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군인의 길
충무공이 걸었던 것처럼 외로운 길, 영광스런 길 만들어야
프랑스의 역사철학자 볼테르(Arouet de Voltaire)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평할 만큼 학식과 재능이 뛰어났던 생 제르망(Saint German) 백작은 “군대는 사회에서 아무 쓸모없는 찌꺼기 같은 인간들로 구성돼 있다”고 혹평한 바 있다.
당시 장교는 귀족에 할당돼 궁중여인과 도박·무도회에 무상출입, 주색에 빠지는 인간 폐물들이었다. 국민의 평화를 위한(Peace for Nation) 군대 이전 왕의 평화를 위한(Peace for King) 용병 시절의 이야기다.
전쟁의 목적과 전략은 1789년 프랑스혁명과 함께 변화했다. 국민의 군대가 됐다. 정부와 국민이 하나 되는 충성심을 유발했다. 일반 대중에게도 시민권이 부여되고 국민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정치혁명이 일어났고, 귀족의 장교 독점과 면세권을 박탈하고 국민개병제의 군사혁명과 전시경제가 가능한 경제혁명이 일어났다.
이러한 난세에 나폴레옹이 등장했다. 나폴레옹은 군대를 개혁해 전 유럽을 지배했다. 그는 무제한 전략으로 전면적 승리를 추구할 수 있었다. 이를 목격한 프러시아의 크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전쟁의 본질은 정치적이고 폭력 행위로 그 목표는 승리에 있다고 전쟁론에 서술했다.
이에 따라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신념이 미국 육군의 전통이 됐다. 맥아더는 그 전통대로 한국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싶었다. 그는 1962년 웨스트 포인트에서 후배들에게 참 군인의 길을 의무(Duty)·명예(Honor)·조국(Country)으로 요약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라고 당당히 재판정에서 밝힌 한국의병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는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유서를 남겼다.임진왜란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한 이순신 장군은 필생즉사(必生則死)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12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나는 20살의 아들을 적의 칼에 잃었고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전투에서 죽음을 택했다.”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의 일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도 이순신 장군을 넬슨보다 위대하다고 칭송했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이나 맥아더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참 군인의 길로 일관했기 때문이다.이명박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군복을 입은 것이 자랑스럽고, 군인의 길이 영광되도록 할 것”을 천명했다.
우리 군대는 18세기 프랑스 군대와 비교할 수 없지만 정치 군인들로 인해 수난도 겪었다.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임전무퇴의 기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굳게 지녀야 한다.참 군인의 길은 충무공이 걸었던 것처럼 힘들고 외로운 길이다. 이제 군은 물론 온 국민이 군복이 자랑스럽고 군인의 길이 영광되도록 만들어야 할 때다.(http://kookbang.dema.mil.kr/)
최명상(전 공군대학총장/ 명지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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