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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젊은 미국 대통령들과 한미관계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 한국인이 결정한다는 각오를 다질 각오가 필요

Written by. 이주천   입력 : 2008-11-20 오전 9: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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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2008년 11월 네 번째 40대 민주당 대통령후보 오바마(47세)가 年老한 공화당의 멕케인후보에 압승하여 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오바마의 한반도 정책과 정치지도력이 부시와 어떻게 다를 것인지 예의주시해야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오바마가 리버럴이므로 국내의 좌파와는 다를 것이라는 분석으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미국정치에서 보수시대가 마감되고 진보정치의 시대가 개막된 점은 확실하다.

 오바마의 당선을 지구촌의 누구보다도 대대적인 환영의 표출하는 국내좌파들의 기대감도 경계해야겠지만, 실제로 우리의 역사적 경험상에서 40대의 젊은 미국 대통령들이 한미관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념해야할 것이다.

II.
40대에 미국 대통령으로 최년소 시어도어 루즈벨트(42세)와 존 케네디(43세), 그리고 빌 클린턴(47세)을 꼽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3인 모두 한미관계에서 큰 마찰을 빚었고 한국의 國益에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19세기말 미서전쟁(American Spanish War)에서 참전하여 명성을 날린 뉴욕경찰 청장출신이면 뉴욕지사를 역임했던 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맥킨리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26대 대통령이 되었다.

맥킨리는 공화당내의 혁신주의세력을 의식하여 루즈벨트를 부통령으로 임명한 것이다. 루즈벹트는 국내적으로는 개혁을 강조하는 혁신주의 성향이었지만,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통해서라도 달성해야한다는 제국주의적 성향이 다분한 인물이었다.

또한 루즈벨트는 앵글로색슨족이 우월하다고 믿은 인종주의자로서 처음부터 한국(조선)의 독립문제를 무시했으며 한국이 독립의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과 같은 주변국가에 의탁해야한다고 인식하였다. 루즈벨트는 스페인을 필리핀에서 격퇴한 후에 필리핀의 영구 점령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이 점에 대해서 국제적 승인이 필요했다.

결국 육군장관 태프트를 방일하게 하여, 나타난 것이 유명한 카츠라-태프트 밀약(1904)이다. 이 밀약은 일본이 미국의 식민지가 된 필리핀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일본이 군사력을 동원하여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수립하는 것(즉 보호국화)을 허용한 것이었다. 이승만이 특사로서 방미하여 뉴욕에 머물던 루즈벨트를 만나서 한국의 독립에 대해 조미통상조약에 의거하여 미국의 지원을 호소했을 때, 루즈벨트는 이미 4일전에 일본이 욕심내는 한국의 보호국화를 승인해 주었었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이를 은폐한 재 딴청을 부렸다.

존 케네디 미 35대 대통령은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5.16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말로는 지지를 약속했지만 5.16 쿠데타를 내심 좋지 않게 보았고 조속한 민정이양을 요구하였다. 5.16쿠데타를 불쾌하게 생각한 미 의회는 한국에 제대로 원조를 제공하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케네디 행정부는 군사정부에게 한일협력을 통해서 경제문제를 해결하라고 종용했다.

그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동아시아 개발도상국에 주는 경제원조를 일본에게 일부 부담을 넘기는 것으로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5.16쿠테타가 일어난 1961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83달러였던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였다. 어느 나라도 선뜻 차관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할 수 없이 김종필을 일본으로 파견하여 긴 협상 끝에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성사시켜서 차관을 합쳐서 총 8억달러(무상 3억, 유상차관 2억, 기술협력 3억)에 달하는 금액을 일본으로부터 얻어내었고, 이것이 경제개발의 시드머니가 되었던 것은 불행중 다행이었다.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시절에는 김일성의 핵개발문제로 골치를 썩였다. 클린턴은 그 당시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코드가 맞지 않았다. 북핵문제와 한미경제문제에서 크고 작은 이견이 노출되었다. 94년부터 북핵문제가 터졌는데, 처음에는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고 했으나, 김영삼 정부가 극력 만류했다.

결국 카터는 자진해서 특사가 되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카터 회담이 성사되었다. 국방장관 페리는 평양을 다녀오면서 페리보고서를 만들었고, 클린턴은 핵폐기의 대가로 KEDO를 통해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도록 한국과 일본에 강요하는 양보를 선 보였다.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에서 IMF사태를 맞이했고, 그 와중에서 권력은 김대중 좌파정권으로 넘어갔다. 2000년 10월 9일 클린턴은 조명록 차수를 워싱턴으로 초청하여 극진한 대우를 하였고, 10월 23일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으로 보내 김정일과 환담케 하였다. 이는 11월 7일 미 대선전에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과 미북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북수교를 단행하려는 계획의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결국 클린턴의 평양행은 불발탄에 그쳤다.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십여만명이 연출하는 열광적인 매스게임에 참석하여 관람에 열중했는데, 그 당시 국제구호기관 소속으로 평양에 있던 노베르트 폴러첸 독일인 의사가 뉴욕타임즈 등 언론기자들을 평양 교외에 있는 아동병원의 비참한 실상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쇠 침대만 놓여 있을 뿐 약도 거즈도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이것은 뉴욕타임즈에 ‘올브라이트가 가보지 못한 평양’이라는 충격적인 기사로 나타났다. 이로써 김정일 공산독제체제에 대한 미국의 유화적 접근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이다.

III.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한국인이 너무 一悲一喜(일비일희)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북핵위기를 둘러싼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의 인생철학이 부시나 맥케인과 크게 다르고, 그의 특이한 소수민족으로서의 성장배경과 튀는 발언 등을 미루어 볼 때, 오바마의 대외정책이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과 어떻게 다르게 진행될 것인지 예의 주시해야할 것이다.

클린턴 말기에 불발탄으로 그친 평양행-미북정상회담-미북평화협정체결을 성사시켜서 야심찬 ‘대북로드맵’을 추진해서 재선을 노리는 강한 유혹에 삐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럴수록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 한국인이 결정한다는 각오를 다질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당의 클린턴과 공화당의 부시가 북한정권의 핵무장을 막지 못한 체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과연 오바마는 어떤 정책 수단으로 북핵폐기를 유도할 것이며 김정일체제와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 오바마는 북한공산체제를 지원하여 그 수명을 연장시킬 것인가? 아니면 북한의 개혁개방의 물꼬를 트게 하여 궁극적으로 북한해방에 기여할 것인가?

IV.
분명한 점은 북한 김정일 체제를 ‘악의 축’이라고 선언했던 부시행정부의 1기와는 달리 2기에 들어오면서, 현실주의 외교노선이 가동되어 마카오의 BDA은행에 은닉된 김정일 비자금 2500만 달러를 풀어주었고 미 국무부는 북한을 테러지정국에서 해제시키는 등 대북유화책이 착착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예의 주시해야할 것이다.
북한문제는 미 행정부가 집착하는 핵문제만의 해결이 능사가 아니다. 한국은 북한의 핵 폐기뿐만 아니라 북한 인권문제와 종교탄압을 줄기차게 미 의회와 조야에, 심지어 유엔에까지 이 문제를 제기해야한다. 그래야 오바마 행정부가 동맹국 한국을 건너 뛰어넘어 과도하게 북한에 접근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konas)

이주천(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김정일의 인질이 된 대한민국>,<김정일의 대항마를 찾아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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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eenbamboo    수정

    미국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경제를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11-21 오전 11:11:21
    찬성0반대0
  • pakwj3697    수정

    세계가 어려운시기라, 이시기에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국가는 살아남을 것이요 그렇지 못한나라는 만연 후진국으로 전략하고 말 것이라 본다. 국가이익을위해 실용주의로 채택하여 세계의 흐름을 잘 이용하는 국민적인 각성과 각오가 필요하다고본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11-20 오후 4: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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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ck247    수정

    전세계는 변화위 시대가 왔다 강대국이던 게발도산국이더던 자국을 &amp;#52369;겨야한다,21세기 시대적 변화는 확실하다, 대한민국도 어디에 머물지말고 국민적 각오가 서야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11-20 오후 12: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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