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집권 1년 : ⑤ 대북]공갈협박에 굴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기조 옳았다
북의 공갈협박에도 흔들림 없는 정부대응 옳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김대중,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10년간 친북반미 좌파정권의 대북퍼주기 햇볕정책을 청산하고 실용과 상호주의로 전환하는 것이다.
친북․반미․퍼주기에서 실용과 상호주의를 기조로
친북좌파정권은 10년간 나라의 곡간을 헐어 김정일 정권에게 아낌없이 퍼줌으로써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이득을 안겨준 반면 우리에게는 안보위험부담만을 높였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新대북정책은 이런 고질적인 잘못된 대북정책을 교정해서 남북에 상호 이득을 가져다 주고 통일기반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바로잡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신대북정책을 구체적으로는 ‘상생공영’원칙 아래 ‘비핵․개방․3000’이라고 요약 설명하고 있다. 즉 북한이 핵개발 또는 핵무기를 폐기하고 개혁개방 한다면 북한동포들의 생활수준을 10년내 1인당 3천 달러까지 끌어올려 주겠다는 공약인 것이다.
‘비핵․개방․3000’은 엄격한 전제조건이라기 보다 남북이 보수정권 출범 후 상호 교류협력하면서 행동대행동으로 점진적으로 추진하자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新대북정책은 지난 10년간 오도된 정책으로 맹렬히 비판받아 왔던 햇볕정책을 리모델링해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키고 정치 군사적 신뢰를 쌓아올려 남북이 다함께 상생공영함으로써 통일기반을 조성하는데 목표를 두고있다.
북에 퍼준 8조 8천 여 억원 대부분이 핵․미사일 제조에
MB 정부의 신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이 총체적으로 완전히 실패했다는 평가와 전제위에서 수립된 것이다. 햇볕정책은 김대중(DJ) 前 대통령이 시작한 대북정책이다. 햇볕정책은 남북이 다함께 이득을 보는 정책이 아니라 북한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정책이었다. 남북교류협력 명분아래 지원된 8조 8천 여 억원의 천문학적인 대북지원금과 물자를 거의 다 핵무기 제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투입함으로써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등장하도록 도운 셈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보유를 허용한 햇볕정책은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실수이자 결정적인 결함을 드러낸 잘못된 것이다.
민간단체들의 각종 대북지원 물자와 현금도 상당부분 핵무기 제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투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지원된 쌀 등 각종 식량지원에 대한 감시와 모니터링을 금지 또는 제한함으로써 지원물품들을 군사적으로 전용해왔다. 이런 증거들이 국내외 정보와 언론보도로 드러났으며 탈북자들도 이런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김대중 前 정부의 소위 햇볕정책은 일시적인 긴장완화가 있었지만 한국과 한반도 전체를 위해서 완전히 실패한 정책임이 여러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확인됐다. 햇볕정책의 목표는 남북간 긴장완화와 정치 군사적 신뢰 회복을 통해 통일 기반을 조성하며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냄으로써 북한을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선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養虎遺患(양호유환)의 화만 초래했다. 북한이 8조 8천 여억원의 대북지원금으로 국제사회를 기만하면서 핵실험까지 했기 때문이다. 10년간의 무조건적 대북 퍼주기식 햇볕정책은 배은망덕의 철두철미한 배신으로 되돌아오고 만 것이다.
모든 국가정책이 햇볕정책 보조 수단화
거기다 좌파정부 10년간의 외교정책은 오직 이른바 ‘햇볕정책’을 뒷받침하는 보조적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았다. 한미동맹이 훼손되고 악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는 “남북관계만 잘되면 다른 것은 깽판쳐도 된다”(노무현 대통령 후보시절 발언)는 주장아래 모든 국가정책을 햇볕정책의 보조수단으로 치부했다. 그런 점에서 햇볕정책은 태생적으로 총체적 실패를 잉태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의 햇볕정책 폐기와 ‘비핵․개방․3000’으로 상징되는 ‘상생공영’과 상호주의와 실용주의로의 대전환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530만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햇볕정책으로 나라를 망친 친북반미 좌파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과 반대의 뜻이 담겨져 있으며 유권자들의 표심은 이명박 정부에게 햇볕정책을 폐기하라는 국민들의 위임명령(mandate)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식후 4강 외교를 위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순방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의 정당성과 ‘비핵․개방․3000’ ‘상생공영’ 실용적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설명, 공감을 얻었다. 2008년 4월 워싱턴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열렸던 부시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두 나라는 한미관계를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키로 합의했다. 이 대통령은 친북반미 좌파정권 10년간 훼손된 한미동맹관계를 원상 회복할 뿐 아니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했다. 전략동맹은 한반도에 국한된 군사적 동맹관계를 넘어 다양한 세계적 이슈에 공동대응하고 대응영역을 동북아는 물론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한미가 전략동맹으로 레벨업하게 된 것은 세계 13위의 경제력과 민주주의 성숙도 등 우리의 국가적 여건이 미국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는 공통의 인식이 작용했다. 한국이 명실상부하게 미국의 동등하면서도 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주․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오는 20일 출범한 버락 오바마 新행정부에게도 적합한 전략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비롯한 4강 외교 기조 다진 이명박 대통령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을 포함, 세계적 차원의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對테러 전쟁, 핵 확산방지, 미사일 방어체계 등에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협력하고 참여함을 의미한다. 논란을 빚어온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나 미사일 방어체계(MD)에 대한 참여, 對테러 전쟁과 국제평화유지군(PKO)에 대한 우리군의 참여․파병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인권, 빈곤문제에 대한 우리의 기여도도 역시 상향조정될 수밖에 없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두 나라 정상들은 북핵의 완전한 신고 및 폐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자면제협정 추진, 군사협력 등에 대해 합의했다. ‘주한미군 현수준 유지’합의도 이끌어 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으로 삼아 첫 해외 순방지로 미국을 선택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캠프 데이비드 초청으로 화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어서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을 차례로 순방, 新행정부의 선린외교관계 강화를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양국관계를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는데 합의했다. 양국이 경제, 외교, 안보, 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기후변화, 테러, 대량살상무기(WMD)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보조를 맞춰나가기로 한 것이다. 수교 16년째를 맞아 두 정상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에 공동 노력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2008년 9월 29일 이명박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관계를 ‘상호 보완적인 건설적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함으로써 美 日 中에 비해 소원했던 對러시아 관계를 강화하기도 했다. 이는 양국의 경제협력체제가 더욱 공고히 구축될 뿐 아니라, 북핵을 포함한 동북아 문제에서도 양국이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북, 저질 욕설 퍼부어도 점잖게 대응한 MB 정부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한해동안 미국, 일본, 중국 등 3국 정상회담을 빈번히 개최하는 동안 북핵과 북한문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서 상호 긴밀히 협의, 新대북정책에 대한 공감과 공조를 이끌어냄으로써 북한의 通美封南(통미봉남) 정책을 봉쇄하는데도 적극적인 노력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금강산․개성관광을 차단하고 개성공단을 반신불수로 만드는 등 온갖 대남협박을 자행했다. 또 북한은 2008년 봄부터 이 대통령에게 ‘역도’라고 저질스러운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불바다’ 또는 ‘잿더미’ 로 만들겠다는 등 극히 유치한 공갈협박을 해왔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지 않으면 대가(대남무력도발 등)를 치를 것이라고 윽박지르는 등 남한이 무조건 햇볕정책으로 되돌리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억지와 생떼를 부렸다.
소위 햇볕정책은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 남북간 교류협력의 활성화와 북한동포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는 명분인데도 결과는 정반대로 되고 말았다. 따라서 햇볕정책 10년 간은 오히려 김정일 정권으로 하여금 민족 공멸의 핵무기 제조 등 군사력 증강을 도우는 한편 주민들을 더욱더 굶주림과 집단 아사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혹독한 참상을 자초했을 뿐이다.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욕설을 퍼붓고 新대북정책을 헐뜯었지만 정부는 그들을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대응할 때도 온건하고 합리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2008년 5월 8일 제2의 6․25전쟁 발발 운운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군사논평원은 ‘이명박 역도의 군사적 대결 소동 진상 폭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군사적 긴장이 격화되면 충돌은 일어나게 되고, 그것은 다시 제3의 서해교전, 제2의 6․25전쟁으로 번지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新대북정책을 증오한 나머지 온갖 비방중상을 퍼부어도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해 왔다.
북한은 8일 남한에는 ‘제2의 6․25전쟁’ 협박하면서도 방북한 美국무부 관리에게 상당한 양의 핵 자료를 넘겨줬다. 이것은 명백한 ‘通美封南(통미봉남)’전술을 구체화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의 이런 야만적인 태도는 햇볕정책을 바꾸어 다시 ‘퍼주기 정책’으로 나갈 것을 바라는 떼쓰기에 다름 아니다. 북한의 이런 행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선전 선동함으로써 南南갈등을 격화시키고 反정부투쟁을 조장하려는 못된 행패가 아닐 수 없다.
촛불시위 확산되자 북의 비난수위 더욱 격화
북한 평양방송은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2008년 4월 24일 “이명박 역도가 미친소병 위험으로 미루어 오던 쇠고기를 아무런 제한 조건도 없이 수입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며 “이명박 정권은 사대매국정권”이라고 비난했다. 대남선전기구인 ‘반제민족민주전선’(반제민전․옛 한민전)도 이틀 뒤인 작년 4월 26일 논평에서 “각계 민중은 이명박의 친미사대, 외세의존, 매국배족, 반북대결 행위를 반대해 더욱 과감한 투쟁을 벌임으로써 이명박을 제때에 매장해야 할 것이다”라고 선전선동했다.
4월 27일에는 북한 통일전선부 소속 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이명박이야말로 남조선 인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팔아서라도 미국의 비위만 맞추면 된다고 여기는 철저한 친미매국노”라며 “이명박의 존재는 더는 용납되지 말아야 한다”고 중상 비방했다. 당시 4월 29일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 방영 직후 ‘촛불문화제’가 개최되는 등 광우병 위험 논란이 갈수록 확대되자 북한의 비난 수위는 더욱 격화되어갔다. 그런가 하면 중앙방송은 5월 5일 “역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굴욕과 치욕을 면할 수 없고, 자주통일의 염원도 실현 할 수 없기에 남조선 인민들은 반역도당을 반대하는 투쟁에 떨쳐나서고 있다”고 반정부 투쟁을 거듭 선전 선동했다. 이런 중상비방에 대해서 정부는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하면서 이런 비방이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반응만을 나타냈을 뿐이다.
북한의 2009년 새해 공동사설은 강경한 대남정책과 유연한 대미정책을 예고했다. 신년공동사설은 “파쑈 독재시대를 되살리며”, “민족을 등진 정상배”라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남조선 인민들은 사대 매국적인 보수당국의 파쑈 통치를 쓸어버리며”라고 反정부 투쟁을 선동했다. 공동사설이 남한 정부를 이처럼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강경한 대남정책과 유연한 대미정책 강조한 신년 공동사설
신년공동사설은 남북관계와 관련 “6․15 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 선언은 조국통일의 푯대”라며 “우리는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들에서 탈선하는 그 어떤 요소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햇볕정책으로 되돌리려고 갖은 생떼를 부렸다. 두 선언의 이행 없이 북한이 먼저 굽히고 들어오는 방식의 남북관계 복원은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신년사설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의 대외정책의 정당성은 날이 갈수록 힘있게 과시되고 있다”면서 오바마 新행정부에 대한 對美 협상의지를 나타냈다. 그동안 빈번하게 언급했던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빠진 점도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협상신호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지난날 비방중상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13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첫 반응을 나타냈으며 그것은 온건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도 지난 10년간의 기존 틀이 새로이 정립되는 조정기간을 거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 있었던 북한의 도발적인 언동들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그러한 관점에서 원칙을 갖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점잖게 응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조정기간’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현시점이 대북관계 재설정을 위한 과도기임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 태도를 ‘도발적인 언동’으로 규정한 것은 과거 좌파정권 때처럼 절대 북한에 끌려 다니면서 굴종적인 대북자세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뜻을 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년 4월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정부는 6자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그것이 북한에 이로운 길이라는 것을 믿도록 설득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북한 주민의 생활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혀 인도주의적 협력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가질 것임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은 “북한도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나서는 한편,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통령은 그 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핵 문제 해결과 북한 주민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정부는 언제든지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면서 “문은 열려 있다”고 되풀이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북한의 通美封南(통미봉남) 정책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북한이 남쪽을 봉쇄하고 미국과 바로 통하겠다는 전략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나 그것은 성공할 수 없다”며 “새 정부는 미국과 전통적 동맹관계일 뿐 아니라 대북 핵문제 전략에서도 함께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동맹을 과거 수준으로 원상회복함으로써 대북관계에서 어디까지나 주도권을 갖겠다는 굳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북정책 기조는 옳았으나 몇 가지 실수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新대북정책 기조는 옳았으나 이를 실천해나가는데 있어서 몇 가지 실수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한 늑장보고와 미적지근한 대응이었다. 작년 7월 금강산 관광에 나선 가정주부가 북한 초병의 총격으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옴으로써 유가족들뿐 아니라 전 국민의 슬픔과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북한은 지금까지 매번 대남무력도발 등 각종 사건 때마다 한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모두 남쪽 탓으로 돌렸다. 북한 명승지 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은 작년 7월 12일 오후 이번에도 사고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면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까지 요구했다. 상투적 적반하장의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북측의 관광객 총격 동기는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 길들이려는 일련의 대남 긴장과 공포 분위기 조성과정(3월 27일 개성공단 남북경협관계자들 추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흥분하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의연하게 대응한 것은 옳았다.
하지만 금강산관광객 총격살해 사건 과정에서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총격사망에서 대통령 보고까지 무려 8시간 30분이나 걸렸다니 순간 전달 인터넷 시대에 말이 되는가. 더구나 정정길 대통령실장(11일 오전 11시 50분)으로부터 대통령 보고까지 1시간 40분이나 늑장을 부렸다니 충격적인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부가 안보에 얼마나 태무심한지 당시 총격 사망사건 보고 과정에서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던 것이다. 어이없는 안보 무감각․무력증에 국민은 그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시대에 총격사건 최고위층까지의 보고에 8시간 반 걸린 시스템 결함
이런 허무한 위기관리 실패는 이 정부가 노무현 정권 시절 70명이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G) 기능을 위기 정보상황실(15명)로 대폭 축소 개편한 데 이어 비상계획위원회마저 행정안전부로 축소 이관할 때부터 이미 잉태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위기상황정보실을 대통령 직속인 NSC처럼 직보 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같은 위기 때 혼란이 더욱 두드러진 것이다.
정부가 유엔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확고한 입장을 취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좌파정권에 비해 잘한 일이었다. 작년 11월 21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인권위원회)는 압도적인 표차(찬성 95, 반대 24)로 대북 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은 오랫동안 정치범수용소와 강제노역, 공개처형, 고문, 인신매매, 외국인 납치 등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유린을 저질러 왔다. 올해로 4번째인 결의안은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해 남북대화가 중요하며, 인권침해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인권특별보좌관의 활동에 대한 협조,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 개선을 위한 국제노동기구(ILO)와의 협력을 비롯, 인도적 국제기구의 자유로운 접근 허용 등을 북한 정부에 촉구했다.
정부가 이 결의안에 과거 좌파정권과는 달리 찬성했을 뿐 아니라, 결의안 제출에 적극적으로 참여 공동제안국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 또는 기권하다가 2006년 국제사회와 국내 보수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못 이겨 마지못해 찬성표를 던진 데 비하면 북한 인권개선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긍정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시하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존중한다는 대원칙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정부의 이런 북한인권에 대한 입장은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살포를 적극 금지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작년도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전단살포행위에 대해서 강력히 항의했다. 전단살포가 그만큼 북한동포들에게 대내외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김정일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고 이를 극력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살포는 자유민주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사항으로서 정부가 왈가왈부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불참 또는 기권하던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 찬성한 건 MB의 확고한 입장
더구나 전단살포 내용에는 1달러 짜리와 식량과 김정일의 호화사치생활과 주민들의 집단 굶주림, 억압통치, 그리고 남한동포들의 부유한 생활정보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은 펄펄 뛰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에 굽히지 않고 정도를 걸어왔다. 즉 민간인들의 대북 전단살포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이런 대북자세는 올바른 대응으로서 의연하고도 일관성 있는 대북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대북식량지원에 대해서도 과거처럼 우리가 먼저 주겠다고 나서는 등 굴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에서 집단 굶주림의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도 식량지원을 제의했으나 북한측이 응하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추근대지 않은 것도 초지일관, 대북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북한은 햇볕정책의 되돌림을 위해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관광 차단에 이어 개성공단의 남북경협소 폐쇄와 인원축소 등 온갖 대남행패를 부렸지만 정부가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대응했다는 것도 평가할 만하다. 북한은 작년 하반기에 일련의 남북 교류협력사업 축소 조치에 이어 마침내 작년 ‘12․1조치’로 개성공단 사업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관계인원을 대폭 축소하는가 하면 남북도로와 철도운행을 차단하는 등의 고압적인 대남압박을 가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결코 이에 굴하지 않고 잘 대응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계속된 고강도 대남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대북지원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자 더 이상 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사로 개성공단 사무소 폐쇄를 단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新대북정책은 작년 말 통일부 신년업무 보고에서도 변함없이 그대로 나타났다. 통일부의 업무보고는 현재의 남북관계를 ‘조정기’로 규정하고 2009년 안에 ‘새로운 남북관계로의 전환’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이를 위해 주요 계기를 통해 남북대화를 제의함은 물론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북한에 우리의 대화 의지를 전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보고했다. 현재의 新대북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되 대화의 문은 계속 활짝 열어놓겠다는 뜻도 담고 있다.
북의 공갈협박에도 흔들림 없는 정부대응 만점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남쪽 당국의 선도적 노력을 강조한 것이다. 이미 통로가 끊긴 통일부 차원의 당국간 채널을 넘어 국가정보원과 민간의 막후 채널, 중국과 미국의 대북 창구 등까지 두루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는 못했다. 김하중 장관은 대북 특사 파견에 대해서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확약 등 대북 기조 전환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과거의 모든 남북합의사항을 테이블위헤 놓고 협의하자는 선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도 토의할 수 있다는 정도 언급되어 있다.
통일부는 남북관계가 재개되면 추진할 남북 경협사업으로 10․4선언에 포함된 철도 및 고속도로 개보수,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제시했다 두 사업은 2008년 3월 업무보고에선 빠졌던 것들이다. 10․4선언 이행 확약 없이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일부 사업을 끼워넣어 북한의 ‘실용적’ 호응을 끌어내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일부의 대북 기조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관계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보고를 받던 이날도 “남북관계를 어설프게 시작해 돌이키기 힘들게 만드는 것보다는, 어렵지만 제대로 시작해 튼튼한 남북관계를 쌓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녹색성정을 위한 산림협력 ▲시베리아 가스관(PNG)의 북한 통과 사업 추진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 추진 등도 제시했다. 북한이 과거 잘못된 대남행태를 버리지 않으면 우리의 대북정책 전환과 변화는 없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대로 대북정책을 추진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
2009년 己丑(기축) 새해가 밝았지만 이명박 정부의 新대북정책에는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함을 읽을 수 있다. 남북관계를 제로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신행정부 출범과 함께 올해를 남북관계의 원년으로 삼아 어떤 난관이 있어도 한미공조아래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고 그들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남북이 상생공영하는 정책을 기필코 달성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한반도 전문가 장롄구이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최근 1월 6일자 둥팡자오바오(東方早報) 신문 기고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조정은 남북관계 흐름에서 필연적 결과”라고 긍정 평가했다. 그는 10년간 전임 대통령들의 햇볕정책은 남북간 긴장 국면을 완화시켰지만 남북관계 본질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은 남북간 균형을 잃었고, ‘평등과 상호 이익’이라는 건전한 상태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지속 불가능한 것이었다며 교정의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특히 햇볕정책의 대부인 김대중 前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이 정부가 남북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탄 내려 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책임을 이 대통령에게 전가했고,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주장을 폈다. 여전히 햇볕정책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남남갈등을 증폭시키고 김정일만을 두둔하는 망국적 옹고집이 아닌가 한다. 국내에서 햇볕정책을 되살리기 위해서 현재의 남북관계 경색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돌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적을 이롭게 할 뿐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풍성풍성한 대북 퍼주기가 북핵 개발로 돌아와 우리에게 중대한 안보위협을 자초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안보위협의 원인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김대중 前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한국논단2월호>
여영무(남북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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