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알리기' 역전의 용사가 나섰다
다부동 전투 구국용사회, 6·25 사진 전시회 개최... 청소년에 6·25참상 알려
6·25한국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들이 전후세대인 학생들에게 6·25의 참상을 알리고자 몸소 발벗고 나섰다.
1950년 8월, 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의 위급한 현실에서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에서 55일 동안 치열한 전투에 참전한 참전용사들의 친목단체인 다부동 전투 구국용사회(회장 김경한)가 지난 3월부터 지역 내 초·중·고교생과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6·25사진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어 안보의 산 증인임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유민주주의와 나라사랑의식을 부여하고 있다.
|
다부동 전투 구국용사회가 이번 사진전시회를 개최하게 된 이유는 최근 우리 청소년들이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는 물론,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거나 북침으로 알고 있어 이를 바로 잡고자 노병들이 직접 교육의 현장으로 발벗고 나서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진 전시회를 통해 기성세대에게 마저 전쟁의 쓰라림이 잊혀져 가고 있는 즈음에 어른들에게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삼게 하고 학생들에게는 지난 과거의 사실을 올바로 알려줌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다부동 전투 구국용사회는 지난 3월1일부터 안동중부교육관을 시작으로 안동여자정보고, 경안 중학교 등에서 3천여명을 대상으로 전시회를 가졌고, 앞으로도 지역 내 일반인과 관청,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
이 회의 여준구 사무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북한 공산군에 의해 국토의 8%만이 남아 있던 상황에서 조국을 지키고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짐으로써 이 전투에서 수많은 적과 아군이 전사했음에도 다부동 전투를 아는 이들이 드물고, 특히 6·25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이를 알리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여준구 사무처장은 다부동 전투와 구국용사회를 몰라주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여 처장은 "연평해전에 전사한 군인들은 국가가 나서서 행사를 주관하는데도 많은 아군이 전사한 다부동 전투 전사자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회원들이 자비를 들여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는 마치 '죽은 남편의 제사를 아들이 아닌 아내가 지내는 격'"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많은 6·25 사진 중에서 작품들을 엄선해 다부동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전쟁고아와 피란민의 참상 등 50여점을 우선적으로 전시하고 있고, 전시 중에도 여러 곳에서 개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6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중·고교생 1천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보·안전의식 실태조사를 인용하면서 청소년 과반수 이상이 6.25전쟁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보고서에서는 6.25가 발발한 연도를 1950년이라고 정확히 응답한 청소년은 10명중 4명꼴인 43.2%였고,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청소년도 48.7%에 그쳤으며,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로‘미국’(28.4%),‘일본’(27.7%),‘북한’(24.5%)순으로‘미국’을 가장 위협국가로 꼽아 그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다부동 전투>
다부동은 대구 북방 22km, 상주와 안동에서 대구로 통하는 5번 및 25번 도로가 합쳐지고 왜관에 이르는 지방도로(908번)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1950년 8월 5일 낙동강을 도하한 북한군은 주력인 제13사단, 3사단, 1사단, 15사단 등 군단 병력(2만1천여명)을 다부동(경북 칠곡군 가산면)일대에 투입해 호시탐탐 대구 점령을 노렸고 백선엽 장군의 국군 1사단과 미 제27연대가 적 절반에도 못 미치는 8천2백여 명의 병력으로 맞섰다.
8월18일 북한군 제15사단과 3사단은 유학산으로, 제13사단은 중앙계곡인 다부동 쪽으로 동시에 공격해 요충지인 유학산이 적에게 점령되는 위기를 맞았으나 백선엽 장군이 "만일 사단장이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쏘고 너희들이 명령 없이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쏘겠다"며 병사들을 독려해 역습을 감행한지 30분만에 목표고지 유학산을 재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8월13일부터 12일간 정상 주인이 15번이나 바뀌는 328고지(칠곡, 석적, 포남리)전투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던 837고지(칠곡, 가산, 학산리)탈환전 등 55일간 전투가 계속된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 중에서 최대의 격전이었으며, 이 전투에서 적은 1만7천5백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아군은 1만 여명의 희생을 가져왔다.
다부동 전투는 안강전투와 함께 대구를 사수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오늘에 있기까지 한 혈투에 혈투를 거듭한 대 전투였으며, 9월16일 개시된 반격작전의 일환으로 다부동 북서쪽 11km 지점의 천생산을 탈환한 후 잔적을 소탕한 9월24일에야 종결되었으며, 어느 전투보다 치열했고 참혹했던 격전이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 관련기사보기
-








