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위기상황과 쿠바 미사일 위기의 교훈
지도자가 위기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는 올바른 ‘사고의 프레임’을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
치킨게임과 지도자의 임무
한반도가 또 다시 매우 우려스러운 위기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타고 있는 남북 간, 북미 간 충돌의 국면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학자들은 이러한 충돌 양상을 게임이론에서 말하는‘치킨게임’에 비유하곤 한다. 치킨게임은 원래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의 이름이었다. 그 무렵 미국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남성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이 게임을 하곤 하였다. 게임의 방법은 두 명의 게임 참여자가 시 외곽의 도로에서 만난 후 각자 서로 상대방 쪽으로 자신의 차를 몰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겁을 먹고 핸들을 꺾어 도로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경기에서 지는 것이고, 끝까지 핸들을 꺾지 않고 돌진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둘 다‘치킨’(겁쟁이)이 되지 않으려고 끝까지 핸들을 꺾지 않아 큰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많았다.
미국 청소년들의 이런 치킨게임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었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국제정치에 있어서의 치킨게임은 그 원인이 50년대 미국 청소년들의 게임처럼 단순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원하지 않는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어리석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협상이론에서는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의 하나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차가 계속 돌진할 것이라는 신빙성 있는 공약을 제시하는 것”을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핸들을 뽑아서 던져 없애거나 핸들을 틀 수 없는 장치를 한 후 상대방에게 알린다는 것이다. 2009년 2월 16일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국회 답변 중 북측의 국지적 도발 가능성과 관련하여“즉각 대응이 가능하도록 현장 지휘관에게 작전권을 대폭 위임했다”고 밝힌 것이 그러한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의 구사는 위험한 게임을 더욱 위험천만의 게임으로 만들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치킨게임 적인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정면충돌을 막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핸들을 놓지 않는 것이 더욱 현명한 태도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치킨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을 찾는 것보다 치킨게임 같은 공멸(共滅)의 게임에서 벗어나 대화와 협상을 통한 상생(相生)의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고 있는 긴장과 갈등의 한복판에서 방향을 틀어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이야말로 한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지도자의 가장 중대한 임무라 할 것이다.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지혜의 보물
그러한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지도자들은 먼저 역사 속에서 지혜의 보물을 캐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역사 속의 무수한 선례들은 때로는‘정면교사' 때로는‘반면교사’의 역할을 함으로써 후대 지도자들의 어리석은 결정을 막고 현명한 결정을 하도록 돕는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은 이른바‘집단사고(groupthink: 응집력이 높은 소규모 의사결정 집단에서 대안의 분석 및 이의 제기를 억제하고 합의를 쉽게 이루려고 하는 심리적 경향)’에 의한 잘못된 결정의 예라 할 수 있는데, 부시 대통령의 이런 오류도 역사 속에서 정면교사와 반면교사의 가르침을 얻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데 기인했다 할 것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쿠바 미사일 위기’사태에 대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 보좌진들의 사려 깊고 현명한 의사결정과정을‘정면교사’로 삼았다면 그러한 비극적 오류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 중인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도, 남북한과 미일 등 관련국 지도자들은 ‘쿠바 미사일 위기’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협상에 의한 해결을 통해 오히려 핵 군축과 데탕트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었는지를 되돌아보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케네디 대통령의 치적에 대하여는 다소 평가가 엇갈리지만,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것만큼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쿠바 미사일 위기의 간단한 경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2년 10월 14일, 미국 정찰기는 소련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이 쿠바에 배치중인 것을 공중촬영으로 확인하였다. 10월 16일, 그 사진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제시되었고 그 이후 6일 동안 케네디에 의해 소집된 비상대책위원회(ExComm)는 거듭된 회의를 통해 대응방안을 활발하게 토론하였다. 10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TV를 통하여 미국국민을 향해 처음으로“소련은 서반구에 대하여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공표하고, 쿠바에 대하여 해상봉쇄조치를 취할 것을 선언하였다. 해상봉쇄는 10월 24일 발효되었다.
그 후 미소간에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11월 8일부터 소련 미사일의 철수가 시작되어 수일 내에 완료되었으며, 11월 21일에 소련은 쿠바로부터 핵탄두를 나를 수 있는 모든 폭격기를 철거하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따라 11월 22일, 미국은 해상봉쇄를 풀었고, 12월 7일, 소련은 폭격기 등을 쿠바로부터 철거하였음을 미국에 통보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63년 미소 간 핫라인이 개설되었고, 핵전쟁 회피라는 공통의 과제 하에서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모스크바조약)’이 체결되었다.
교훈 하나, “우선순위를 올바르게 정하기”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케네디의 대응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은 “가장 중요한 것을 첫 번째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putting first things first)”이다. 위기상황에서 당사자들이 공멸의 어리석은 치킨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감정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다. 적대적 대립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문제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하여 단호하게 응징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러한 생각이 문제에 대한 폭넓은 시각이나 장기적 안목의 결여,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 등과 결부될 때, 근시안적인 조급한 해결방안에 고착될 가능성이 많다.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감정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현재의 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을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분명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 케네디 대통령이 목표로 삼은 것은 “소련을 자극하여 핵전쟁을 야기하지 않으면서도 쿠바로부터 소련 미사일을 철수시키는 것 (혹은 제거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목표로 보일지 모르나 이러한 이성적 목표 설정이 가지는 위력은 대단하다. 만약 목표를 “쿠바에서 소련 미사일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에만 두었다면 인류의 운명이 걸린 핵전쟁의 방지에 충분한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석상에서는 소련으로부터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끌어들인 카스트로의 제거와 그 체제의 전복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보다 강경한 주장도 있었지만, 그러한 주장은 일종의 ‘초점 흐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회의 초반에 명료하게 거절되었고 이후에는 다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의‘북한 미사일 위기’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도 최대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막으면서도 남북 간, 북미 간 혹은 6자 간 대화채널을 복원하고 무력충돌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한 전략적 목표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 지도자들도‘전쟁’이라는 파국적 결과를 피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설정하여야 할 것이다.
교훈 둘,“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易地思之)”
무력충돌의 방지를 중요한 전략적 목표의 하나로 삼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지를 깊이 고려하는 자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위기상황에 임하여, 현명한 지도자들은 결국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소통의 부재와 불신의 심화 속에 지금은 서로 적대관계로 치닫고 있지만, 서로가 절실히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협력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상호의존관계’에 있다는 것을‘내키지 않더라도’받아들이는 것이다. 처음에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하였던 부시 대통령이 나중에는 결국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성을 띠게 된 것도 그러한 인식 전환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협상의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상대방이 내세우는 주장이나 입장의 이면에 있는, 실제로 상대방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것을 내가 절실히 원하는 것과 적절히 결합한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직면한 케네디 대통령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케네디의 뜻에 따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의 주된 주제의 하나는“소련의 흐루시초프가 실제로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두어졌다. 그리고 케네디는 기회 있을 때마다“나는 흐루시초프를 코너로 몰아붙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케네디의 이러한 태도는 그로부터 16개월 전에 비엔나회의에서 흐루시초프가 케네디를 대하였던 매우 위협적이고 거친 태도를 감안할 때 대단히 성숙하고 통찰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흐루시초프가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립한 것은 당시 소련과 미국을 비교할 때 이른바 ‘미사일 격차(missile gap)’로 인한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객관화된 데 따르는 위협인식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또한 미국이 터키와 이탈리아에 주피터 미사일, 영국에 토르미사일을 각 배치해 둔 것도 한 몫 하였다. 이러한 미사일 배치 결정은 서유럽을 겨냥한 소련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들의 배치에 대한 대응으로 NATO의 요청에 따라 아이젠하워 정부가 결정한 것이었다.
케네디는 이러한 미사일 배치에 대하여“불필요하고, 공연히 소련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문제가 된 터키 미사일의 철수를 검토하도록 한 바도 있었다. 다만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가 벌어진 상황에서 철수를 하는 것은 ‘소련의 위협에 따른 것’으로 비쳐져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케네디는‘터키 미사일의 철수와 쿠바 미사일의 철수를 교환하는 것’이 전쟁보다는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UN을 중재자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기지에 대하여 이른바‘정밀타격’과 같은 직접적 군사조치로 바로 나아가지 않고 일단‘해상봉쇄’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 자체가 흐루시초프와의 협상 노력을 병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끝났을 때 세상에 알려진 것은“소련은 26일에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하였고, 27일에는 쿠바의 소련 미사일기지와 터키의 미국 미사일기지의 상호철수를 제안하였는데, 미국은 그 중 27일의 제안을 무시하고 26일의 제안을 수락할 것을 결정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케네디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터키와 쿠바 미사일의 상호철수 협상안을 비밀리에 받아들였고, 다만 그것을 일부 핵심참모들에게만 알리고 소련에도 그 협상내용에 대한 비밀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는 것이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의 참모진 증언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녹음자료 등에 의하여 드러난 사실이다.
만약 미국 미사일의 터키 배치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미국의 국가이익이라고 한다면 위와 같은 협상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어느 나라의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그리 높지 않은데 상대국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높은 우선순위로 매겨지는 것이 있다는 것, 바로 그 차이의 존재가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갈등과 분쟁에 있어서, 상대방의 겉으로 드러난 입장은 나의 입장과 양립 불가능하지만, 상대방이 내면적으로 절실히 원하는 것은 내가 절실히 원하는 것과 충돌하지 않아 그 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교훈이다. 어떻게 보면‘전쟁위험의 방지’와 같은 공동의 이익이 더욱 중요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해소하기 위하여도 양측 지도자들이 통합적 협상(integrative negotiation)을 통한 문제해결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먼저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자신의 원하는 바를 쉽게 양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성 있게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연성 협상(soft negotiation)과는 다르다. 또한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협상 가능 영역을 보다 창의적인 자세로 모색한다는 점에서 아무 융통성 없이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워 협상을 통한 해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성 협상(hard negotiation)과도 다른 것이다.
교훈 셋, “상대방의 합리성에 너무 의존하지 말기”
쿠바 미사일 위기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세 번째 교훈은 상대방의 합리적 판단력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 국방부장관으로서 비상대책위원회의 핵심인물 중의 하나였던 로버트 맥나마라 전 장관이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2003년, 에롤 모리스 감독)라는 다큐멘터리에서 강조한 교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장시간의 인터뷰에서 첫 번째로“적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을 강조한 다음 두 번째로“합리성은 우리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군부 지도자들 가운데는 미사일기지에 대한 정밀타격을 즉시 개시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것만으로는 90% 이상의 성공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육상 침공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게 하여도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케네디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정을 다룬 바바라 터크먼(Barbara Tuchman)의 <8월의 포성(The Guns of August)>이라는 책을 읽고, 정면대결은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되어도 걷잡을 수 없는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결국‘합리적인’당사국 지도자들의 통제력을 벗어난 전면적 충돌로 확대되기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규모 핵전쟁은 합리적, 이성적인 차원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인 것 같아 보이지만, 작은 무력 충돌에서 시작하여 상황이 급격하게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전개될 경우에 이성적 통제를 벗어나 발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올바른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케네디 자신의 합리성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케네디의 이러한 인식이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 옵션 중 가장 온건한 방법을 취하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미국이 쿠바 미사일 기지에 정밀타격을 감행할 경우 소련의 대응방법은 무엇일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검토하였다. 당시 논의를 통해 소련이 1차적으로 터키의 미군 미사일 기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판단이 제시되었다. 물론 그것은 다시 또 다른 상승작용을 야기할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 케네디의 위와 같은 조심스러운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여러 증언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실제로 쿠바에는 당시 이미 약 100개의 소련 핵탄두가 있었고, 쿠바에 파견된 소련 장군은 모스크바와의 접촉이 불발될 경우 그 핵탄두 미사일을 발사할 재량권을 부여받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인류사에 크나큰 비극을 초래할 핵전쟁의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 교훈을 한반도의 상황에 적용해 보자. 북한이 취하는 이른바 ‘벼랑끝 전술’은 겉보기에는 위험하고 비이성적인 행동 같아 보여도, 북한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오는 협상전술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그러한 면이 많을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미국 등과의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결론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 전술이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상대측의 온건파를 잠재우고 강경파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으로, 이러한 벼랑끝 전술에 대하여 강경한 대응만 하는 것 또한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을뿐더러 상황을 매우 위태롭게 몰고 갈 가능성이 많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이유로 상대방이 전쟁보다 협상을 선택하는 것이‘합리적’이지만, 그 합리성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충돌의 상승작용을 통해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파국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한반도에서의 이러한 파국적인 결과를 막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의 하나로서, 한편으로는 안보태세를 철저히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적절치 않은 지나친 대응으로 충돌의 상승작용을 불러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북한이 협상의 장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강구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교훈 넷,“유동적인 상황 속에서 끝까지 냉정을 유지하기”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케네디의 대응에서 엿볼 수 있는 네 번째의 중요한 교훈은 위기 상황의 유동적인 전개 속에서도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는 지도자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막을 내리기 전까지 몇 가지 위험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중 특히 중요한 것은 케네디의 명에 따라 계속 쿠바 미사일 기지를 정찰하던 루돌프 앤더슨 소령의 U-2 정찰기가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에 의하여 격추되어 앤더슨 소령이 사망하게 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쿠바 공습론자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고, 그들은 흐루시초프가 직접 격추를 명령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은 몇 년 뒤에야, 한 소련군 장교가 자신의 판단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때 케네디는 공습론자들의 주장을 거절하면서“내가 염려하는 것은 첫 번째 단계가 아니다. 양쪽이 네 번째, 다섯 번째 단계로 상승해 가는 것이다. 아마도 더 이상 그렇게 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아 여섯 번째 단계로는 상승해 가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케네디는 또한 해상봉쇄 과정에서 자칫 소련 선박과 사이에 충돌의 연쇄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치밀하고 세심하게 지휘하였다. 치킨게임에 비유하자면, 자동차의 핸들을 뽑기보다는 끝까지 핸들을 세밀하게 조정해 나간 것이다.
남북한 지도자들도 이러한 케네디의 냉철함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이상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와 그에 대한 케네디 대통령의 대응방안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네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이 외에도 찾을 수 있는 교훈이 더 있을 수 있다. 케네디의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대응은 집단사고에의 함몰을 극복하기 위한 열린 토론의 장려 등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도 매우 모범적인 사례라는 점, 그를 통해 해결방법의 윤리적 측면이나 국제적인 승인의 중요성에 대한 고려도 충분히 담보하였다는 점, 협상에 있어서 상대방의 퇴로를 열어 두었다는 점등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케네디 자신은 후대의 사람들이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자신의 대응으로부터 잘못된 교훈을 취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걱정하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해상봉쇄로부터 시작하는 점진적 압박의 수단을 상황이 다른 곳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점을 감안하여 해결방법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위기의 해결을 모색하고 위기관리의 리더십을 발휘함에 있어서 사용된 근본적 사고 프레임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지도자가 위기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충분하게 얻는 것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한 올바른 ‘사고의 프레임’을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 전제임을 밝히면서 글을 맺는다.(konas)
이해완(한반도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성균관대 교수)
- 관련기사보기
-
미국은 이스라엘 의 핵을 인정하면서 이제는 북한 핵까지 인정 하는단계에 접어들었다. 왜 우리 한국은 핵을 가지면 안되는가?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우리도 핵을 가지자 핵에는 핵으로 맞대응 함으로서 힘의 균형을 유지 할수 있다는것은 이미 상식화되어왔다.우리도 핵보유국가로 나가자!!!!!!!!!!!!!!!!!!!!!!!!!!!!!!</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
2009-03-22 오후 8:27: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