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48년체제'의 위대한 遺産 ③
'87년 체제' 출현과 대한민국의 위기
이와 같은 반공주의적 태도는 미국무부와 충돌하게 만들었다. 루즈벨트와 트루먼의 민주당 정부는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의 협조를 통해 국제문제를 해결한다는 左右合作(좌우합작) 노선을 내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볼 때 미국의 좌우합작 정책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조직이 강한 좌파와 조직이 없는 우파가 손을 잡았을 때 반드시 우파가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2차 대전 직후에 좌우합작연립 정부를 세웠던 동유럽 국가들, 그리고 '국공합작'을 내세웠던 중국이 共産化(공산화)된 사실에서 증명되었다. 따라서 입장이 애매모호한 좌우합작주의자들과의 싸움은 입장이 분명한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 보다 더 어려운 것이었다.
이승만은 國家保安法(국가보안법)의 제정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인권을 지켜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한 비난에는 한국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공산화 통일이 될 수 있었는데 이승만 때문에 공산화되지 못했다는 좌파들의 분노도 섞여 있었다.
1987년의 6.29선언에 뒤이어 10월에 이루어진 9차 헌법 개정과 함께 이른바 '87년 체제'가 나타나면서, 이승만의 '48년 체제'는 바뀌기 시작하였다. 1948년의 헌법은 전문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3.1운동 정신)을 계승…"한 것임을 밝혔으나, 1987년의 제9차 개정 헌법의 전문은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1987년에 대한민국의 이념적 토대가 "3.1운동 정신"으로부터 "임시정부"로 바뀐 것은 대한민국이 반공국가에서 좌우합작국가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임시정부는 1942년부터 좌파들을 받아들인 左右合作(좌우합작) 정부이기 때문이다.
아직 국가보안법이 그대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은 사회주의를 용납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은 국가정체성 문제에 있어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현대판 衛正斥邪派(위정척사파)'의 도전을 받는 '개화파의 대한민국'
이처럼 좌우합작의 길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은 한 세기 전 구한말 해양세력이 한반도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던 때를 연상시킨다. 그때 지식인들은 '開化派(개화파)'와 '衛正斥邪派(위정척사파)'로 갈려 처절한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 구도에 비추어 보면, 대한민국은 분명히 개화파(문명개화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다. 따라서 그것의 이념적 토대에는 일본의 國家主義(국가주의)와 미국의 自由主義(자유주의)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反(반) 대한민국 세력은 '위정척사파'의 전통을 이어 받은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그 동조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념적 토대에는 民族主義(민족주의)와 民衆主義(민중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위정척사파의 나라가 아니라 '개화파의 나라'라는 사실, 따라서 대륙문명권이 아니라 '海洋文明圈(해양문명권)'에 속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천명함으로써, 대한민국 정체성 위기의 주원인인 '左右合作化(좌우합작화)'를 막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운동의 중심에는 이승만이 상징적 지도자로서 있는 것이다.(konas)
이주영(건국대 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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