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할 곳엔 없는 ‘알리바이 국회’
정략에 사로잡혀 깨어나지 못하는 국회를 결국 성난 민심이 깨워야 하나, 잠자는 국회가 계속될 때 민심이 쓰나미처럼 덮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2월 국회가 잠자고 있다. 한창 일해야 할 국회가 주술에 걸린 듯 잠만 자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신성한 민의의 전당에서 폭력이 벌어지면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궁여지책으로 2월 국회에서는 협의와 합의정신으로 성실하게 국회를 운영하겠다고 여야는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2월이 되자 그 약속은 없었던 것처럼 돼가고 있다. 애당초 지킬 마음도, 의지도 없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약속을 왜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월 국회를 허송세월하고 3월 국회를 열자고 할 것인가.
원래부터 제18대 국회는 깨어 있기보다는 잠자는 국회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지각 개원을 하더니, 지금까지 111일이나 노는 국회가 된 것이다. 정말 국민에 대한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는 국회다. 게다가 속물 근성까지 보이니 말해 무엇하랴. 바깥의 상황이 얼마나 처절한지 모르는 모양이다. 지금 길거리에는 고통과 한숨소리가 진동하고 있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와 식당들이 부지기수이며 대졸 '알바생’까지 넘쳐난다. 그 전에 '알바생’이라면 으레 대학 재학생의 몫으로만 알았는데,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대졸자들이 알바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회가 손발을 걷어붙이고 나서도 시원치 않을 판국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통해 통과시킬 법은 통과시키고 합의가 안되면 안되는 대로 다수결로 하든, 아니면 수정안을 내든 대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법안에 관한 심의와 토론은 아예 거부하고 세비의 몇 %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 등 돈키호테식 대안만 내놓으니, 장화 위를 긁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정치가 절박한 민생을 외면하면 '알리바이 정치’의 전형이 된다. 국회가 있어야 할 곳에 없다면 '알리바이 국회’인 것이다. 범죄 혐의자에게 있어 알리바이는 희소식이지만, 국민 곁에 항상 있어야 할 국회에 알리바이가 있다면 치욕적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여야는 자기 정당화를 할 만큼 강심장이다. 여당으로서는 야당이 심의에 응하지 않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입장이고, 야당은 쟁점 법안이 악법이기 때문에 표결은 물론 심의에도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는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국회에서 여야의 상호작용은 중요하나, 국민을 위한 입법부라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수많은 민생 법안이 쌓여 있는데 쟁점 법안이라고 외면만 한다면 도대체 국회는 언제 일하겠다는 것인가. 과거 민주당이 다수당일 때 모든 걸 국회에 들어와 논의하자고 당시의 한나라당을 설득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 소수당이 됐으니 그 입장이 변했단 말인가.
이처럼 감탄고토(甘呑苦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어떻게 책임있는 다수당이 되기를 꿈꿀 수 있단 말인가. 야당은 소수당의 콤플렉스를 벗어나고 여당은 다수당으로서의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입법부의 업무는 등한히하면서 동료 의원은 살리겠다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국회 속물 근성의 심연을 보는 듯하다. 많은 국민이 국회의 직무유기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동료 의원 봐주기에 발벗고 나섰으니 한심하다.
국회는 잠만 자면서 그 잠을 누가 깨워주기를 기다리는가. 그동안 언론이나 여론도 그 잠을 깨우려했지만 허사였다. 일찍이 잠자는 미녀를 깨우기 위해서 용감한 왕자의 키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주술도 아닌 정략에 사로잡혀 깨어나지 못하는 국회는 결국 성난 민심이 깨울 수밖에 없다. 잠자는 국회가 계속될 때 성난 민심이 쓰나미처럼 덮칠 수도 있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http://www.cfe.org)
박효종(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자유기업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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