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에서 ‘안국(安國) 60년’으로
'부국강병', '선진화'를 위한 새로운 국가이념 수립해야
1. 안국(安國) 60년의 원년으로
금년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라서 지금 많은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모두 과거를 반추할 뿐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건국된 지 60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음 60년은 나라를 안정시키는 기간으로 본다는 의미로 안국(安國) 60년을 새로운 국가이념으로 제안한다.
국가란 모름지기 건국이 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이른바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하는 법이다. 안정기라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한층 높은 차원에 오름은 물론 정치, 문화, 사회 모든 면에서도 세계 일류국가가 되는 시기라는 뜻이다.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선진화(先進化)'로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룩한다는 말이다. 건국 60년을 맞는 올해를 그런 웅대한 꿈의 시대를 여는 원년으로 삼자.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평안한 국가의 성숙한 국민이 될 때가 되었고 그럴 자격도 충분하다.
안국(安國) 60년은 단순히 경제개발에만 전력투구하던 '건국 60년'과 달리 문화와 사회, 그리고 환경 모두에서 격조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을 그 기본개념으로 한다. 나는 2002년 10월 3일 중앙일보 중앙시평에 "두엄대통령을 원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바 있다. 내 당대에 눈에 보이는 치적을 쌓으려 초조하고 분주하게 뛰는 대통령이 아니라 후임 대통령들이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다시 말하면 거름(두엄)이 되어주는 그런 대통령이라야 안국(安國) 60년을 열 수 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멀리 내다보는 대통령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추앙을 받는 것은 그 당대에 우리가 갑자기 잘 살게 된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게 상당 부분 그의 덕이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TV에 나오는 현대중공업 광고에는 고 정주영 회장의 모습이 등장하여 다시금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정주영 회장 당대에 현대가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은 아니다. 그가 닦아놓은 초석 위에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이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종대왕과 같은 성군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태종과 같은 '두엄 임금'이 있어야 했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그 동안 나라를 일으켜 세우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 국민들에게 이제는 정말 사는 것처럼 사는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의 안국(安國) 60년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개념어가 될 수 있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우리나라를 세계 초일류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안국(安國) 60년의 원년을 시작했으면 한다. 건국(建國) 60년을 마무리하고 이제 안국(安國) 60년을 시작하자.
2. 공부하는 대한민국--집현전(集賢殿)의 부활
지난 몇 달간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 즉 한반도 대운하 논란, 미국산 쇠고기 파동, 독도 문제 등의 근본 원인은 우리가 기본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기초 자료가 없는 가운데 현황을 분석할 수 있는 과학적인 능력의 부재는 신뢰의 상실을 가져오고 결국 우리 모두를 혼란으로 빠뜨린다. 우리가 진정 세계 초일류국가가 되려면 서두를 게 아니라 착실하게 기초를 쌓아야 한다. 거듭 강조하건대, 큰 키로 멀리 내다보며 자손대대로 고마워하고 누릴 수 있도록 '두엄'을 준비할 때이다.
나는 종종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란 게 잘 믿어지지 않아 경제학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게 사실이냐고 캐묻곤 한다. 어딜 파면 뭐가 펑펑 쏟아지는 나라인가? 조상님들이 뭘 두둑하게 물려주신 나라인가? 도대체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지 찾기도 힘든 작디작은 나라. 불과 반세기 전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인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던 나라. 그 나라가 지금 전세계에서 열한 번째로 거대한 경제규모를 지닌 나라라는 걸 어떻게 그대로 믿으란 말인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지 겨우 반세기만에 이처럼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룬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우리 민족의 힘은 진정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촌각의 머뭇거림도 없이 정답을 말할 수 있다. 별로 좋지도 않은 제도 속에서도 죽어라 공부한 덕에 일궈낸 기적이라고. 지지리도 가진 것 없는 이 나라를 이처럼 화려하게 일으켜 세운 것은 오로지 우리 민족의 뜨거운 교육열이라는 내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교육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열망이 '건국 60년' 내내 우리를 붙들어준 힘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덜 할까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학계는 지금 애써 키운 젊은 박사들을 속칭 ‘보따리 장수’를 시키고 있다. 강사료가 워낙 쥐꼬리 같아 서너 대학을 뛰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렇게 몇 년 뛰고 나면 몸은 물론 학문의 샘도 고갈되고 만다. 이 얼마나 엄청난 낭비인가?
매년 갓 박사학위를 받은 탁월한 젊은 학자 100명을 선발하여 4천만원씩 5년 동안 뒷받침해보자. 첫해에는 40억 정도가 필요하고, 5년 후에도 기껏해야 200억이면 될 것이다. 5년 후면 500명의 젊은 두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식의 빛을 반짝이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그만큼 더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 정부가 하고 싶은 일들의 해답이 이 500개의 두뇌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은 오로지 공부밖에는 믿을 게 없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한 덕에 성공한 분이다. 공부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나라의 미래는 그만큼 밝을 것이다. 미국에는 이런 명예교우회(Society of Fellows)들이 하버드, 미시건, 버클리 등의 명문대학들에 설립되어 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집현전이 바로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꿈꾸는 현대식 집현전은 우리나라 사정상 대학 혼자 세우기엔 버거울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할 수도 있다.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사회 환원은 바로 인재를 키우는 일에 후원하는 것이다. 정부가 멍석을 깔고 기업이 후원하면 가능한 일이다. 정신이 먼저 선진화해야 사회도 선진화한다. 다시금 "난세일수록 공부에 힘쓰라"던 우리 성현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안국(安國) 60년의 원년을 힘차게 열 때다.
3. 교육과학기술부에 EK(Ecology Korea) 사업을!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은 현재는 물론 향후 수십 년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가장 중요한 요인들이다. 세계 경제가 빠른 속도로 탄소경제체제로 변해가고 있다. 다행히 이명박 정부는 이 두 이슈를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간과되고 있다. 이처럼 중대하고 새로운 이슈들을 다룰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도 세워놓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환경문제는 경제 문제인 동시에 외교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탄소배출권에 대한 협상으로부터 국경을 넘나드는 환경오염의 갈등조정, 자원외교에 이르기까지 생태학의 전문지식은 물론 국제정치에 대한 이해를 겸비한 인재들이 절실한 때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들에서 활약해야 할 인재를 양성하는 작업에 아무런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 않다.
그 동안 우리 과학기술부는 BK(Brain Korea) 사업을 벌여 IT, BT, NT 분야의 인재들을 길러냈다. 그래서 그런 분야들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국제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미래학자들은 향후 20~30년간 세계 경제를 인도할 산업으로 에너지산업과 환경산업을 꼽는다. 세계적인 미래학자들은 IT산업의 수명을 15년 남짓으로 보고 있다. IT에만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뜻이다. 또한 BT와 NT는 중요한 기술임에 틀림없지만 얼마나 큰 경제 효과를 불러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런 가운데 이미 환경산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커지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동안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오고 있었다. 이웃나라 일본이 대표적이다. EU도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EK(Ecology Korea)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기초 생태학 분야는 물론 생태학과 환경학 관련 인력을 폭넓게, 그리고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대량 배출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분야가 그 동안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여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해 생태학 관련 분야들이 경제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분야들의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부부가 2007년 방한했을 때 서강대 손병두 총장과 대담을 가진 다음 날(2007년 6월 5일) 조선일보는 "IT 다음은 생태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제 시간이 없다. 지금 현재 생태학 관련 인력을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본격적인 대학 기관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의 거의 모든 명문대학과 주립대학에는 오래 전부터 생태학 관련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독립적인 학과들이 만들어져 있다. 우리 대학들에도 하루 속히 생태학 관련 학과들이 만들어져 인재 양성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후변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기후변화시대를 맞이하며 모든 문제의 핵심인 생태학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이 그저 정치, 외교, 행정, 경제, 기술 등의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이 국가를 대표하여 균형 있는 교육을 받은 외국의 대표자들과 마주앉을 걸 상상해 보라.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EK 사업으로 길러질 인재들은 환경부는 물론 외교통상부,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모두가 필요로 하게 될 것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교육과학기술부에 적극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공부로 살아남은 게 '건국 60년'이라면 안국(安國) 60년도 공부로 세워야 한다.
4. 국가미래기획위원회를 대통령직속 상설기관으로
국내의 여론을 수렴하는 작업은 선진국에서는 국가미래전략청에서 항상 하고 있는 일이다. 특정 이벤트를 위한 일시적인 조사가 아니라 항시적인 여론 조사에 기반을 두고 적어도 20~50년의 미래를 내다보며 국가 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확정하는 상설기관이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50개국에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해외의존도가 특별히 높은 나라일수록 먼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불의의 변화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일을 당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조금 산다는 나라들 중에 해외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그래서 이미 외환위기 등 크고 작은 재앙들을 겪은 바 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미래기획위원회를 만든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위원회의 미래지향성이 얼마나 확고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믿음이 가질 않는다. 이참에 필자는 미래기획위원회를 대통령직속 상설기관(미래기획원?)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우리도 ‘Japan2025’ 같은 미래기획을 내놓을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정책의 기조와 방향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만일 미래기획원이 만들어진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구성이 바뀌는 일도 없어야 한다. 구성원의 일부는 늘 새롭게 교체 보강해야 하겠지만 연구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정치적인 압력에서 자유로운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안국(安國) 60년의 원년을 미래기획원의 설립으로 시작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향후 60년의 대한민국 정책을 단계적이고 장기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konas)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http://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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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오전 9: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