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아침에 새겨본다!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
손에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거리를 내달리며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불렀다. 한사람이 모이던 시장터에서, 읍내 역전 광장에서, 그리고 인본인 경찰주재소 앞에서 태극행렬은 더욱 늘어나며 노도의 물결처럼 태극기와 만세함성은 더 크게 휘날리고 울려 퍼졌다.
일본제국주의 만행 앞에 나라를 빼앗긴 힘없는 백성으로서의 설움을 곱씹으며 숨죽인 채 살아야했던 당시 이 땅의 민초(民草)들. 그러나 그들은 1919년 3월1일 이후 이 땅의 주역들이었다. 거기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었다. 동경유학을 했던 엘리트 지식인에서, 가난과 아직은 배움의 굴레에서 채 깨어나지 못해 남루한 옷차림에 땟국이 줄줄 흐르는 동네 조무래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거침이 없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서슬 시퍼런 무시무시한 일본 헌병의 손아귀가 방아쇠를 한번 당기면 대검이 꽂힌 장총에서는 진한 화약 냄새와 흰 연기가 스멀대고, 일본도가 한번 치켜 올렸다 내려지면 누군가 가 힘없이 쓰러져 갔다. 그러나 만세함성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일본도에 오른손이 잘리면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그 왼손마저 잘리면 넘어진 자세 그대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 들 앞에는 일본 순사의 독기서린 악마의 형상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의 염원이 있을 뿐이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물결이자 함성이었다.
1919년 3월1일 정오,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을 선언한 이후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는 만세함성으로 뒤덮였다. 남녀노소에서 계급과 신분,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민족의 대서사시, 하나의 대하드라마였다.
그것은 자생적인 운동이었다. 어떤 강권이나 부추김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왜 였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자유에의 갈망이었고, 잃어버린 역사 빼앗긴 내 조국을 되찾아 이민족(吏民族)으로부터의 폭압과 멸시 강권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인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였는지도 모른다.
3·1만세운동에는 전국적으로 202만3089명이 참가했고, 사망자 7,509명, 부상자는 1만 5,961명, 그리고 검거자는 4만6,948명에 이르렀다(독립운동가 박은식<1859∼1925>선생 자료).
일본순사가 들이댄 작두에 목을 내밀어야 했고, 대검이 심장을 꿰뚫었다. 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데 몰아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만행을 자아냈다. 많은 군중을 모아놓고 보는 앞에서 독립지사의 목을 쳤다. 다시 그 목을 새끼줄에 줄줄이 꿰어 장대위에 매달아 전시를 해놓아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꺾고자 했다.
그럼에도 독립을 위한 우리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3·1만세함성이 펼쳐진 그해 9월 2일 연세 60이 넘은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는 서울 남대문 정거장(지금의 서울역)에서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수류탄을 던져 비록 총독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정무총감·만철(滿鐵)이사·일본경찰 등 37명을 사상시키고 자신은 이듬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강 의사는 사형대에서도 “내가 죽어 청년들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조선 청년의 외침이 듣고 싶다”는 의미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로부터 2009년 3월1일. 오늘로 3·1운동 90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선열들의 불꽃같은 투혼과 미래를 내다본 열혈투쟁의 정신이 있었기에 세계가 우리를 주시했고, 그 영향력은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연결될 수 있었으니 3·1운동의 위대한 비폭력, 자유 평화정신이야말로 조국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이 되는 건국정신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떤가? 건국 60년이 이른 지금, 북한 김정일 집단은 핵무기로 무장한채 미사일을 개발하고 다시 발사위협으로 우리는 물론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난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 못지않게 우리사회의 남남갈등, 보혁 갈등도 그에 못지않다.
건강한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서로 발전적 측면의 논쟁으로 변화를 가속화 해 나갈 수 있지만 代를 이어 엄혹한 독재를 펼치고 있는 희대의 독재자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려는 철없는 얼치기 좌파들은 진보가 아니다. '민족'과 '자주통일' 외세배격'과 '우리끼리'를 부르짓지만 그들의목표는 오직 하나다. 김일성․김정일 식 통일방안 찬양자들로 오늘 이 시대 우리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가로 막는 존재들일 뿐이다.
이제는 뒷걸음질이나 우왕좌왕하는 망설임, 지체나 정체도 있어서도 안 된다. 모두가 하나 되어 난국을 타개하고 극복하기 위해 팔을 거둬 부쳐야 할 시기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입으로는 “국민을 위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라는 허울 좋은 아부와 사탕발림으로 ‘국민’이란 이름으로 미혹하면서 대화나 타협, 상생공영보다는 당리당략에 골몰하며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 없이 국가의 장래나 민족의 염원을 비웃음치고 있다.
이래서야 어찌 이 3·1절 아침, 독립선열들 앞에서 떳떳하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발전이나 국가의 미래는 입으로 외쳐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외침 또한 무엇을 어떻게 할 때 진정으로 나라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인가를 숙고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이 뽑아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일꾼들은 국민의 눈과 입, 손과 발이 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그저 표나 뽑고 마는 그대들의 봉이 아니기 때문이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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