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60주년 선진대한민국 원년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맞았다. 그리고 3년간의 미군정을 거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돌이켜 보면 건국 60년은 격랑 속에 보낸 세월이었다. 국토는 남과 북으로 분할되었고 이념은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갈리었다.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된 지 2년도 안되어 6·25의 침략전쟁이 있었고, 가난했던 대한민국은 그나마도 폐허 위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여야만 했다. 거의 세계의 밑바닥에서 시작한 대한민국이 60년만에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가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의 초대정부로 시작하여 대한민국의 존립에 필요한 초석을 놓았다. 6·25 전쟁을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승리로 이끌었으며 더 이상 공산주의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없도록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사회·경제적으로는 농지개혁을 통하여 빈곤한 농민들이 자립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고 나아가서 빈곤한 농민층을 파고드는 공산주의 전술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정치적 잘못을 범하기는 하였지만 대한민국의 방향을 밝은 미래로 향하게 하는 역사적인 공을 세웠다.
1960년의 4·19혁명과 그 여파로 탄생한 장면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민주주의의 내실화를 시도한 역사적 공이 있다. 그러나 봇물처럼 솟아져 나온 사회적 요구와 갈등을 적절히 수습하는데 실패하여 5·16 쿠데타를 초래하였다.
5·16의 결과로 탄생한 박정희 정부는 한편으로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을 산업화시키는데 총력을 다하였다. 반공정책은 6·25를 경험하고 또한 이념적인 국론분열의 폐해를 충분히 맛본 정부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국가의 존립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의 역사적 공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인정하듯 대한민국의 근대화, 산업화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부의 리더쉽 하에 농업 중심의 국가는 산업 중심의 국가로 그 체질이 바뀌게 되었다. 경부고속도로를 위시로 하여 교통 인프라는 비약적으로 정비되었고 수력 및 화력 발전 설비의 증대, 신기술인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여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었다.
자원이 빈약하고 내수가 미약한 나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수출위주의 정책이 이루어졌다. 전자, 조선, 철강, 자동차, 중화학, 방위산업 등이 박정희 정부 하에서 새로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국제적인 산업국가로 성장하게 되는 초석이 박정희 정부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아쉬운 점은 박정희 대통령 역시 장기집권의 유혹을 물리치고 못하고 여론의 비판을 받다가 시해당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였다는 것이다.
제5공화국의 전두환 정부는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하고 철권통치를 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경제적인 점에서는 박정희 정부의 충실한 계승자였다고 할 수가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개화기를 맞이하여 이 때에 꽃을 피게 된 것이다. 경제를 잘 관리하고 반공정책을 충실히 계승한 전두환 정부의 공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독재로 인한 국민적 저항은 6·29 선언을 낳았고 뒤를 이어 노태우 정부를 탄생시켰다. 노태우 정부는 민주적 요구를 비교적 충실히 수용하여 시민적 정치를 발전시키고 아울러 북방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탈냉전 이후의 국제질서에 연착륙하였다는 점이 역사적 공이라고 할 수가 있다. 노태우 정부를 이은 김영삼 정부 역시 경제적 근대화 노선을 계속 추진하였으며 내적으로 시민적 자유의 확산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러나 새로운 효율성 확보의 실패로 외환 위기를 초래한 것은 실책에 속한다.
김대중 정부의 등장은 박정희 정부의 노선을 일면 계승하며 일면 다른 방향을 가졌다. 경제적 효율성 강화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경제체질을 개선하여 IMF 구제금융 위기를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하고 IT산업, 문화사업 등을 활성화시켰다는 공이 있다. 그러나 대북유화정책이 지나쳐서 안보의식이 해이하게 되고 내적인 추진동력을 약화시킨 것은 문제이기도 하다.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경제적으로는 분배정책을 강조하고 정치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의 노선을 이어 받았다. 그리하여 대북관계를 강화하고 전통적인 한-미-일 안보동맹을 해체하고 미-중 사이에서 중간노선을 취하려 하였다. 또한 친북정책이 지나쳐 국가의 정체성에 혼선을 초래하는 일도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은 이러한 점에서 60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는 특수한 시기가 되었다.
2008년 이명작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대의 국제환경은 예사롭지 않다. 세계적으로는 경제후퇴의 조짐이 뚜렷하다. 국내적으로도 해이해진 경제 주체들이 다시금 일어서는 데는 적지 않은 시련이 필요할 듯하다. 정치적으로도 좌우파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사회-문화적인 국면에서 여전히 치열하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표류하고 있고 추진동력은 꺼져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2008년 8월 15일 건국 6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을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며 살아온 60년이다. 우리를 침략했던 북한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였고 매년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폐허에서 시작하여 세계 경제규모 10위권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건국 60년의 길을 따라 선진국으로 다시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식으로 후퇴할 것인가의 갈림길이다.
동아시아에서 전쟁과 식민지를 겪다 탄생한 후 살아온 60년이다. 일본은 세계 최강국의 하나가 되었고 독도문제에서 보듯 아직도 동아시아에서 군림하려는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10%대의 성장을 구가하는 움직이는 호랑이가 되었다. 한국은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이미 그 대립이 심각한 상태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그 내부에서의 사회적 대립이 한계선을 넘은 듯하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그렇지만 우리의 대한민국은 아직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한 길이 건국 60주년으로써 선진대한민국의 원년이 되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정치인들이 국익을 우선시하고 정쟁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을 향한 경쟁은 권력이 작동되는 국가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비겁하게 길거리정치에 아부하지 말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를 선진한국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둘째, 경제주체들이 세계의 움직임을 돌아보지 못하고 좁은 안목으로 나라를 망치게 해서는 안된다. 협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눈 앞에서는 얻고 돌아서면 크게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경쟁은 피할 수 없으며 경쟁능력을 갖추는 일이 경쟁을 회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경제 주체들이 이를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4만불의 시대로 향해 갈 수가 있다.
셋쨰,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안보를 이해하고 국방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선진한국의 군은 질적으로 우수한 군인,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된 바위체제, 강한 충성심이 전제조건이다. 국방력 없는 경제번영은 모래성과 같은 것이며, 경제적 번영이 뒷받침되지 않는 군은 오래 갈 수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충성심이 없는 군은 대한민국의 영토가 침략당하기 전에 적을 공격하여 적을 무력화시켜야 하고 적으로 하여금 감히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무장하여야 한다.
선진한국의 원년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아무도 그것을 만들어 주지 않으며 어느 나라도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미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 앞을 향해 갈 것인가 아니면 뒤돌아 설 것인가? 우리가 선택할 일이다.(konas)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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