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극복을 위한 해법
경기부양 수단 아닌 유동성문제 해결에 초점 둬야
미국 발(發)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급속히 혼란에 빠지자 지난 두 달 동안 각국이 당장의 사태 수습을 위해 다급한 마음에 각종 대책을 쏟아 냈다. 그리고 최근 G20 정상들이 미국 워싱턴에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첫 정상회의를 갖고 통화․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데 공조하고, 금융시장 규제와 감독을 대폭 강화하기로 하였다.
물론 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확대 등의 국제공조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정부의 경제에 대한 개입이 더욱 커져가는 것은 문제다. 왜냐하면 이번 금융위기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재량적인 통화정책과 경제에 대한 개입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는 것은 금융위기의 원인은 치유하지 않고 증상만을 눈에 띠지 않게 하려는 것과 같다. 이러한 방법은 현재의 금융위기를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않고 문제를 연기시킬 뿐이며, 결국 나중에 더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위기의 원인과 과정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은 첫째, 방만한 통화정책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이하 연준)은 2001년에 9․11테러, 실업률 증가, 석유가격 상승, 기업의 회계 부정 등 일련의 충격으로 경제가 위기에 처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써서 화폐 공급량을 늘렸다. 그러나 연준이 우려했던 위기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연준은 2003년 7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정책금리인 연방기금 금리(federal fund rates)를 올리지 않고 계속 1%로 유지하였다. 저금리 정책은 유동성 과잉을 낳았다. 의도하지 않게 자금이 많아진 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대출을 늘렸다. 대출 경쟁으로 모기지(주택대출) 금리가 낮아졌고 주택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주택가격이 상승하였고 경제가 붐을 이루었다.
둘째, 모기지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이다. 은행의 대출경쟁이 서브프라임에게로 확대된 것은 1977년 제정된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 개정 때문이었다. 1990년 미국 정부는 은행들의 지역개발관련 대출의무를 강화해 저소득층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하도록 하였다. 게다가 1995년 미국 정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유동화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그러자 은행들이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모기지 대출을 하였으며 취약한 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포트폴리오에서 떨어버리기 위해 그것을 유동화 하는데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 미국 정부와 의회는 Fannie Mae와 Freddie Mac에게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바탕을 둔 유동화 된 증권을 구매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셋째, 모기지 전문회사의 도덕적 해이다. Fannie Mae와 Freddie Mac은 정부의 보증을 받는 모기지전문회사이다. 정부가 손실을 보증해주기 때문에 모기지유동화증권을 늘릴수록 이들에게는 이익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손실은 생각하지 않고 모기지 유동화 증권의 규모를 늘리는 유인을 갖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와 의회가 압력을 가한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유인 때문에 모기지유동화증권을 구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행위로 은행의 대출 경쟁에 따른 주택가격의 상승 과정이 더욱 증폭되었다. 주택시장은 이렇게 연준의 방만한 통화정책, 정부의 시장개입, 그리고 정부의 보증을 받는 모기지 회사의 도덕적 해이가 상호작용하면서 거품을 이루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연준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였다. 연준은 2004년 6월 이후 연방기금금리가 2006년 8월 5.25%가 될 때까지 매달 0.25%씩 올렸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모기지 금리가 올랐다. 그에 따라 주택 수요가 감소하고 주택가격이 하락했다. 주택가격은 대출 원금 이하로까지 하락했고, 대출부도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모기지 시장에 많은 투자를 하였던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파산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손해를 입은 금융회사들이 많아지면서 국제적인 금융위기로 확대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번 위기가 월가의 탐욕과 부실한 금융감독 때문에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탐욕은 다름 아닌 곧 자기 이익추구이다. 시장에서의 인간행동은 자기이익추구로서 시장의 ‘탐욕'이란 어디에나 늘 있는 것이고, 그러한 ‘탐욕'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환경과 조건이다. 결국 시장에 거침없이 풀린 돈과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이것이 쉽게 드러났을 뿐이다. 그리고 부실한 금융감독이라기 보다는 정부가 알고 금융감독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몰랐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왜냐하면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나 지식은 시장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금융감독을 한다 해도 그러한 한계 때문에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위기를 막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시장을 교란시키는 요인이 무엇인가이다. 이번 금융위기는 근본적으로 바로 시장을 교란시킨 방만한 통화 공급과 정부의 시장개입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다.
저금리 정책, 경기부양 수단 아닌 유동성문제 해결에 초점 둬야
미국 정부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1차적으로 취한 조치는 7,000억불의 구제금융이다. 7,000억불의 구제금융은 당장의 시장 심리를 진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구제금융은 결코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구제금융은 금융권에서의 위험 행위를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은 손실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이윤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되면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의 높은 위험 행위, 즉 도덕적 해이가 늘어난다. 이로 인해 미래에 더 큰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구제금융은 자원배분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사실 이번 금융위기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의해 주택부문에 과잉투자를 교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구제 금융을 한다면 이러한 자원배분의 교정과정이 방해를 받게 된다.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경제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각국이 공조하여 금리를 인하한 것은 유효한 정책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번 역시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하고 금융기관의 손실이 증가함에 따라 자본잠식을 우려한 금융기관들이 유동성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대출기준을 강화함에 따라 갑자기 신용경색이 되었다. 그러자 기축통화인 달러와 통화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이러한 통화수요 증가에 맞춰 각국이 이자율을 낮춰 통화 공급을 늘려 시장의 동요를 진정시켰다. 1930년대에 미국의 연준이 상황을 잘못 판단하여 현금수요가 증가하여 통화승수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긴축통화정책을 써서 사태를 악화시켰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금리인하 정책은 신용경색을 완화하여 시장을 안정시키고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기업과 금융기관이 흑자 도산하는 것을 막아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협을 막는 데는 효과가 있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앞에서 말한 대로 근본적으로 저금리 정책에 의한 과잉유동성으로 인해 발생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인하는 한계가 있다. 만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금리를 인하하여 저금리정책을 오래 유지한다면 세계는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저금리정책은 유동성 수요에 맞춰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지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잠정적으로 폭증한 유동성 수요가 줄어든다면 다시 과잉유동성 문제가 불거져 지금보다 더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다. 향후 통화정책은 변화하는 통화수요에 맞춰 통화를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을 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감세와 규제완화, 그리고 자유무역이다. 각국이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투자활동을 유도하여 실물경제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1930년대 경기침체를 대공황으로까지 몰고 간 것은 보호무역 때문이었음을 상기하고 각국이 자유무역의 확대에 노력해야 한다.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유무역을 위해 각국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은 정부의 통화정책의 잘못과 정부개입에 있다. 그런데 이것을 금융시장에 대해 규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이해하여 금융시장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사실 이번 금융위기를 악화시킨 요인을 하나 더 든다면 회계장부의 "시가평가(mark-to-market)" 규제다. 시가평가제는 자산과 담보 등의 가치를 현 시세에 맞춰 장부에 기입하는 회계방법이다. 2001년 엔론 사태가 터지자 정부는 시가평가제를 의무화했다. 이것은 매우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식이나 채권시장과는 달리 유동성이 적고 시장이 잘 발달되지 않은 개인대출에 대해서는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개인대출을 바탕으로 한 유동화 증권 시장은 더욱 적어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시장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예를 들어 지불 불능상태에 빠진 한 은행이 모기지유동화증권을 싸게 팔면 그것이 곧 시장가격이 된다. 그렇게 되면 건전한 다른 은행들도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유동화증권의 가치를 그 가격으로 장부에 기입해야 한다. 이것은 은행의 재무상태와 건전성을 악화시킨다. 다시 말하면 한 금융기관의 폭탄세일은 건전한 다른 금융기관의 자본을 감소시켜 파산에 이르게 한다. 이렇게 해서 자본 잠식된 금융기관이 많았다. 규제가 위기국면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오히려 규제완화가 이번 금융위기의 충격을 완화시킨 면이 있다. 미국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분리하게 된 것은 1933년 Glass-Steagall 법에 의해서다. 이러한 금지가 1999년 Gramm-Leach-Bliley Act(GLB Act)에 의해 완화되었다. 이 법 이후 한 금융회사가 상업은행업과 투자은행업을 겸업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규제 완화로 인해 이번에 문제가 베어스톤스와 메릴린치가 상업은행인 JPMorgan Chase와 Bank of America에 의해 각각 인수될 수 있었고, 투자은행이었던 모간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금융위기의 피해가 훨씬 컸을 것이다.
금융위기 때마다 새로운 정부의 통제와 규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규제들은 위기의 재발을 막지 못했다. 1907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1914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을 설립하였지만, 연방준비은행은 1930년대 수많은 은행파산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대공황 이후 1934년 FDIC를 설립하여 금융기관들을 규제해 왔지만, 오히려 1980년대 대형은행인 First Pennsylvania Bank와 Continental Illinois Bank의 지급불능 사태와 저축은행조합(Savings and Loan Association)의 파산 사태가 초래됐다.
정부 규제는 어떤 특정 사건에 맞춰 사후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건은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사실 우리는 새로운 사건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특정 사건에 맞춰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정부규제는 새로운 사건 발생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어 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규제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과 기업, 금융기관의 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경제주체들이 새로운 환경과 정보에 적응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방만한 통화정책에서 발생한 만큼 정부가 재량적으로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현재의 정부의 불환지폐제도(fiat money system)를 개혁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http://www.cfe.org/)
안재욱(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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