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한반도 정세
지미 카터의 실패한 ‘유화’ 정책보다는 로날드 레이건의 ‘신 봉쇄정책’ 을 한반도에서 구현시켜야
1. 미사일 시험 발사는 세 번째도 ‘失敗作’
김정일(金正日)의 북한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월5일 북한이 예고했던 장거리 ‘로켓’의 발사를 강행했다. 북한은 이번에 시험 발사한 것이 ‘인공위성’(‘광명성-2호’)을 우주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한 ‘로켓’(‘은하-2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번 ‘개량된 대포동 2호’ 시험 발사는 1998년의 ‘대포동-1호’와 2006년의 ‘대포동-2호’ 때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실패작(失敗作)’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예상했던 대로 이번 시험 발사가 ‘성공적’이었다고 훤전(喧傳)하고 있다. “‘광명성-2호’가 궤도에 진입했을 뿐 아니라 일정한 우주궤도를 선회하면서 ‘음악 선율’과 각종 ‘통신 자료’를 일정한 주파수대로 지구로 송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종 첨단 관측 및 감시 장비로 북한의 시험 발사 모습을 응시(凝視)했던 국제사회의 추적 결과에 의하면 이 같은 북한의 주장은 1998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사실과 다른 기만(欺瞞) 행위라임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및 한국은 문제의 시험 발사 시각에 동해 상에 5척(미국 2척, 일본 2척, 한국 1척)의 이지스 함을 배치하고 공중에는 정찰기와 인공위성을 띄워 놓고 있었으며 미국 본토의 ‘북미우주방어사령부’(NORAD)는 물론 여러 나라들이 지구 주변 곳곳에 설치ㆍ운용하고 있는 추적 레이더들이 시험 발사 광경과 발사 이후 비행 궤적(軌跡)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한 ‘인공위성’ ‘은하-2호’의 궤도진입은 물론 “궤도를 선회 중”이라는 ‘은하-2호’로부터의 ‘노래 선율’과 ‘모르스 전신 부호’는 여러 나라들이 지구 주변에 설치ㆍ운영하고 있는 어느 추적 레이더에 의해서도 포착되지 않았다.
NORAD는 이번 발사를 통해 북한이 “어떠한 물체도 우주궤도에 올려놓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NORAD는 이날 발사된 비행체의 “1단계 로켓은 일본해에 떨어졌고 미사일의 나머지 부분(2-3단계)과 적재물은 태평양에 낙하했으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물체도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고 파편이 일본에 떨어지지도 않았다”고 발표했다. 국제적으로 전파의 주파수대를 관리하는 국제통신연맹(ITU)은 “북한이 주장하는 주파수대(470Mhz)는 배정해 준 일도 없거니와 이 주파수대로 수신된 통신는 아무 것도 없다”고 발표했다. 결국, 북한의 “인공위성의 성공적인 궤도 진입” 주장은 지난 1998년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 혼자만의 ‘이불 속 활개차기’였다.
북한의 ‘대포동-2호’ 시험 발사 강행은 당연히 국제적으로 거센 후폭풍(後暴風)을 불러일으켰다. 시험 발사가 강행되자 미국과 일본 및 한국은 미리 예고했던 대로 즉각 강경하게 대응하고 나섰다. 그러나, 비상임이사국 일본의 요구로 긴급회의를 소집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응방안 협의는 난항이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결의 채택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안전보장이사회의 난항(難航)은 사실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북한이 이번 시험 발사에 앞서서 안전보장이사회의 개입을 견제하기 위한 북한 나름의 꼼수를 이미 두어 놓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꼼수는 1998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험 발사를 ‘군사용 장거리 탄도 미사일’이 아니라 ‘위성발사용 로켓’으로 위장(僞裝)하는 것이었다. 이번의 경우 북한은 1998년과는 달리 시험 발사 이전에 미리 예방조치를 강구하는 지능적 방법을 택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시험 발사를 3주일여 앞둔 시점인 3월12일 북한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제해사기구(IMO)에 공한을 보내 “오는 4월4일부터 8일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할 예정임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북한이 두 국제기구에 “운반 로켓 ‘은하-2호’를 발사하여 실험용 인공위성 ‘광명성-2호’를 궤도에 올려놓을 계획”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이 기간 중 단계 별 로켓의 예상 낙하 지점에 관한 정보와 함께 비행 중의 항공기와 운항 중의 선박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정보자료를 통보했다”는 주장도 아울러 보도했다.
북한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이유는 자명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시비를 사전에 견제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북한의 장거리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은 핵무기 개발과 아울러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북한이 2006년7월6일 ‘대포동-2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같은 달 16일 북한에게 1) “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행동의 중지”와 2) “미사일 발사 유예선언에 대한 기존의 약속 재확인” 및 3) “무조건 6자회담 복귀” 등을, 그리고 다른 유엔 회원국에게게는 1) “미사일과 미사일 관련 물품, 재료, 제품, 기술이 북한의 미사일이나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에 사용되지 않도록 할 것”과 2) “미사일 혹은 미사일 관련 물품, 재료, 제품, 기술을 북한에 판매하지 않을 것” 및 3) “북한의 미사일이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재정적 자원을 북한에 제공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결의(1695호)를 채택했었다.
북한이 다음 해인 2007년10월6일 이번에는 핵실험을 실시하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10월14일 1718호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1) “모든 탄도 미사일 개발 계획 중지” 및 2) “기존 미사일 발사 유예 약속 재확인”과 함께 3) “현존하는 모든 다른 대량살상무기와 탄도 미사일 계획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 돌이킬 수 없는 방법에 의한 포기” 요구를 재확인하는 한편 유엔회원국들에게는, 직ㆍ간접을 불문하고, 1) “핵 관련, 탄도 미사일 관련 또는 다른 대량살사무기 관련 계획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모든 품목의 물자, 장비, 물품 또는 기술들”과 2) “모든 종류의 전투용 탱크, 전투용 장갑차량, 대구경 화포류, 전투용 항공기, 공격용 헬리콥터, 전투함정 및 미사일이나 부품 및 안보리나 앞으로 설립될 안보리의 ‘제재위원회’가 지정하는 품목을 포함한 관련 물자들”은 물론 3) 일정한 ‘사치품’들의 대북 판매 및 공급을 금지했다.
이번의 ‘개량된 대포동-2호’ 발사가 ‘인공위성’ 발사 용 ‘로켓’이라는 북한의 예고는 바로 이 같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695호와 1718호를 우회(迂廻)하겠다는 북한 나름의 꼼수였다. 북한의 주장은 유엔의 1963.12.13자 ‘우주(宇宙) 개발 및 이용에 관한 국가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법적 원칙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f Legal Principles Governing the Actitivies of States in the Exploration and the Use of Outer Space Adopted by the General Assembly on December 13, 1963, in Its Resolution XVIII') 3, 4항에 의거하여 ‘인공위성’ 발사용 ‘로켓’ 발사의 경우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695호나 1718호의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는 합법행위라는 것이었다. [문제의 유엔 ‘선언’은 3항에서는 “외계와 천체에 대해서는 주권 선언이나 사용 또는 점거 또는 그 밖의 어떠한 방법으로도 특정국가의 전유(專有)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그리고 4항에서는 “국가들의 외계 개발 및 사용 행위는 유엔헌장을 포함하여 국제법규에 의거하여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와 국제적 협력과 이해 증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주장은 궤변이었다. 북한이 발사한 발사체는 액체 추진인 ‘노동’(1단계) 및 ‘스커드’(2단계)와 고체 추진인 KN-02(3단계)를 결합시킨 것으로 말이 ‘로켓’이지 사실은 전형적인 3단계 장거리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었다.
북한의 ‘개량된 대포동-2호’ 발사가 있었던 날 체코의 프라하에서 가진 대중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로 사용될 수 있는 로켓을 시험 발사했다”면서 “이것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차원뿐 아니라 우리의 단호한 대응을 요구하는 도발행위”라고 단정한 것은 미국이 이번의 발사체를 ‘미사일’로 보고 있다는 시각(視角)을 분명히 해 준 것이었다.
2. 유엔안보리 ‘의장성명’과 북한의 損益 貸借對照表
이번 북한의 ‘대포동 2호’ 시험 발사에 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대응은 결국 4월13일 만장일치로 채택된 ‘의장성명’의 형태로 귀결이 났다. 체제 상 결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이번 ‘의장성명’은 1) 4월5일에 있었던 북한의 로켓 발사를 안보리 결의 1718에 대한 ‘위반행위’로 규정하여 이를 규탄하고 2) 이미 구성되어 있는 ‘대북 제재위원회’에게 2006년10월14일자 안보리 결의 1718호 8항에 의거하여 부과된 대북 제재조치를 조정한 내용을 오는 4월24일까지 보고하도록 요구하는 등 강도 높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의장성명’ 내용에는 중국과 러시아도 반대하지 않아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북한이 강행한 ‘개량된 대포동-2호’ 시험 발사의 후폭풍은 이번의 경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테두리 밖에서 보다 거세질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대응이 만만치 않고 남쪽 이명박 정부의 대응도 1998년 김대중(金大中) 정권 때나 2006년 노무현(盧武鉉) 정권 때와 다르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강행한 이번 ‘대포동 2호’ 시험 발사 결과의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는 빈약한 것이 되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아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북한은 유엔안보리가 채택한 ‘의장성명’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유엔안보리가 14일 ‘의장성명’을 채택하자 즉각 외무성 명의의 성명을 통해 안보리의 ‘의장성명’ 채택을 북한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단정하고 북한은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앞으로 다시는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기존 6자회담의 어떠한 합의에도 더 이상 구속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이 성명에서 “불능화 작업이 진행 중이던 핵시설을 원상복구”하고 이를 통해 획득할 ‘폐연료봉’들을 “깨끗하게 재처리할 것”이며 “자체의 경수로발전소 건설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북한은 또 “우주조약을 비롯한 국제법에 근거하여 우리의 자주적인 우주 이용권을 계속 행사하겠다”고 다짐하여 앞으로도 로켓으로 포장(包裝)된 미사일 개발과 발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한편 “적대세력들의 가중된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여 우리는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주장하여 추가적인 핵실험을 포함하여 핵무기 개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입장도 명백히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의 격렬한 반발과 중국ㆍ러시아 등 일부 국가의 소극적 자세로 인하여, 이번에 채택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의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실패작’이 된 이번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의 차원에서의 총체적인 손익(損益) 계산은 북한의 입자에서 득(得)보다는 실(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결과를 보여 준다. 북한이 입어야 할 손실이 막대해진 것이다.
우선 가장 큰 북한의 손실은 이번의 로켓 발사도 결국 ‘실패작’으로 귀결(歸結)됨에 따라 북한이 개발하는 장거리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성능에 대한 평가절하(平價切下)가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이번의 실패는 북한의 실제 능력에 관하여 앞으로 비단 미사일 개발뿐 아니라 핵무기 개발 능력에 대해서도 의혹(疑惑)이 제기되는 것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다. 그 동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발동하여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 카드를 들고 나올 때마다 이를 좌절ㆍ저지시키기 위해 결국은 북한의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유화(宥和)’ 정책으로 대응했을 뿐 아니라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는 경우에도 이에 대한 응징(膺懲)이나 제재보다는 다시 ‘유화’(appeasement)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관례화해 왔었다. 그 동안의 베이징 6자회담의 전 과정이 바로 대북 ‘유화’에 바탕을 둔 협상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미사일 시험 발사 후에는 그 같은 관행에 변화가 생길 기미(機微)가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3회에 걸쳐 실시된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렇다면 앞으로 또 미사일 시험 발사가 실시되더라도 확률적으로는 성공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자명(自明)하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국제사회는 결국은 성공을 거두지 못할 북한의 위협에 대해 굳이 번번이 ‘유화’ 정책으로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이번의 시험 발사 강행은 국제사회는, 북한의 무리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한, 합리적인 ‘유화’로서는 결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저지하지 못한다는 경험률(經驗律)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이번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한 외무성 ‘성명’을 통해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의 재개(再開)뿐 아니라 핵실험 재개라는 공갈(恐喝) 카드도 사실상 다시 꺼내들었다. 그러나, 2007년 북한이 실시한 핵실험도 역시 ‘실패작’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을 가지고 공갈 카드를 꺼내 들더라도 종래처럼 이에 대해 번번이 ‘유화’적으로 대응하는 데 대한 유혹(誘惑)이 훨씬 감소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번 시험 발사 강행으로 거둔 정치적 소득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첫째로는 국내적으로 작년의 건강악화설로 동요의 기미를 보였던 김정일(金正日) 독재체제를 안정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둘째로는 국제사회, 특히 6자회담 참가국들 사이를 이간(離間)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며 셋째로는 새로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로 길들이기를 시도할 수 있었고 넷째로는 중국을 북한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는 소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 네 가지의 ‘소득’은 실제로는 북한의 치명적인 ‘손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사실은, 보기에 따라서는, 북한이 이번에 로켓 시험 발사를 강행한 것은 금년 1월 출범한 미국 민주당의 오바마 행정부에 북한이 걸었던 기대가 실현되지 않는 데 대한 북한식 발작(發作)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었다. 특히 미국 대통령선거가 본격화되었던 작년 특히 미국에서는 오바마 후보 진영에 닻을 내린 ‘친북(親北)’ 성향의 인물들이 ‘거간(居間) 꾼’ 역할을 자임(自任)하여 더러는 주 뉴욕 북한 대표부를 통하여, 그리고 더러는 직접 평양을 드나들면서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달라질 미국의 대북 정책에 관하여 환상(幻想)을 갖도록 오도(誤導)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었다. 그 같은 인물들 가운데는 도널드 그렉(전 주한미국대사/현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ㆍ셀리그 해리슨(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ㆍ빌 리차드슨(현 뉴멕시코 주지사)ㆍ지미 카터(전 미국 대통령) 같은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자원비장(自願裨將)’들이 이 무리에 가담했다. 김대중(金大中)(전 대통령)을 비롯, 임동원(林東源)(전 통일부장관/국정원장)ㆍ정세현(丁世鉉)(전 통일부장관/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북한 지도부에게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기만 하면 미국은 6자회담과 병행하여 미-북 직접 대화를 통하여 ‘통 큰’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끈질기게 보냈다. 미국은 북한과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1953년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을 포함하여 북한과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흥정을 추진할 것이며 이를 위해 “오바마와 김정일 사이의 미-북 정상회담도 성사되리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북한 지도부에게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에의 허황된 꿈을 열심히 심어주었다.
그러나, 금년 1월20일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대북정책의 그 같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서 정책 우선순위 면에서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는 이미 후순위(後順位)로 밀려나 있었다. 출범과 더불어 오바마 행정부가 직면한 것은 세계적 범위로 증폭되어 있는 초대 규모의 미국 발(發) 금융위기와의 힘겨운 씨름이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정책 담당 조직의 편성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로 마냥 미루어지는 난조(亂調)를 보여주었다. 오히려 오바마 정부의 외교정책 행보는 ‘통미봉남’이 아니라 한국과의 협조ㆍ협력에 우선순위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범 세계적인 금융위기와의 씨름에서 G20 참가국인 한국과의 협력은 그만큼 필요한 것이었다.
3. ‘通美封南’은 없다 - 미국은 대북 ‘統一戰線’ 구축을 희망한다
지난 2월 오바마 행정부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국으로 일본ㆍ한국ㆍ중국ㆍ인도니시아 등 아시아 4개국을 선택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 순방을 통해 대 한반도 정책에 관하여 많은 말을 남겼다. 대 한반도 정책에 관한 그의 발언은 사실상 전임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승계하는 것임을 명백히 하는 것이었다. 그는 ‘민주주의’와 ‘번영’을 이룩한 대한민국과 ‘폭정(暴政)’과 ‘빈곤’으로 상징되는 북한을 엄격하게 차별화하면서 한-미, 미-일 동맹을 ‘가족관계’에 비유하여 강력하게 옹호하고 “만약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을 비방하면서 미국과는 다른 관계를 가지려 한다면 그것은 오판(誤判)”이라고 북한이 노리는 ‘통미봉남’의 가능성에 단단한 쐐기를 박았다.
클린턴 장관은 이 순방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관계에 있어서 핵문제 우선 해결 원칙을 확고하게 고수하는 바탕 위에서 대북 ‘유화’를 고려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만약 북한이 진정으로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핵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미국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을 포함하여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다른 나라들과 함께 식량과 연료를 포함한 경제원조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일부 관측통들로 하여금 미국이 핵문제 해결에 앞서서 또는 이와 병행하여 미-북 국교정상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게 만들었으나 곧 이어 “그러나 대전제는 북한의 핵포기와 비핵화”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순방 기간 중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문제에 대해서도 핵문제 못지 않은 비중으로 반복하여 거론했다. 그는 미사일 문제가 아직 6자회담의 공식 의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가 6자회담의 중요한 현안이라고 강조하고 “만약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하여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를 위반한다면 미국은 북한에게 연료와 식량 등 경제원조를 제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이 같은 경고는 뒤집어보면 “만약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지 않으면 연료와 식량 원조를 제공하겠다”는 ‘유화’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도로는 북한의 구미(口味)를 땅기게 할 수 없었다.
북한에게 반발의 빌미를 직접적으로 제공한 것은 예년에 비해 기간을 배가하고 내용을 보강하여 금년 3월9일부터 20일까지 실시된 한-미 키 리졸브(Key Resolve) 연례 합동군사훈련이었다. 이 훈련은 금년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이명박 정부 사이에 오히려 강화일로를 걸어 온 한-미 안보동맹과 연합작전체제의 징표(徵標)였다. 북한의 반발은 당연했다. 북한은 다시 ‘벼랑 끝 전술’로 회귀(回歸)했다. ‘인공위성’ 발사를 위한 ‘로켓’으로 위장한 채 장거리 대륙간 탄도탄으로 개발된 ‘개량된 대포동 2호’ 시험 발사라는 공갈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북한의 시험 발사 강행은 아직 내정ㆍ외교 모두 체제 정비를 마치지 못한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격(一擊)이었다. 미국의 대응도 강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5일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강행 직후 방문 중인 프라하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 길은 먼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획득 욕망을 포기하고 국제적 의무와 약속을 이행하기 전에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여 선 핵 포기, 후 관계개선이라는 수순에 변동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핵문제와 미사일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대처’를 강조하고 나섰다. 클린턴 장관은 이를 가리켜 국제사회의 ‘통일전선’ 구축이라고 명명(命名)했다. “현 단계에서 미국의 외교 노력은 우선 일본, 러시아, 중국 및 한국과 미국 등 5개국이 공동으로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하나의 ‘통일전선’을 구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4월13일자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한 북한의 격렬한 반발은 미국의 이에 대한 대응을 불가피하게 제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4월5일의 로켓 발사 강행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그로부터 몇 시간 뒤 프라하에서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대중연설에 압축되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로 이용될 수 있는 로켓을 발사함으로써 법규 위반을 자행했다”고 비난하고 “이 같은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비단 오늘 소집되는 유엔안보리 차원뿐 아니라 이들 무기들의 확산을 방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결의에 입각하여 행동으로 응징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법규는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고 위반에 대해서는 처벌이 가해져야하며 이 같은 처벌은 말만으로 되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북한이 행동을 바꾸도록 전 세계가 모두 뭉쳐서 함께 압력을 가하자”고 촉구하고 “북한은 대량살사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적 의무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는 국제사회의 성원(成員)이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더구나, 북한이 유엔안보리의 ‘의장성명’에 정면으로 반발하여 6자회담 참가를 거부하고 6자회담의 기존 합의 일체의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의 계속을 공언한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 문제의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에 고지식하게 집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소실(消失)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미국의 선택은 한국ㆍ일본 등과의 협력 강화를 통하여 비단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이행의 차원뿐 아니라 유엔의 테두리 밖에서 쌍무적 또는 집단적 대북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그 압력에 굴복하여 체제변화를 일으키도록 압박을 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국의 입장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북한이 조만간 또 한 차례의 핵실험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세 차례의 미사일 실험 발사가 예외 없이 ‘실패작’이 되고 2007년에 있었던 핵실험도 ‘성공작(成功作)’이 되지 못했던 북한의 과거력(過去歷) 때문에 이제 앞으로는 미사일 발사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새로운 핵실험 위협도 그 공갈ㆍ협박 효과는 크게 감소될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 싶다.
결국, 미국은 6자회담의 성과 없는 속개(續開)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동안의 대북 ‘회유’ 정책에의 미련(未練)을 버리고 식량과 연료 공급을 중단하는 것을 포함하여 외부로부터의 대북 경제지원을 최대한 차단함으로써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고통에 못 이겨 굴복을 택하도록 강요하는 쪽으로 방향 선회가 불가피해 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의 요구에 따라 ‘제재위원회’가 오는 24일까지 보고해야 할 제재 대상의 선정은 그 첫 발걸음이 될 것 같다. 4월13일의 ‘의장성명’은 만약 ‘제재위원회’가 4월24일의 보고 시한(時限)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안보리가 직접 이 문제를 떠맡도록 하는 배수진(背水陣)을 쳐 놓았다.
4. 북의 실패한 발사가 자극하는 일본의 軍國化 - 중국도 큰 被害者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일본의 대응이 전례 없이 강경하다. 그 원인은 이번 미사일 사태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일본의 국내정치 상황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소 내각은 대북 강경 대응으로 최근 보수화(保守化) 현상이 현저한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에 편승함으로써 그 동안 바닥을 치던 자민당(自民黨) 내각에 대한 정치적 지지도를 향상시키는 계기로 이를 활용하여 가까운 시일 안에 불가피하게 있을 국회 해산과 총선거에 대비하려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일본의 행보가 강경 일변도다. 일본은 이번 사태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정과 1718호보다 더욱 강경한 대북 제재결의 채택 노력을 주도하는 일방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가 여의치 않을 때는 일본 나름의 경제 제재 위주의 독자적 대북 제재를 단행할 기세이며 그 명분 축적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동해의 해저(海底)에 추락된 북한 미사일의 1단계 추진체의 잔해(殘骸)를 발견ㆍ양륙(揚陸)하는 작업에도 매달리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의 일본 정국(政局)의 흐름은 아소 내각이 자위대(自衛隊)의 조직과 기능을 대폭 수정하여 사실상 재무장(再武裝)의 길을 틀 수 있도록 현행 ‘평화헌법’의 개정을 추진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이번 사태를 이용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북한이 4.5 미사일 시험 발사는 일본 군국주의(軍國主義)의 부활 가능성에 대해 가장 과격하게 반응하고 있는 북한이, 역설적으로, 일본 정치의 우경화(右傾化)를 가속화시키고 재군비(再軍備)의 흐름을 정당화(正當化)시켜 주는 엉뚱한 부산물(副産物)을 파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하여 북한은 일본의 6자회담 참가와 물론 북핵 문제 해결 논의 참여 배제 주장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새로운 핵실험을 차단ㆍ저지하고 6자회담을 살려 나가기 위하여 오바마 행정부가 결국 6자회담 테두리 밖에서 북한과의 양자협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가능성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현실성이 희박하다. 첫째로는, 지난 2월의 아시아 4개국 순방 도중 클린턴 장관이 거듭 강조했던 것처럼, 특히 아직도 바닥을 치는지의 여부가 분명치 않은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처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미-일 및 한-일 동맹을 절대시(絶對視)하고 있고, 둘째로는, 미-북 양자회담을 통해 비단 핵문제뿐 아니라 미사일 문제와 인권문제 및 납북일본인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북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번 미사일 소동(騷動)의 큰 피해자는 중국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번의 소동을 통해 6자회담의 약효(藥效)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6자회담의 최대 수혜자(受惠者)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6자회담의 사실상의 좌장(座長)으로 엄청난 혜택을 누렸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미국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고 한국을 쥐락펴락하며 북한을 장악하면서 국제외교무대에서 ‘큰 손’의 위상(位相)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중국은 북한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에 대한 보상으로 6자회담의 좌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하여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큰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이 직면해야 할 난제는 이번 사태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북한 지도부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제한된 영향력을 가지고 과연 중국이 앞으로도 계속 한반도 정세의 궁극적인 조정자(調停者)로써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냐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가정(假定)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중국이 보유하는 북한에 대한 통제 능력에 치명적 허점(虛點)이 존재할 개연성(蓋然性)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가능성은 중국이 북한의 경제적 연명(延命)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생명선(生命線)으로 북한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에 입각하고 있는 미국의 그 동안의 대북 내지 대한반도(對韓半島) 정책의 토대를 크게 위협하는 것이다.
이번에 북한이 로켓 시험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가장 큰 손실을 본 분야는 남북관계다. 남북관계는 이미 이번 사태 이전부터 변화하고 있었다. 10년 동안의 ‘좌파천하(左派天下)’에 종지부를 찍고 보수ㆍ우파 정권의 복귀를 실현시킨 이명박 정부가 작년 2월 출범 이후 집요하게 남북관계의 “새 판 짜기”를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당면했던 현안은 북핵 문제의 해결과 함께 그의 정부에 앞서 10년 동안 권력을 장악했던 2개의 ‘친북ㆍ좌파’ 정권이 추진했던 ‘햇볕정책’의 유산(遺産)인 ‘6.15 선언’(2000년)과 ‘10.4 선언’(2007년)의 뒤처리 문제였다. 그의 전임자인 노무현(盧武鉉)은 “전임자가 발행한 어음은 후임자가 반드시 결제해야 한다”는 논법으로 그와 그의 전임자 김대중(金大中)이 저질러 놓은 ‘대북 퍼주기’의 뒷설거지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요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2007년6월 한나라당 경선 후보의 입자에서 내놓은 ‘비핵ㆍ개방ㆍ3000 구상’이라는 이름의 대북정책 구상, 2008년2월 대통령 당선자의 자격으로 행한 동아일보(한국)ㆍ아사히 신문(일본)ㆍ월스트리트저널(미국) 등 3개 신문과의 공동회견에서 밝힌 ‘대북경협 추진 4대 원칙’, 그리고 2008년7월11일 18대 국회 개원(開院) 본회의 연설 등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 판 짜기”를 추구해 왔다. 그가 제시한 대원칙은 1) 핵문제의 우선 해결과 2) 상호주의(相互主義)의 부활이었다.
북한은 2007년12월 대선과 2008년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의 몰패(沒敗)로 위축되었다가 임기 초의 이명박 정부가 엉뚱하게 자초(自招)한 홍역(紅疫)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을 둘러싼 ‘촛불 시위’를 통해 회생(回生)한 남한 사회의 ‘친북ㆍ좌파’ 세력을 선동하여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흔들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남한사회의 대북 정서(情緖)는 작년 7월에 있었던 북한군에 의한 금강산에서의 여성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을 전환점(轉換點)으로 크게 반전(反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북한은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남북간 전면적 대결태세”를 운운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서의 또 다른 해상 무력도발을 암시한 금년 1월17일자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명의의 성명과 이어서 “남북간 정치적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에 관련된 기존 남북대화 합의 사항들의 전면적 무효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1월30일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의 성명 등의 그 사례들이다. 이에 앞서 북한은 2008년12월부터 개성공단 운영에 차질을 초래하고 남북 연결 철도의 시험 운행을 중지시키는 등의 일련의 일방적 조치로 대남 신경전(神經戰)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5. 李明博 정부가 추구하는 남북관계 새 판 짜기 - 對北 ‘新封鎖政策’(?)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의연했다. 특히 북한의 군사적 도발 위협에 대하여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전임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때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상희(李相憙) 국방부 장관은 북의 NLL 도발 위협에 대하여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는 도발의 근원지를 공격하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2000년 두 번째 ‘연평해전(延平海戰)’ 때와는 달리 “현지 군 지휘관들에게 필요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북한도 남북한 해군이 가지고 있는 화력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 해군의 아날로그 식 수동 화력 시스템은 이미 한국 해군 함정의 디지털화되어 있는 자동 화력통제 시스템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결국, 1-2월에 걸쳐 수위가 고조되던 북한의 해상 군사도발 위협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한-미 양국군의 키 리졸브 합동 군사훈련의 개시가 임박해지자 북한은 이번에는 이를 구실로 개성공단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개성공단의 남측 상주 인원 규모에 대한 일방적 제한을 시도하고 남북한 군사당국 간의 직통전화 운영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키면서 남측 인원의 공단 출입을 일시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가 의연하게 대응하자 북한은 이번에도 머지않아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아직 키 리졸브 군사훈련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에 대한 출입 금지를 슬그머니 풀어버린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행보는 4월5일의 로켓 발사 이후에도 반복되고 있다. 남쪽의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로켓 발사 취소를 요구하면서 북한이 발사를 강행하면 한국은 이에 대응하여 그 동안 미루어 오던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에 전면(全面) 참가하겠다고 경고했고 이에 대해 북한은 “남한의 PSI 참가를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이에 대응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섰었다. 그러나, 남쪽의 이명박 정부는 4월13일 유엔안보리가 대북제재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것을 기다려 PSI 전면 참가를 공표했다. 이제 “남한의 PSI 참가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북한의 대응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 것인지가 궁금한 차례가 되고 있다.
아마도 북한의 대응은 우선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남북관계를 모두 틀어막는 조치의 형태를 취할 가능성이 많다. 예컨대, 개성공단의 운영 중단과 개성관광의 중지를 포함하여 남북간의 일체의 인적 왕래를 중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움직임으로 미루어 볼 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 같은 북한의 보복적 행보에 떠밀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이미 개성공단은 어느 시점에든지 일단 문을 닫고 원점에서 새로 판을 짜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도 인식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남한의 ‘한계기업(限界企業)’들이 북한 노동력의 저렴한 노임과 여러 가지 형태의 남한 정부의 보조에 의존하여 진출하고 있는 개성공단이 성공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공단 제품의 ‘경쟁력’ 확보이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의 절대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로는 현재의 노임 수준에 입각한 북한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과 그들의 ‘노동생산성’의 지속적 향상이고 둘째로는 공단 제품의 품질(品質)과 납기(納期) 보장을 통한 시장의 신뢰성 확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하여 취한 일방적 조치로 이 두 가지 절대적 조건 충족에 이상(異常)이 발생했다.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쟁력’ 확보뿐 아니라 안정된 ‘납기’ 보장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으로 개성공단은 우선 공단의 규모 확장이 사실상 어려워 졌다. 남쪽의 ‘한계기업’들을 상대로 이 같은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신규로 공단 진입을 설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졌을 뿐 아니라 이미 진출해 있는 90여개 기업 가운데서도 철수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 없이, 북한으로 하여금 개성공단의 문을 일단 닫게 하고 ‘갑(甲)’의 입장에서 남쪽이 운영을 주도하는 내용으로 개성공단 운영의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가능해 질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 같은 남북관계의 상황은 새삼스럽게 핵과 미사일뿐 아니라 남북관계의 그 밖의 모든 현안들이 북한의 고집불통의 독재정권을 상대로 ‘유화’의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1980년대 말로부터 1990년대 초에 걸쳐서 지각변동(地殼變動)처럼 진행된 구 소련의 해체와 이에 이은 공산권 세계의 와해가 일부 ‘햇볕논자’들의 궤변(詭辯)처럼 지미 카터의 ‘데땅뜨’가 아니라 1981년 취임한 로날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힘’에 바탕을 둔 대소(對蘇) ‘신봉쇄정책’(New Containment)에 의하여 촉발(觸發)된 것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앞으로의 대북정책은 아직도 스탈린 식 공산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의 현 지도부를 상대로 지미 카터의 실패한 ‘유화’ 정책보다는 로날드 레이건의 ‘신 봉쇄정책’을 추구함으로써 “역사 자전(歷史 自轉)”의 이적(異蹟)을 한반도에서 구현(具顯)시키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konas)
이동복(전 명지대 초빙교수/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전 국회의원)
*본 내용은 4.16일 해양전략연구소 조찬강연 원고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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