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과시정치와 국제정치
북한이 쏘아 올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는‘광명성2호-은하2호’는 위성발사체인가, 미사일인가? 이 분야 전문가들은 위성발사체 기술과 로켓 기술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차피 미사일이 수천 킬로미터 이상을 날아 지구 저편의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성궤도와 유사한 비행을 통해서 가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위성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북한이 대륙간탄도탄(ICBM)과 같은 장거리 미사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자들에게는 등치로 인식되는 위성발사체와 미사일이란 용어를 두고 주변국들의 대응이 모두 제 각각이다.
북한의 ‘광명성 2호’와 스푸트니크 충격
사실 이 위성발사체 내지 미사일과 관련된 기술은 습득하기에 아주 어려운 고난도 초특급 기술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군사적 목적과 결부되어 대량살상무기(WMD)와 결합될 때에는 가공할 공격력의 증대를 가져오기에 1987년 이래로 현재 세계 34개의 국가들이 미사일기술통제레짐(MTCR)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기술의 이전과 이용을 감시, 감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미사일 기술을 보유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사일기술통제레짐에 협력하는 이유는 바로 이 기술이 대량살상무기와 결부될 경우 가공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 명확하며 자국이 그 희생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제적 미사일기술통제에 협력하면서도 평화적인 기술의 이용을 위한 협력은 가능하며, 그간 미사일기술 개발에 제약을 안고 있던 한국도 점차 그 제한을 완화해 나가면서 조만간 사정거리 1,000km급 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더구나 근래 한국이 위성발사체 사업을 추진해 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아직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하지도 못한 북한과 우리의 미사일 기술 격차 때문에 허탈감 내지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북한이 주장하는‘위성발사’라는 이벤트는 국제정치 적으로 독특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은 2차 대전 후 냉전을 주도한 양대 초강대국이었다. 냉전 초기 소련은 핵무기를 앞세운 미국에 대한 전략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핵개발과 로켓발사실험에 집중하였다. 결국 소련은 1957년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에 성공했다. 단지 인공위성을 먼저 쏘아올린 것이 아니라 사정거리 3,600km 이상의 대륙간 탄도탄을 현실화시킬 로켓, 미사일 기술을 소련이 먼저 보유하게 된 것이다.
소련의 개가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 중량 500kg급 스푸트니크 2호의 발사에도 성공하였고, 나아가 견공(犬公)까지 태워 생명체를 성공적으로 우주공간으로 진입시키는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결국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Yuri Gagarin)의 우주궤도 비행을 성공시킴으로써 소련의 기술력을 온 세계에 뽐내게 되었다. 소련과의 경쟁에서 뒤쳐져 조급해진 미국은 1957년 뱅가드위성 발사에 실패한 뒤 1959년에 가서야 비로소 익스플로러 1호의 발사에 성공하게 되었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은 미국과 자유진영 국가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 교육과 과학기술 체제를 완전히 뒤집는 개혁에 착수하게 된다. 우주개발을 위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창설되었고, 소련의 대륙간탄도탄(ICBM)의 공격에도 미국 내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통신할 수 있는 알파넷(ARPANET,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을 개발하여 현재 보편화된 인터넷 개발의 초석을 닦았고, 외국 출신의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꾀하였다. 그야말로 스푸트니크 충격 이후 미국의 과학기술정책은 180도 바뀐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심대한 변화를 야기한 스푸트니크 이벤트는 그야말로 소련 ‘과시외교’의 극치였다 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소위 광명성2호 위성을 위성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한다면 미국은 제2의 스푸트니크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날 미국의 대응은 다른 분야보다도 제일 먼저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부시 행정부의 외교적 실패의 결과 미국이 심각한 안보상의 위협에 노출되게 되었다는 판단이 득세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위성발사 성공은 미국의 북한 및 한반도정책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의 발사체 수준은 대기권을 넘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위성발사 시도를 놓고 미국은 물론 동북아의 많은 국가들이 결코 편치만은 않은 시선으로 이 이벤트를 바라보고 있다.
과시(誇示)와 시선(視線)의 국제정치
현재 북한이 쏘아 올리려는 그 대상이 미사일이냐 아니면 위성발사체이냐는 북한의 주장이나 의도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시선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북한의 발사체를 두고 가장 명시적으로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사이키 아키타카 6자회담 일본측 수석대표는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할 경우 일본이 실행중인 대북한 제재를 강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일본은 북한 선박의 입항금지와 북한산 물품의 수입금지 등의 제재를 독자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한 일본 외무성 관리는“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한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6자회담을 속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반응은 은하2호가 실제로 위성체를 싣고 발사된다 하더라도 일본에게는 자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미사일발사로 인식되고 있으며, 따라서 일본은 이번 기회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기술에 대한 선언적 제재를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들로 현실화하는 계기로 활용하려는 입장을 보여준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그 시선이 복합적이다. 사실 북한의 발사체 실험이 이 두 나라에게도 그렇게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은 두 나라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한 동북아의 불안정화와 역내에서 미국과의 갈등구도가 강화되는 것은 양국이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발사체에 대한 규정을 미루면서 다소 신중한 입장에서 긴장국면 조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러시아의 6자회담 수석대표 보로다브킨 외교차관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유엔결의 위반인가에 대한 질문에 기술자들과 국제법 전문가들의 검토 후에 밝혀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인공위성으로 판단되면 제재가 어려울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준비 징후가 포착되었다는 보도가 외신을 타면서 이미 이 사태가 한반도 정세를 경색시키는 데 대한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북한의 조치에 대한 중국의 공식 반응은 한결같이 우회적이어서 그 속내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중국이 북의 발사준비를 크게 우려하는 것은 확실하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는 중국은 이 사태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라면서 일련의 조치를 취하였다.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 2월 17-19일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동북아 정세와 6자회담 진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중국측의 우려를 전달하였고, 북한은 이에 대해 ‘위성발사 실험’으로 발표하는 것으로 양해를 얻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또한 양제츠 외교부장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반대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피력하였지만,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중국에 실험 15분 전에 통보해준 것과 같은 상황이 다시 재연되지 않도록 북한과 긴밀한 정보공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중국은 북한이 실험하려는 그것을 위성발사체로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시선이다. 미 행정부는 강경한 대응에서 신중한 대응으로 그 입장을 바꾸고 있다. 지난 2월 10일에 게이츠 국방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요격의지를 피력한 것과는 달리, 3월 10일 블레어 국가정보국장은 북한이 발사하려는 물체를“우주발사체(space-launch vehicle)”라고 이해하고 있다면서 지난 2000년 이후 중단된 미·북 미사일 관련 회담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변화는 불확실한 실체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발언이 가져올 긴장과, 확실치 않은 대상에 대한 일방적 격추가 가져올 국제사회의 반발과, 요격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기술적 부담감, 그리고 격추 실패 시에 나타날 수 있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 미사일방어(MD)체제에 대한 비판과 국내정치적 충격 등에 대한 우려 등이 복잡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의 발사체를 확실한 격추대상인 미사일로 보기 보다는 좀 더 현실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그 성격이 모호한 우주발사체로 규정함으로써 현실적 대응을 모색할 여유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안보리 결의안 1718호 제재 수준의 압박과 북미접촉 추진 등과 같은 대화 정책을 동시에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문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태도는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시선이다. 4월초로 예정된 북한의 발사실험에 대해 미국 블레어 국장의 ‘우주발사체’발언이 나온 직후에도 한국의 군 당국자는 이 발사체가 미사일이라는 입장을 피력하였고, 3월 11∼12일 국회 대정부 현안 질의에서는 정부의 발사체에 대한 인식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 이후 한국 정부는 미사일이나 위성발사체에 대한 규정 보다는 그 발사 후 대책에 대한 대응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미국 및 일본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 위반을 이유로 북한을 제재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공조체제를 구축하여 북한의 발사체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의 이견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자신이 발사하는 물체를 주변국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북한은 준비 중인 기구를‘위성발사체’로 선언하였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른바‘과시(誇示)의 외교전술’을 또다시 구사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시험을 위성발사라고 포장하여 발표하기까지 북한은 중국과의 의견조율을 통해서‘적절한’수준을 찾는 데 부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게는 그것을 무엇으로 발표하느냐의 문제보다 얼마나 자신의 능력과 의지를 잘 과시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관심은 이번 발사가 얼마나 성공적인 쇼가 될 수 있느냐에 집중되어 있으며, 독일의 한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만약 이번 발사실험에 실패한다면 선군정치의 성과와 기치를 드높여 내부를 결속시키고자 하는 북한 지도부에게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한국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시선들을 묶어 북한을 견제하고 자국의 입지를 확보하는 하나의 입장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 한국은 북한의 행동과 주변국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수동적으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만큼 한국이 가진 영향력 행사의 수단과 의지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과시외교의 끝: 소련과 북한
이러한 북한의 행태는 과거 소련의 과시외교를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과 경쟁관계에 놓여 있던 소련은 과시외교에 큰 힘을 쏟았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이룩한 소련체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진영의 포위와 봉쇄정책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핵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소련은 자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필사적 노력을 기울였다. 과시외교에 대한 욕구는 이런 뒤쳐짐의 의식 속에서 피어난다. 군사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소련에게는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음을 외부 세계에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자신이 우습게 보이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절박함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스푸트니크도 필요했고 가가린도 필요했다. 과시외교는 방어적이며 수세적인 입장에서 분출되는 콤플렉스적인 사고에서 비롯된다.
북한의 지금의 행태는 냉전 시기 소련의 과시외교와 거의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대외적 행위의 대부분은 ‘과시’와 연관된다. 복어가 자신의 몸집을 부풀려 적을 위협하듯이 무리한 몸부림을 통해 체제유지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소련은 상호 경쟁적인 과시외교를 감당해 나갈 수 있는 국내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역량이란 것도 고갈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소련의 과시외교에 맞대응하기 위하여 경쟁의 불을 지폈던 당시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미국도 역량의 고갈로 1960∼70년대 세계자본주의체제에서 그 지도력에 심대한 타격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과시외교와 경쟁은 그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내부적 능력이 고갈될 때 자연스럽게 끝나고 만다.
여기서 북한 지도부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선, 과시외교의 효과에 대한 것이다. 때때로 과시외교를 통한 국면의 돌파는 좀 더 유리한 협상의 위치를 점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시외교를 통한 일시적 변화는 장기적인 국제정치 역학구도라는 근본적 변화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그리고 비정상적 내지 무리한 동원을 통한 과시외교가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그 사회는 더욱 깊이 병들게 된다는 점이다.
과시외교는 자연스런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심각한 왜곡과 병리적 현상을 가져 온다. 어쩌면 이미 북한은 회복하기에 매우 힘든 사회적 질병의 단계에 진입했는지도 모른다. 북한 사회의 병증은 향후 동북아 전체의 짐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은 과시외교가 결국 어떻게 귀결될 수밖에 없는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어떤 정치체제도 과시외교로 성공한 예가 없다. 소련은 총성 한 방 없이 해체되었다.
북한은 자연스런 체제전환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주변국들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가장 희망적인 길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4월초로 예정되어 있는 북한의 발사체 실험을 앞두고 긴장감 속에 복잡한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 주변국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북한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들과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이 스스로를 침식시켜 가는 과정임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konas)
출처 : KPI
신범식(한반도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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