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없는 인터넷 자유에 제재가 필요한 이유
민주적, 인권적 가치를 침해하는 자유는 지켜져야 할 권리 아닌 무책임한 방종이며 진정한 자유 수호를 지키기 위해 규제되어야 할 일탈이자 범죄다.
인터넷은 현시대의 세계를 연결하는 가장 촘촘하면서도 방대한 네트워크이다. 현시대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터넷이 사사로운 욕망을 소통하는 사적 소통 수단이자 기본적인 생활정보 및 뉴스를 얻는 매체, 다양한 인쇄 출판 미디어는 물론 방송을 접하는 통로로 자리 잡고 있음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가히 매체의 매체(medium of the media), 매체의 우주 또는 은하계(media universe, media galaxy), 메타미디어(meta-media)라 부를 만하다. 인터넷은 역사상 그 어떤 매체보다도 짧은 기간 동안 우리의 일상 삶, 여론, 문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은 삶과 여론, 문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
매체들이 발전하는 과정에는 기술적 하부구조가 중요한 영향을 행사한다. 하지만 인터넷은 모든 매체양식들을 자신의 공간에 받아들임으로써 매체의 기술적 차이나 특성이 더 이상 고유한 차이를 발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한다. 그 결과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방송, 통신, 신문, 서적 같은 전통적인 매체 구분이 약화되고 모든 것이 융합된 이른바 궁극적인 매체융합 현상이 예측되기도 한다.
이처럼 인터넷은 모든 미디어 모드를 용해시켜버리는 궁극적인 용광로(melting pot)로 작용하는 동시에 이 과정을 통해 그 자체가 끊임없이 진화하며 발전한다. 최근 이러한 변화의 큰 방향을 통칭하는 용어가 웹2.0이다. 웹 2.0이란 서버-클라이언트 방식의 기존 웹 환경과 달리 개방과 참여, 공유, 협업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킨 차세대 웹 환경을 의미한다. 1인 미디어로 각광받는 블로그, 애드센스나 위키피디아, 지식인 등 참여에 의해 구축되는 거대한 지식체계 등이 웹 2.0 서비스의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신장된 사회의 소통
웹 2.0 세상의 중심은 바로 사용자다. 웹 2.0 환경에서 PC와 웹은 완벽하게 결합하면서 웹 환경 자체가 윈도우 OS와 같은 편의성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인터넷을 활용해왔는데 예를 들어 작업 중인 파일에 필요한 사실을 확인하거나 자료를 얻기 위해 수시로 웹을 드나들며, 중간 작업본을 USB 등에 저장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보내는 메일 식으로 웹 메일 환경 안에서 보관하고 그 최종 결과물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극대화시키는 웹 2.0은 사용자가 웹을 이용하는 건지 기존 윈도 OS상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들면서 개인의 컴퓨터 세계와 웹을 완전무결하게 결합시킨다.
웹 2.0 서비스를 둘러싼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구글, MS는 물론 네이버, 다음 등 국내 대형포털들도 잇달아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웹에서 시작된 2.0 바람은 이제 인터넷 공간을 넘어 사회적 소통과 상호작용의 제 영역에 그 영향을 확대시키고 있다. 소통의 관점에서 웹 2.0이란 모든 개체가 언제 어디서건 최적의 상태로 주체적으로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 기반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개체가 또 다른 개체, 조직 및 사회, 그리고 그 역방향으로 사회, 조직 및 개체가 쉼 없이 역동적으로 수직 및 수평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소통하는 일이 인간 역사 그 어느 때보다도 신장된다. 최소한 기술적으로는...
우리 사회는 인터넷 발전이 가져온 갈등의 테스트 베드
하지만 그와 함께 문제점도 심각해질 수 있다. 연결과 소통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비약적으로 신장되면서 사회적 소통 및 이를 통한 지식, 정보, 의견의 소통이 비이성적 또는 충동적 성향에 따라 왜곡되는 현상이 그것이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반사회적 정보, 허위, 과장, 왜곡정보, 유언비어, 괴담, 악플 등은 그 당연한 귀결이다.
멀리서 예를 찾을 것도 없이 우리 사회는 가히 인터넷의 발전이 초래하는 갈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전지구적 테스트 베드라 할 만한다. 지난 한 해만 돌아보더라도 촛불정국과 아고라, 블로그 뉴스, 촛불시위 생방송, 파워 블로거, 미네르바 등 개인 미디어 내지 1인 저널리즘의 본격화, 악성 댓글, 유언비어, 명예훼손, 최진실씨 자살, 그리고 그에 따른 모니터링 의무화, 포털 삼진아웃제, 제한적 본인 확인제 확대, 사이버모욕죄 도입 등 전면적인 인터넷 규제와 표현의 자유 논란이 우리 사회를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뜨겁게 달궜다.
인터넷 발전은 이상적인 시민공동체와 같은 방향
필자의 입장을 제시하자면, 이러한 과도기적 혼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터넷 공간상에서 이성적 힘에 근거한 관계의 형성과 소통의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 가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진전은 개인성과 공동체적 시민성을 겸비한 주체적 개인, 이른바 시민의 탄생과 이상적인 시민공동체로 나아가는 사회발전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이러한 변화는 그 핵심에 있어서 종래 개인을 둘러싼 제도적, 인습적 굴레가 깨어지고 개인 단위의 자기실현과 선택의 자유 등을 극대화하는 상황으로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탈이데올로기, 탈역사주의, 탈권위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실용주의, 유목적 생활방식, 정치 무관심, 감각적 자극의 추구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신세대의 가치관과 삶의 양식,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자유로운 의식을 지닌 보보스(Bourgeois Bohemian)의 부상 등이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현상이다.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사회 발전의 방향은 수직적 권위체계, 민족주의, 속지주의적 전통과 관습,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수평적 상호작용, 정체성, 그리고 관계망을 확장해 가려는 연대의 움직임이다.
인터넷 유저 다수, 자기 발전 모습 보여줘
종합적으로 모든 과도기적 적응과 부적응, 선도와 지체의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현시대가 지향해 가고 있는 발전의 방향은 가정,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개인성과 연결성의 동시적 신장이다. 이러한 추세들은 사회학자 카스텔(M. Castells)의 표현을 빌리자면 ‘네트워크화한 개인주의(networked individualism)’로 요약된다. 이는 근대철학자들이 말한 주체적 개인, 이른바 이상적 시민의 탄생과 동일한 개념으로, 전통적 집단의 성원이 근대화 과정에서 파편화된 개인으로 깨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체적 자유와 동시에 건강한 집단 정체성을 지닌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남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가 인터넷에서 발견하는 주체들의 다수는 과도기적 혼선과 일탈적 양상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큰 추세에 상응하는 자기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들은 과거 어떤 세대보다도 많은 채널을 향유하며,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듣고 읽으며 드러내고 토론하는 소통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집단의 굴레를 벗어나 사사로운 욕망을 분출하는 방향으로 일탈하는 모습이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사회적 연결성 또는 시민성이 성장하는 모습들도 도처에서 확인된다.
이전에 과도하게 위축되어 있던 개인적 소통 영역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난장과도 같은 무질서, 규범 파괴가 횡행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아젠다에 대한 시민참여형의 공공 토론이 활성화되는 모습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이 시대의 또 다른 본질이다. 아직은 충동적이고, 미숙하며, 참을성도 부족하고, 남의 의견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도 않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발언할 줄도 모르는 존재이지만, 이들은 소통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앞세우며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한 최초의 세대라는 의미에서 커뮤니케이션 네이티브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집단이다.
소수는 이기적 자아로 가득찬 도덕적 일탈자
하지만 사회에는 이러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처음부터 아예 가능성의 싹이 없는 소수도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들은 이기적 자아, 사악한 열등감, 반사회적 적개심으로 가득 찬 존재들이기에 존중돼야할 정치적 소수라기 보단 교화돼야할 도덕적 일탈자, 범죄자들의 모습에 가깝다. 이들은 익명의 장벽 뒤에 숨어 새롭게 확장된 연결과 소통의 공간을 신뢰와 책임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불신이 넘치고 무책임한 인격파괴의 공간으로 변질시킨다. 도덕적인 사회적 삶의 가능성이 극악한 범법자들로부터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현실세계의 각종 법 규제를 통해 가능하듯, 이들로부터 인터넷 공간의 가능성을 지키고 꽃피우기 위한 필요악으로 인터넷 소통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제기된다.
인터넷 실명제 강화나 사이버 모욕죄 도입은 이러한 맥락에서 그 도입논란을 이해할 수 있다. 인터넷 실명제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지금까지 이루어져온 많은 연구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메타 분석할 필요성이 있지만, 일단은 익명성과 모욕적인 말, 욕설, 적대적인 언어, 악성 댓글 등 이른바 인터넷 플레이밍(flaming) 사이의 인과관계는 불분명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인 것 같다. 사이버 모욕죄에 대해선 종래의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형법 제311조 모욕죄와 정보통신망법 제61조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처벌이 가능한데 이 같은 과잉 규제를 추가 도입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법학자들 사이에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인 듯싶다. 하지만 이와 같은 타당성 시비에 앞서, 이러한 규제 처방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는 사실 자체가 인터넷의 신뢰추락 및 무책임성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반증한다.
필자 역시 인터넷 실명제 확대나 사이버 모욕죄 도입이 불분명한 인과관계에 의해 이루어질 만큼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정치논리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보다 충분한 연구와 사회적 합의에 따른 정책적 접근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비단 언론학자나 법학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부작용이 따를 수 있는 권력 기관에 의한 타율적인 규제에 앞서 인터넷 글쓰기와 정보통신윤리 교육처럼 네티즌의 윤리성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노력, 악플러 고발시스템, 인터넷 블랙리스트와 같은 네티즌의 자율규제에 따른 자정작용을 선호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무책임한 인터넷 소통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이유
하지만 이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미디어적 특수성이란 논리 하에 무책임한 인터넷 소통에 대한 규제 자체를 인터넷 언론탄압과 동일시하며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하는 인식에 필자는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미디어와 언론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미디어나 언론 자체의 절대적인 독립이나 자유가 아니라 그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시민 사회적 가치, 이를 테면 민주주의나 인권이다.
인터넷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보호돼야 하는 것은 인터넷 소통을 통한 민주적, 인권적 가치의 실현이지, 인터넷이나 인터넷 소통 그 자체가 아니다. 민주적, 인권적 가치 자체를 침해하는 자유는 지켜져야 할 권리라기 보단 무책임한 방종이며 진정한 자유 수호를 지키기 위해 규제되어야 할 일탈이자 범죄다. 인터넷 악플자의 말할 자유가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연약한 영혼을 악랄한 인격 모독적 언사로부터 보호하는 사회적 책무 이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물론 어떠한 악플에도 상처입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무쇠 같은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이 논리가 적용되지 않겠지만) 필자는 알지 못한다.
웹 2.0 시대, 말할 자유는 소통을 통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여러 전제조건 중 하나이다. 이러한 조건들에는 공공 문제에 대한 관심,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된 식견 있는 시민(informed citizen), 평등, 이성, 합리성, 절제, 신중성, 사심 없는 자세(selflessness), 성찰적 평정, 소통 능력(communicative competence), 공개성, 상호 존중, 관용, 공동체의식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조건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언론탄압이라고 한다면 필자는 기꺼이 자유를 포기하고 탄압을 택할 것이다.(www.korea.kr)
윤석민(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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