거 76주년 기념식'이 29일 오전 의사가 의거를 벌였던 중국 상해 홍구 공원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동시에 열렸다.
|
이 날 오전 11시 매헌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 주관으로 양재동 시민의 숲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76주년 기념식'에는 김덕룡(국회의원)명예회장과 류찬수 남부보훈지청장, 윤병석 매헌 연구원장, 그리고 윤 의사의 손자며느리 등 유족과 3.1여성동지회, 윤 의사를 기리는 시민, 회원 등 150여명이 참석해 의사의 뜻을 기리고 유지를 받들 것을 다짐했다.
|
한편 중국 상해 현지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기념사업회 회원과 현지 공관 및 교민, 홍커우(虹口)구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학준 기념사업회장·국가보훈처장(상해총영사관 전재원 영사 대독)·상해시 홍구구 정협 부주석의 기념사, 윤봉길 의사 노래 등의 순으로 거행되고 있다고 기념사업회 관계자가 전하기도 했다.
기념식에서 김덕룡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윤 의사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한 올해를 계기로 윤봉길 의사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김 명예회장은 "76년 전 홍구공원의 의거는 상해에서의 독립운동이 일제의 탄압과 회유정책으로 침체기에 접어들고 내부분열로 독립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가는 즈음에 발생해 독립운동이 새롭게 되는 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일제의 칼날 앞에 신음하던 중국 국민을 잠에서 깨어나게 한 의미와 함께 중국정부와 국민들이 상해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케 하고 세계의 소수민족들이 제국주의 지배와 피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새로운 의식을 갖게 해준 의미깊은 의거이기도 하다" 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윤 의사는 독립운동을 한 열혈청년만이 아니라 19세의 나이에 벌써 농민을 일깨운 농민운동가이자 계몽운동의 선각자였고 문장가였다" 며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가를 알 수 있다" 면서 "윤 의사의 나라사랑, 겨레사랑 정신을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알게 해 국가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데도 앞장서 나가자"고 강조했다.
국가보훈처장을 대신한 류찬수 남부 보훈지청장은 기념사에서 "2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윤 의사이시지만 의사의 숭고한 살신성인의 호국정신은 독립운동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의사의 유훈을 기렸다.
류 지청장은 이어 "올해는 광복 63주년이자 건국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 반세기 전만해도 수난과 국권을 상실한 비극의 역사였지만 선열과 국민의 땀과 노력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며 "이제 새 정부는 선진 강국의 일류국가를 열어가고자 한다. 의사께서 몸소 실천한 나라사랑정신을 받들어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이어 회원들은 국가발전과 윤 의사의 유지를 받들자며 만세삼창을 제창했다. 한편 기념관 입구에는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동지회(HID)회원들이 차량에 윤 의사의 대형 사진을 설치해 시가행진을 하고 오기도 했다.
윤봉길 의사(1908. 6.21∼1932.12.19)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하여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독서회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촌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다가 일제의 압박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전승경축식을 상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킴으로써 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조선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피체된 윤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같은 해 11월 18일 오오사카(大阪) 육군 위수(衛戍)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교외에 있던 한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하였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6월 30일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하였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
|
|
|
- 관련기사보기
-
저와 같은 곳에 살아 계셨던 독립 영웅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나라를 더욱 사랑할 마음을 모두 함께 가졌으면 좋겠네요. http://cafe.naver.com/bohunstar/ </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05-05 오후 2:08: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