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한니발 전쟁'이 對北政策에 주는 교훈
'침략자와는 협상.대화하지 않는다'는 원칙 고수와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
I
현재 대한민국은 1948년 김일성이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란 붉은 나라를 만들고 김정일이 세습한 공산정권과 무려 60년동안에 걸쳐 제헌헌법에서 명시한 한반도 자유통일이냐, 아니면 2000년 6월에 김대중과 김정일이 뜨겁게 포옹하면서 합의한 남북(고려?)연방제냐의 향방을 둘러싸고 최후의 決戰을 남겨놓고 있다. 4월초 초읽기에 들어간 북한 미사일 발사 시도는 체제를 지키려는 김정일의 최후의 결사항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최후의 결사 항전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김정일 체제에 대해 한국사회에서는 이를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해서 분분한 논의가 줄기차게 진행되어 왔다. 이런 논의에서는 정답을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 결국 미래를 위해 역사적 사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필자는 로마의 한니발장군과 치렀던 제2차 포에니전쟁(BC.218-BC.202)의 교훈을 지적하여 남북관계와 장차 닥쳐올 한반도통일에서 귀중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 실어 본다.
II
기원전 216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카나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로마 시민병 포로의 수가 무려 8천명이나 되었다. 한니발은 몸값을 내면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한니발은 포로들에게 대표 열명을 뽑게 한 다음, 그 열명에게 측근 한 사람을 붙여서 로마로 보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여사에 의하면, 한니발이 포로를 석방하려한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로 지적한다.
첫 번째로, 군량 확보의 어려움이 상당한 부담이었다. 두 번째로, 한니발은 로마와 강화를 체결하려는 의사가 있었다. 로마가 시칠리아와 사르데니아 및 카푸아 이남의 이탈리아 남부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강화에 응하면,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상실했던 것들을 모두 되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10명의 포로들은 로마로 가서 원로원에게 한니발의 제안을 그대로 전했다. 하지만 원로원은 열띤 토론을 벌린 뒤에 한니발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원로원 지도부는 “침략자와는 협상, 대화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원칙을 고수했다. 한니발은 본국 카르타고의 명령을 무시하고 무단으로 피레네산맥과 알프스산맥을 넘어서 로마를 침략했으며 카르타고와 로마와의 조약을 일방적으로 깨트렸기 때문이다. 실망한 포로들은 그 대답을 가지고 한니발에게 돌아갔다.
로마인들은 포로가 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았다. 로마는 포로 8천명의 전사를 필요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또 8천명의 포로를 지불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았다. 통상 전쟁에서 적과 포로들을 상호 교환해 왔던 것이다. 8천명이면 2개 군단에 해당된다. 한니발이 제시한 몸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도 아니었다.
로마 원로원이 몸값의 지불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한니발의 강화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돌아온 포로들한테서 로마의 회답을 받은 한니발은 8천명의 로마 포로들을 모두 그리스에 노예로 팔아버렸다.
전쟁 수행에 의지를 천명한 로마에서는 원로원 의원 전원이 부동산을 제외한 전재산을 헌납하기로 결의하고, 그대로 실행했다.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책임과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실천이었다. 그 후, 기원전 202년에 북아프리카 자마에서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한니발 군대를 섬멸시켰다. 로마는 한니발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서 공화정에서 제국이 될 군사력을 보유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를 실천에 옮겨 지중해세계를 정복했다.
[시오노 나나미/김석희, 『로마인 이야기; 한니발전쟁』(한길사, 1995). 제2권, pp. 201-205에서].
III
로마가 당대의 군사적 천재라고 공인한 한니발장군의 군대를 격퇴한 핵심 요소는 침략자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 점과 지배층의 국가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를 다 한다는 솔선수범 정신이었다. 이 두 원칙이 로마공화정을 존망의 위기에서 구출했고, 더 나아가 로마제국으로 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한한국이 김일성-김정일의 세습공산정권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온갖 어려움에 처해진 근본 원인은 첫 번째로는 6.25동란을 일으킨 침략자에게 협상·대화라는 명분하에 김정일에게 비굴하게 굴복하면서 6.15-10.4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하면서 대북원칙이 일거에 무너진 것이고, 두 번째로는 장차 한반도 자유통일을 위해 희생을 우선적으로 감내해야하는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이 不在하기 때문일 것이다.(konas)
이주천(원광대 사학과 교수/국제현대사연구소장/www.leejuche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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